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마니아들의 성공한 특집

『미스테리아』 32호 <영국식 살인의 정원>, 엘릭시르, 2020

by 달리

미스터리 마니아들의 격월간지 『미스테리아』의 최신호는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 특집으로, 부제는 <영국식 살인의 정원,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가 있었다>이다. 크리스티의 데뷔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의 출간 100주년이었던 2020년이 저물어갈 즈음에 나온 특집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뒤적여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덕질에 진심인 마니아들은 언제나 기획 이상의 성과를 내놓는 법이다. 마니아들이 만들어낸 매력적인 텍스트가 늘 그렇듯 이 책도 이방인에게 무익한 정보로 가득하다. 이 무익한 정보들의 향연이 장르 애독자를 황홀한 정원으로 인도한다.


추리소설 작가 서미애는 ‘클로즈드 서클’, ‘푸아로 피날레’와 같은 개념을 언급하면서, 미스터리 장르의 기본 트릭과 규칙의 원조가 애거사 크리스티임을 한 번 더 강조한다. 현대 미스터리 독자와 관객들이 거의 당연하게 수용하는 장르 관습들이 실은 어느 추리 거장이 거의 한 세기 전에 짜 놓은 플롯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가끔 상기해볼 만한 사실이다.


『미스테리아』 편집장 김용언의 「애거사 크리스티에 관한 너무 사소한 정보들」, 그리고 이다혜 칼럼니스트와 이경아 번역가, 김용언 편집장이 함께 쓴 「천상의 피조물들 에르퀼 푸아로, 제인 마플, 토미와 터펜스, 파커 파인, 그리고 할리퀸」과 같은 글들은 이런 기획 특집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에세이다. 크리스티가 자기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자기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에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등을 포함하여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아주 사소하지만 분명한 스포일러도 나온다.) 한편 크리스티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일정 궤도에 오른 뒤로는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실제 살아 숨 쉬는 것과 같은 생명력을 획득했는데, 이들의 캐릭터와 영향력을 짧게나마 되짚어보는 작업 또한 의미 있게 느껴진다. 지금이야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도 많지만, 그래도 이것들을 종이 잡지로 만나는 것은 여전히 각별한 경험이다.


홍한별 번역가에게 할당된 지면인 <Gone Girl ― 애거사 크리스티의 실종 사건>은 아마도 장르에 별 관심이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 가장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칼럼일 것이다. 1926년 12월 3일 밤, 일곱 번째 장편 소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The Murder of Roger Ackroyd』으로 주목받던 애거사 크리스티가 실제로 사라진 이 사건은 당시 ‘미스터리 작가의 미스터리한 실종’이라며 미국에까지 소식이 건너가 <뉴욕 타임스> 1면을 장식했다. 사건의 진상은? 지면으로 확인할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홍한별 번역가가 이미 후일담까지 재미있게 잘 정리해 놓아서 따로 소개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작을 따로 선별하는 작업은 지루한 데다가 종종 무의미하게까지 여겨지는데, 그럼에도 이런 특집에서 독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작품 몇 가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혜진 평론가는 「누가 애크로이드를 죽였나? ― ‘공정한 게임을 둘러싼 논쟁’」에서 크리스티의 걸작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대담하면서도 정교하게 분석하여 펼쳐놓는다. 이는 평론가 듀나가 최근에 언급한 ‘소설 속 복선의 가시화’ 작업과도 연계하여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크리스티는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복선을 독자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도록 가시화하는 작업에 탁월한 재능과 기술을 보였고, 이는 독자와 최대한 공정한 구도에서 게임을 리드하려는 자신감으로 비치기도 했다.


대표작에 대한 분석과 함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애거사 크리스티 추천작」도 훑어볼만하다. 한국에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 80여 권이 모두 번역 출간되어 있고, 서미애 작가의 말대로 본디 책이란 적은 비용으로 매우 높은 편익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니, 이들의 추천을 따라 나도 이제부터 연간 한두 권씩 골라 읽어볼 참이다.


덧붙임

『미스테리아』 이번 호에는 3개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하나는 2020년 대만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공모전에 선정된 신작이고, 다른 두 개는 대실 해밋과 도러시 L. 세이어스의 옛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