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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역사

크리스토퍼 놀란, <덩케르크(Dunkirk)>, 2017

by 달리

* 스포일러 : 중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물리적 공간은, 우리보다 앞서 세계를 떠받치며 살다 간 수많은 익명의 삶들이 다져놓은 토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인물과 사건의 이름은 그 익명의 삶들과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를 움직이고 바꾸어나간 것은 언제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었다. 그런데도 익명의 역사는, 그들이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객관적 수치나 건조하게 서술된 몇 줄의 문장으로서만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다.


영화 <덩케르크>는 '덩케르크 철수작전'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건을 무대로 삼아 익명의 삶들을 조명한다. 파편화된 수많은 삶을 무작위로 포착하여 보여준다.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리에서 저마다 다른 삶의 표정을 그려낸다. 매 순간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삶은 얼핏 다채로운 빛깔을 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결국 흑백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영화 속 그들의 삶은 '생존을 향한 전력질주'라는 하나의 흑백 코드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덩케르크 해안에서 구조를 하거나, 반대로 구조를 받으려 사투를 벌인다.


<덩케르크>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뛰어난 능력도 없고 가슴 저미는 사연도 없다. 이들 하나하나는 모두 철저하게 평범하며, 그렇기 때문에 익명의 소재로 부족함이 없다. 영화 속에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이들 익명의 삶은,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우리 주변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어느 한 때 이름부를 필요를 느껴본 적 없는 수많은 익명의 삶들. 실제로 이 영화 속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는데, 이는 이 영화의 의도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즉, <덩케르크>는 빛나는 이름을 가진 전쟁영웅에 대한 서사시가 아니다. 이토록 철저한 익명성 위에 펼쳐지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더 참혹하다.


적 독일군의 끝없는 공격은 산발적이고, 무작위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구조 혹은 덩케르크 탈출을 위한 실마리를 잡았나 싶어 안도하다가도 어디선가 갑작스레 시작되는 적의 공격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모든 인물을 긴장하게 만든다. 영화는 고조되는 긴박한 선율의 음악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거의 모든 피격 상황에서 이 음악들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짧은 시간에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강렬하고 선명한 음악 효과 덕분에 관객들은 인물의 호흡과 긴장을 더욱 극대화하여 느끼게 된다.


<덩케르크>는 잔교에서의 1주일, 바다에서의 1일, 하늘에서의 1시간을 교차 편집하여 보여주는데, 영화의 종반부에서는 이 서로 다른 시간이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시간이 만나는 종반부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잔교에서는 일주일 전으로, 바다에서는 하루 전으로, 하늘에서는 한 시간 전으로 각각 거슬러 올라가 사건을 전개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절대적 시간의 양적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각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연출한다. 같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절묘한 교차편집은 영화의 종반부, 세 개의 시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전까지는 실낱같은 희망(탈출)도 곧 절망(적의 공격)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이 주된 이미지였다면, 이 지점 이후부터는 수많은 민간인 구조선의 고무적인 등장, 가라앉는 전투기 조종사의 극적인 구조, 마지막 남은 적기의 격추 등 주로 긍정적인 이미지가 전면에 배치된다.


잔교와 바다와 하늘,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형식적 측면에서 대조적이면서도 내용적으로는 공통된 이미지를 향해 치닫는다. 무망한 바다와 황량한 해변을 뒤로한 채 미어터질 듯 잔교에 가득 들어찬 연합군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망적이다. 탈출을 위한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잔교는 분명 그들의 생존을 위한 최선의 공간이지만, 탈출의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 간다. 한편 하늘 위 전투기 조종사 파리어(톰 하디Tom Hardy)는 좁은 기내에 홀로 앉은 채로 적기를 맞아 싸운다. 처음에 세 기였던 아군기는 하나씩 추락하여 종반부에는 파리어 혼자 남게 된다. 고독한 상황에서 끝까지 적과 싸우기로 결심하는 파리어의 결의에 찬 표정은 어떤 결연한 비장미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바다에서는 고립된 아군의 탈출을 돕기 위해 근처의 항구에서 출항하는 민간인 도슨과 조지, 피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국 이들 세 시점은 형식적으로 각각 구조를 기다리는 자, 구조를 돕는 자, 구조를 하는 자의 것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 중 어느 것도 원활히 흘러가지 않으며, 각 상황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극한의 절망을 경험하면서도 종국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기여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일 것이다.


이름 없는 삶들이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기적.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30만의 연합군을 무사히 철수시킴으로써 영국사에 '덩케르크 정신'이라는 깊은 자취를 남긴다. 이 업적은 어느 사령관의 탁월한 지휘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물론 지휘관의 능력도 한몫했겠지만), 생존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실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영화 속 볼튼 사령관은 이를 감격에 찬 목소리로, '조국(HOME)'이라 부른다. 어느 한 사람의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수많은 익명의 개체들을 하나로 묶어줄 커다란 개념을 필요로 한다. 이 영화는 이토록 절실한 개념을 '조국(HOME)'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물론 이는 다른 더 큰 개념으로도 대체 가능하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삶이 하나로 모여 만들어내는 위대한 전체. 결국 이 모든 위대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익명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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