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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연출된 설익은 휴머니즘

류승완, <군함도>, 2017

by 달리

* 스포일러 : 강함


감독과 제작진은 이 정도로 혹평받을 줄 몰랐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지속적이면서도 일관적으로 전달된 메시지는 '이제 그만 가해자 일본과 피해자 조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고, 감독과 배우도 인터뷰를 통해 수차례 이런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사실 이런 시도는 매우 참신하고, 윤리적일 수 있으며, 학문적으로 진지할 수도 있었다. 아마 그러면서도 영화적 연출과 재미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감독의 궁극적인 목표였겠으나, 결국 이 영화는 그중 어떤 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을 것 같다.


영화가 비판을 받는 지점은 명확하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말, 군함도라는 매우 좁고 특정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했음에도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다른 픽션들에 비해 <군함도>가 유독 더 거센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짜인 결말을 향해 말 그대로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된다. '지옥섬' 군함도는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휴머니즘을 극적으로 묘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어느 플롯에서는 극도로 열악했던 여건이 또 다른 플롯에서는 그런대로 살만해지거나 심지어 탈출을 위한 사다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즉, 군함도와 그곳에서 벌어진 참상들이 이 영화에서는 오롯이 극적 탈출을 위한 도구로만 소비되는 것이다. 하지만 군함도의 참상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지지 않은 오늘날의 현실은 이런 설익은 휴머니즘을 허락하지 않는다. 역사 속 군함도는 절대로 이런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분법적 시각의 탈피)가 아무리 윤리적이라 해도, 실제로 엄존했던 인간의 고통(군함도의 조선인 강제징용과 수탈)을 수단으로 삼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도 다분히 실망스럽다. <군함도>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여성은 오말년(이정현)과 이소희(김수안)이다. 이 중 소희는 여성이라기보다 천진난만하고 재기 발랄한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조선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참혹함을 소희도 일부 경험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소희의 여성성이 이 영화의 주요 테마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즉 이 영화에서 여성으로서 유의미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말년뿐이다.


<군함도>에서 여성으로서 유의미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오말년(이정현)뿐이다(출처 : 영화 <군함도>)


종로 최고의 주먹으로 유명한 최칠성(소지섭)의 아랫도리를 움켜쥐며 거침없이 등장하는 말년은, 시종일관 강인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군위안부에서 경험한 조선인 중간 착취자들의 악랄함을 폭로하는 장면이나, 함께 탈출하기로 결심한 동생들에게 "한 사람이라도 살면 우리가 이기는 거여."라며 의지를 북돋는 장면에서 말년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역할이라기보다 어떤 기능에 가깝다. 플롯의 흐름상 이강옥(황정민)과 박무영(송중기)은 각각 딸과 윤학철(이경영)의 구출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말년은 민족의 아픔과 참혹함을 고발하는 모종의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가 결말을 향해갈수록 말년은 특유의 색감을 잃고 그저 그런 로맨스의 '파트너'로 소비된다.


야수같이 거친 칠성의 내면에 자리 잡은 진정성을 확인하면서 말년은 그런 칠성에게 연민의 정을 갖게 되고 이는 영화 후반 전투 신에서 일종의 조폭식 의리로 구현되는데, 진지하게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아쉬움을 넘어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말년은 그런 식으로 쓰여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물론 말년이 칠성의 사타구니를 우악스럽게 쥐며 등장하는 첫 장면과 나란히 누워 눈을 감는 끝 장면의 드라마틱한 대조 효과는 철저히 계획된 것이겠으나, 여기에서 감동이나 비극적 요소를 느끼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엔 이 두 인물의 서사가 지나치게 의도적이고 작위적이다.


한편 영화의 종반부 전투 신에서는 무영과 강옥의 대조적인 활약에 눈에 띈다. 윤선생을 구출하러 왔다가 그의 전향 사실과 반민족 행위를 알게 된 무영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조선인 민중들 앞에서 윤학철을 처단한다. 그리고 이후 군함도에서 착취당하는 모든 조선인을 구출하기로 결심하고 작전에 임한다. 반면 강옥은 자신의 딸을 살려 보내는 것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두 인물의 서로 다른 목적은 끝까지 적의 공격에 맞서 저지선을 사수하는 역할(무영)과 무너진 배다리를 다시 갑판에 걸치는 역할(강옥)로 구체화된다. 결국 강옥이 욱일기를 찢어 만든 밧줄로 무너진 다리를 갑판에 도로 걸치는 데 성공하고, 무영이 적장 야마다(김중희)의 목을 베는 것으로 전투는 끝을 맺는다. 여기에서도 무영이 야마다의 목을 베었다고 해서 나머지 일본군이 전투를 일제히 중단한다는 설정이 어색하지만(이 장면의 모티브는 영화 <명량>이 아니었나 싶은데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 더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미 영화가 중반 이후로는 거의 완벽한 픽션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별로 큰 무리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처럼 때로 유쾌하고 때때로 서글픈 그저 그런 로맨틱 액션 활극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군함도는 그 배경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인상이다. 영화 <군함도>가 정성껏 연출해낸 얇은 휴머니즘과 로맨스, 비(非) 이분법적 인류애는 실제 역사 속 '군함도'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덧붙임 1

배우 김수안의 매력이 단연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 초반부에서 춤추는 장면, 아버지와 익살스럽게 대화 나누는 장면, 후반부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 등에서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덧붙임 2

극 중 부녀 관계인 강옥과 소희의 대화는 친구처럼 편안하다. 다만 강옥이 자신의 딸 소희에게 시종일관 '년'자를 붙여가며 말하는 것은 보기 불편하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했다면 아버지 또래 중년 남성이 그리도 많은 공간에서 그런 격의 없는 부녀관계를 설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제작자의 다른 의도가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취향이란 얘긴데,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덧붙임 3

후반부 전투 신의 마지막에 소희가 화염병을 던져 야마다의 몸에 불을 붙이는 설정이 과연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다. 어린아이의 손에까지 피를 묻혀야 할 정도로 참혹했던 시절의 적나라함을 고발하고자 한 영화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물론 창작자의 표현 양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겠으나, 창작자에겐 그 나름대로의 창작 윤리가 필요하다. 군함도에서 귀신이 나타나 조선인의 탈출을 돕는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즉, 중요한 장면이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된 것에는 그에 맞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어린 소희가 야마다의 몸에 불을 붙이는 장면에 어떤 의도가 있었고, 어떤 말들이 오갔을지 궁금하다.


덧붙임 4

이 영화의 예고편에서도 인상 깊게 소개됐던 이른바 촛불의식 장면은 개인적으로 좋게 봤다. 물론 군함도에서 야심한 시각에 수백 명의 조선인이 촛불을 들고 탈출을 모의할 수 있을 정도로 집회의 자유를 누렸다는 설정은 허황되기 그지없으나, 흐름상 필요한 장면이었고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표현되었다고 느꼈다.

출처 : 영화 <군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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