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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愛國)과 애민(愛民) 사이의 거리

이준익, <박열>, 2016

by 달리

* 스포일러 : 약함


(먼저 중요한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시작 전,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이며 영화 속 사건들은 모두 고증에 충실한 '실화'라는 소개말이 나온다. 그러나 모든 영화는 허구다. 영화 <박열>은 실제 인물과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한 영화라고 소개하는 것이 옳다. <왕의 남자>, <사도>, <동주> 등 역사적 인물과 배경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를 다수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이를 몰랐을 리 없는데, 왜 이런 소개말을 서두에 배치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흔히 그렇듯, 이 영화도 얕은 민족주의를 자극하려는 유혹에 빠진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 <박열>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학교교육에서 '박열'이란 인물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아나키스트'라는 어색한 수식어가 안겨주는 생소함 때문이기도 하다.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아나키스트'가 등장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런 만큼 이 영화에서는 강한 흥미를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나키즘은 모든 형태의 지배자(권위)를 거부하는 개념으로 통용된다. 현대국가의 지배자는 대체로 정부의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현대국가의 아나키스트는 흔히 무정부주의자로 이해된다. 물론 이는 현대국가에 한해 적용할 수 있는 도식이므로, 모든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로 범주화하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한국어에서는 '무정부'라는 어휘의 뉘앙스가 '탈권위'보 '무질서'에 가까워서, 아나키스트가 무질서(혼란, 또는 무제한의 자유, 더 나아가서는 문란한 문화까지)를 옹호한다는 웃지 못할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오해가 없도록 이 글에서는 아나키스트를 무질서의 옹호자보다는 탈권위주의자로 해석하고 논리를 전개한다는 점을 미리 짚어두고자 한다.


아나키스트로서 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은 민중에 대한 그의 시각이다. 시시각각 일본 사람들에 대한 반감과 증오를 표출하는 동료들에게 박열은, '우리가 진정 증오하고 싸워야 할 상대는 일본 민이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수뇌부'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우친다. 그때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역사적 이유로 일본을 증오하고, 나아가 일본 사람들을 혐오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박열의 이런 사상이 얼마나 시대를 앞섰던 것인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박열의 선구적 면모는 그가 가네코 후미코와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를 모든 형태의 권위를 거부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모든 유무형의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상상(실제로 모든 형태의 권위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상상력에 힘입어 거의 모든 인습을 초월한 인간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영화 속 박열은 그 시대의 인물이 실제로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분방한 기질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데, 화룡점정은 역시 가네코 후미코와 찍은 한 장의 사진이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실제 사진(왼쪽)과 영화 속 사진(오른쪽).

사랑하는 여인을 안고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이 도발적인 사진을 1920년대에, 조선인이, 일본 감옥 안에서, 조선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주기 위해 찍었다면,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 포스터에 박힌 '조선의 아나키스트(탈권위주의자)'라는 수식어는 이 사진 한 장이 붙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속 '박열'이 아나키스트 단체를 조직하고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뿐이었다면 그에 대한 수식어는 달라졌을 것이다. 박열은 천황과 황태자를 암살하려 한 대역죄인으로 기소된 와중에도 저런 사진을 남긴 것이다. 실제 이 사진으로 촉발된 스캔들 때문에 1927년 당시 일본 내각이 총사퇴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파장이 어느 정도였을지 대략 짐작이 간다.


박열의 아나키즘적 기질은 재판에 임하는 태도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첫 공판에서 박열은 옛 조선 관료의 관복 차림으로, 가네코 후미코는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등장한다. 박열의 등장은 관객으로 하여금 쾌감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데, 사실 이보다 더 비중 있게 스크린을 장악하는 느낌은 '우스꽝스러움'이다. 그만큼 때와 장소, 그 사회의 문화와 본인이 처한 상황에 맞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나키즘적 기질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박열은 법정 변론에서도 애국보다는 애민의 정신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국가와 정부는 박열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열은 법정에서,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빼앗은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보다 조선인이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빼앗긴 권리, 즉 인민으로서의 생존권과 자유권을 박탈당했다는 사실만을 집요하게 추궁한다. 국가와 정부의 권위를 앞세우지 않고도 빼앗긴 인간의 권리를 이토록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명의 아나키스트로서 그가 가진 당위가 그 어떤 실리적 명분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박열의 아나키즘은 애국적 보수주의로도, 배타적 민족주의로도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어떤 것이었다. 민중에 대한 그의 편견 없는 시각은 길고 길었던 일제강점기의 역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하고, 또한 소중하다. 박열이 국가라는 지고한 이상에 대한 절개보다 인간을 향한 예의를 지키려 노력했던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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