인류를 구하는 한국군 이야기

배명훈, 『빙글빙글 우주군』, 자이언트북스, 2020

by 달리

70년대 코믹북을 연상케 하는 표지가 인상적인 배명훈의 장편 『빙글빙글 우주군』은 한국우주군을 소재로 하는 SF다. 화성으로 이주하여 도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수준의 세계를 그리고 있음에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건 이 이야기가 현시점의 한국에서 제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공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의 주요 무대는 한국의 어느 독특한 군대 안이고,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어디선가 한 번쯤 만나봤을 법한 한국인이다.


작품 속 세계관의 규모를 우주로 확장했을 때 중요한 인물들이 모두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이면 왠지 어색하게 ―또는 야심 찬 창작자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연상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미래 사회에 있다는 설정으로 바로 들어가도 큰 설명이 요구되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인들이 한국어를 쓰는데 미래사회에 있다고 하면 궁금한 게 많아진다는 거죠. (……)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면서 타노스가 왜 영어를 쓸까 하는 의문 자체를 갖지 않죠. 그런데 타노스가 한국말을 하면 의문이 생기는 거죠. 왜 굳이 한국말을 쓰는가에 대한. 장르적인 관용도 측면에서 한국이라는 설정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까 제한적인 이야기만 가능하다고 느끼죠.

이다혜, 「지치지 않는 창작자, 연상호」, 『오늘의 SF #1』, arte, 47쪽


<어벤져스>만 그렇겠는가. <스타워즈>, <스타트렉>에서부터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에 이르기까지 다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한국인 김지영 씨라면 왠지 그의 전사가 빈틈없이 제시되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최근 이런 경향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 항공우주국에 관한 덩치 큰 서사에 길들여진 독자와 관객들은 우주적 규모의 사건 정중앙에 한국인을 세우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빙글빙글 우주군』은 이런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우주군의 일과는 스페이스 오페라보다 한국의 캠퍼스 라이프에 더 가깝다. 그만큼 익살스러운 명랑 시트콤 같은 에피소드가 대략 책의 2/3 지점까지 쭉 이어진다. 이에 대해 저자 배명훈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 주인공이 우주를 무대로 활약하게 하려면 나사(NASA) 같은 외국 기관을 빌려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설일 뿐이지만, 그럴 때마다 왠지 남의 건물에 무단 침입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축되지 않고 자신 있게 써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한국우주군 이야기니까요. (478-479쪽)


이런 시도가 갖는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 SF에서 한국과 한국인, 한국어가 갖는 본질적 한계에 관한 일군의 선입견을 영리하게 우회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수용 양상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 실제로 장르 독자들은 이제 '우주의 한국인' 설정을 그리 어색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작가는 이 소설을 자신의 공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데, 그래선지 소설 속 우주군의 분위기는 꽤나 헐렁하고 유연하다. 하긴, SF에서 지난 세기의 육군 다나까 모드를 고수하면 그것도 좀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에 비해 인물 간 역학 관계나 한국우주군을 둘러싼 조직도는 매우 꼼꼼하게 설정되어 있다. 그 결과 캐릭터의 개성과 역할, 정치적 외압과 부조리 등의 문제에 관한 묘사도 더욱 단단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소설은 챕터별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그리 무겁지 않은 분위기를 따라 인물들의 일상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화성총독 이종로'라는 빌런 앞에 당도하게 된다. 이종로는 화성에서 일어난 반란 사건을 진압하며 떠오른 실력자다. 알고 보니 화성 반란 사건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독립 선언이었는데, 이종로는 이를 반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발 빠르게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승승장구한 것이다. 이주 초기 행성 간 거리와 이해의 충돌이 빚어낸 비극이다.


이제 이종로는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와 실행에 옮긴다. 이게 소설의 후반부에 일어나는 일인데, 그전까지는 한국우주군이 이종로에 맞설 조직적 역량을 갖추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단계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도입부에 발사되는 공격위성으로 마지막에 전 인류를 구해내는 식이다. 그리고 그 공격위성을 원격으로 현란하게 컨트롤하는 사람은 바로 한국우주군 중사다. 인류를 구하는 국군 부사관이라니, 천재적인 상상력을 요하는 발상도 아닌데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이렇듯 이 작품이 유효한 지점은 착상의 양적인 팽창보다 질적인 전환에 있다.


그동안 '우주 SF'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나 코스믹 호러, 하드 SF와 같은 카테고리에만 해당되었던 독자라면 이 작품이 충분히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분명 우주 SF인데 보는 방향에 따라 『보건교사 안은영』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2000년대 시트콤 시리즈의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본 것 같기도 하다가, 끝에선 어느덧 긴장감 넘치는 우주전을 지휘통제실에서 직관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 마디로 끝내주게 재미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