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탈락하는 아이들에 대하여

노룡, 『초딩 망명 공화국』, 위즈덤하우스, 2025

by 달리

* 쪽수: 156쪽



지난주에 이어 <사사주아 79회 - 초딩 망명 공화국> 편에도 출연했어요. 이번 회에선 유영진 평론가님이 작품에 대해 아주 강렬한 해석을 해주셨고, 그래서 좋았습니다. 제 코멘트 부분 스크립트와 함께 올려봅니다.



먼저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이 작품의 제목이 초딩+망명+공화국이잖아요. 그런데 이 중에 초딩은 자주 멸칭으로 쓰이는 단어란 말이에요. 아동문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어린이를 초딩으로 지칭하는 경우는 사실 드문데,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초딩이라는 말을 대놓고 쓴 게 일단 눈에 띄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맥락을 가진 말도 문학으로 끌고 오면 그 순간부터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는데, 초딩 망명 공화국이라는 제목이 저한테는 그랬습니다. 평소에 저는 초딩이라는 말을 아예 안 쓰거든요. 그런데도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내용을 보기도 전부터 묘한 해방감을 느꼈고, 읽은 다음에는 더 큰 해방감을 느꼈단 말이에요. 그 이유가 뭘지, 그런 개인적인 감상을 중심에 두고 얘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판타지 모음집이고, 저는 그래서 좋았습니다. 책에는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연작 형태로 실려 있는데, 그중 어느 것도 깨끗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는 않거든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갈등 구조도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에서 이야기가 끝나요. 이건 어떻게 보면 판타지의 힘을 빌려도 해결되지 않는 무거운 문제들이 어린이의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뜻이고, 동화가 그런 만만치 않은 문제들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히기도 합니다. 또한 어둡고 기괴한 세상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어린이의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아동문학의 지평을 단단히 자리매김하는 일이기도 하겠죠.


일단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판타지의 구심점은 '마수리 마트'인데, 설정 자체는 간단합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산 손님은 뽑기 통에서 종이를 한 장씩 뽑고, 이 종이에 물건 이름이 적혀 있으면 사장 아저씨가 생활용품 코너 뒤쪽에 위치한 창고에 가서 가져옵니다. 이 물건들에는 다른 세상에서 온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서 인물들을 수수께끼 같은 상황 속으로 몰고 가지요. 이처럼 현실의 한 귀퉁이에 신비로운 공간을 만들어놓고 그로부터 세계 이면의 모습을 상상해 내는 어반 판타지의 기법은 『전천당』 시리즈,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를 포함해 여러 작품에서 익히 보아온 것들이기도 합니다. 아마 어린이 독자는 더 편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고요.


첫 번째 이야기 「메이드 인 마트」의 주인공 '이서로'는 딱히 잘하는 게 없는 평범한 초등학생입니다.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죠. 아직 어리기도 하고, 원래 학교엔 서로 같은 평범한 아이들이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서로의 부모님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특히 서로의 엄마는 서로가 뭐든지 친구들보다 더 잘하길 바라죠. 여기서 서로의 엄마가 서로에게 가진 기대의 초점이 뭔가를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보다' 잘하는 것이라는 점은 중요합니다. 많은 한국의 부모들에게 교육이란 그저 경쟁에서 이겨서 남보다 위에 서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고, 이런 일그러진 교육열은 타인을 합법적으로 짓누르고 싶어 하는 기괴한 권력욕과도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지요.


어쨌거나 서로의 부모님은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보지 못하고 그저 서로를 당신들 마음에 드는 아이로 만들기에만 급급합니다. 처음에 서로의 부모님은 서로가 운동회 때 친구들보다 더 빨리 달리게 하기 위해서 서로의 다리를 마수리 마트에서 받아온 신비한 다리로 바꿔 끼웁니다. 그다음엔 서로가 장기자랑에서 저글링을 잘하게 하기 위해 팔을 바꾸고, 급기야 서로의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머리까지 바꿔버리지요. 그렇게 서로의 신체를 하나씩 마트 부품으로 갈아 끼우는 동안 정작 서로만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개성은 사라져 가는데, 당연히 서로의 부모님에겐 그게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그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서로가 집에 있는 잡동사니로 만든 개구리, 비행기, 피라미드, 고양이, 학, 공룡 같은 것들이 뭉개지는 순간들입니다. 잘하는 게 없는 줄 알았던 서로에게 실은 뛰어난 손재주가 있었던 거예요. 어쩌면 서로가 가진 타고난 재능의 증표가 될 수도 있었을 서로의 작품들은, 안타깝게도 서로의 부모님이 마트에서 받아온 물건들을 내려놓을 때 그 밑에 깔려 납작해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뻔하고 뻔한 욕망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의 고유함에 어떤 식으로 상처를 내고, 나아가 그 상처를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죠.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대체로 결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전원」의 주인공 '장방랑'의 꿈은 의사입니다. 방랑이의 부모님이 그렇게 정해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랑이가 의사가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해 보이는고, 방랑이의 엄마는 역시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엄마의 존재 이유는 방랑이를 의대에 보내 의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방랑이가 의사 되기를 포기하는 건 엄마의 삶에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방랑이는 곧 포기 선언을 하고, 엄마는 사납게 화를 내지요. 결국 방랑이는 마수리 마트에서 뽑은 리모콘을 눌러 세상의 전원을 꺼버립니다. 그 순간 방랑이의 현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눈앞엔 거짓말처럼 참나무 숲이 펼쳐지지요. 그제야 방랑이는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고 휴식 다운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방랑이와 같은 현실에 놓여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도 바로 이런 조건 없는 휴식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지요.


「늑대 삼대」의 주인공 '은탁수'네 집에는 난폭한 늑대가 삽니다. 늑대는 호시탐탐 탁수를 노리지만 탁수의 엄마가 격하게 몸싸움을 벌여가며 막아주는 덕에 탁수는 아직까지 무사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탁수는 하루하루 지쳐가지요. 그러던 어느 날 탁수는 마수리 마트에서 시간을 멈추는 스톱워치를 뽑게 되고, 그걸 이용해 늑대를 제압합니다. 이 작품에서 늑대가 폭력적인 아빠의 은유라는 걸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의 제목은 '늑대 삼대'이고, 그러니까 아빠만 늑대가 아닌 거죠. 할아버지로부터 아빠를 거쳐 전해 내려오는 늑대의 습성이 탁수에게도 있고, 탁수 본인도 그걸 또렷이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탁수가 제 안에 있는 늑대의 습성을 극복해 내는 건데, 이걸 탁수가 스스로 잘 해낼 것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군데군데 들어가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배고픈 괴물」의 주인공 '소우주'가 마수리 마트에서 뽑은 물건은 세상 모든 것을 소화시키는 슈퍼 소화제입니다. 소화제를 먹은 우주는 끝없는 허기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간식과 분식 정도로 허기를 채우던 우주는 곧 영어사전과 피아노 학원의 피아노를 먹어치우고, 급기야 수학 학원 건물까지 통째로 먹어치웁니다. 이전에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학업에 매진하던 우주는 하루아침에 모든 학원의 기피 대상이 되지요. 재미있는 건 상황이 이 지경이 돼도 우주의 부모님은 오직 우주의 학업에 차질이 생길 것만을 걱정한다는 겁니다. 이게 참 절묘한 것이, 요즘 어른들은 진짜로 걱정해야 되는 게 뭔지 도통 모르거든요. 최근까지도 4세 고시, 7세 고시 이런 말이 진지하게 오가고, 누가 이런 시스템을 문제라고 지적하면 현실을 모른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서 어쩔 수 없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이 상황 자체가, 그런 시스템에 아이를 밀어 넣을 여력이 있냐없냐와 관계없이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와있는 건지, 차갑게 판단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어른들이 생각보다 정말 적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이야기가 건네는 농담도 단순히 농담으로 끝나지 못하고 씁쓸한 블랙코미디가 되는 거예요.


이 책의 표제작인 「초딩 망명 공화국」에서는 지금까지 아이들이 뽑은 신비한 물건들이 한데 모여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는데, 전 이게 살짝 흐지부지해서 아쉬웠어요. 판을 더 크게 벌려봐도 되지 않았을까, 좀 더 전복적인 서사로 과감하게 가봐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죠. 아이들이 뽑은 물건의 힘을 결합해서 만들어낸 판타지 공간도 그래요. 그 안에서 이것저것 재밌는 일을 많이 하긴 하는데, 여기에 공화국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고, 아지트 정도가 맞을 것 같죠. 잠깐 짜릿하게 놀고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 공화국을 세우는 게 과연 좋은 생각일까 싶어지는,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해방감이 마지막에 좁은 아지트로 굳이 들어가면서 다시 줄어드는, 그런 느낌이 되어버려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전 이 책이 삶의 본질을 묻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불완전한 것들에 대한 사랑을 그 답으로 내어놓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정말 중요하게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 것은 실체 없는 성공이나 그걸 향한 욕망 같은 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온갖 불완전한 것들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저는 여기서 그런 메시지를 읽었고, 깊이 공감했습니다.


끝으로 책 말미에 실린 어린이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어린이 심사위원들의 평가로 우수작을 선정하는 것 자체는 유의미한 일이지요. 그것이 기성의 시각에서 본 우수작의 기준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시각의 차이나 또는 어린이 독자의 선호를 드러내는 특정한 경향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까요. 다만 모든 심사위원의 코멘트를 기계적으로 싣는 일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습니다. 개중에는 아주 무의미한 말들도 더러 있어서, 편집자 판단 하에 유의미한 코멘트만 선별적으로 싣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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