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미숙 Feb 17. 2020

멸치는 바다로 갔을까?

그림책으로 본 세상 (1)_[멸치의 꿈] 


그림책으로 본 세상 _  [멸치의 꿈] 멸치는 바다로 갔을까?


엄마는 유난히 멸치볶음을 자주 해주셨다. 달달하고 딱딱하게 볶아진 멸치는 밥 먹을 때마다 할당량이 정해졌다.
엄마 기분이 좋을 땐 4개. 안 좋을 땐 5개.
최대한 작은 것을 고르려고 뒤적거리다 짝 소리 나게 등짝 한 대 맞곤 했다.

멸치볶음이 싫었던 까닭은 또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멸치 똥 따기를 나에게 시켰다. (그게 내장이라는 건 어른이 되고 알았다) 언니나 동생보다 내가 잘한다고 칭찬했던 건 계속 나를 시켜먹으려는 엄마의 잔꾀가 아니었나 싶다.

쿱쿱한 비린내도 별로였지만, 어쩌다 멸치 똥이 손톱에 끼면 찐덕찐덕한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가끔 동생과 멸치를 가지고 놀았다. 입모양과 눈 모양이 특이한 멸치를 골라 이야기를 만들었다. 멸치는 하늘을 날기도 했고, 서로 잡아먹기도 했고, 사랑도 했다. 먹을 거 갖고 장난친다 잔소리를 옴팡 들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멸치가 살아서 바다를 헤엄치던 물고기라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고깃배가 어마어마한 멸치 떼를 잡아 올리는 것을 봤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멸치는 태어날 때부터 바싹 마른 상태라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멸치도 바다를 품었던 물고기였지.

‘멸치의 꿈’(유미정 / 달그림)를 통해 깨달은 그 진실(?)이 가슴 저릿하면서도 유쾌하다.


“나는 멸치야. 지금은 대가리만 남았지만”

이 씁쓸한 첫 문장이...

웃겼다.

이야기를 꺼내 든 대가리만 남은 멸치 입이 달싹거리며 긴 수다를 늘어놓을 것만 같았다.


멸치는 사천구백아흔아홉 번째로 태어났다고 했다. 달빛을 쫓다가 고깃배 등불에 속아 소금물에 햇볕에 긴긴밤을 보내고 창자도 등뼈도 다 떼내고 나니 가뿐하단다. 나눠진 몸을 보면서 그때야 꿈이 뭔지 알았단다.


그렇게 헤엄치기 시작하는 멸치들.

등뼈도 몸통도 창자도 대가리도 헤엄친다.

두두둑 두두둑 파란 물이 떨어진다.

멸치들이 움직인다.

구불구불 다시 바다로 간다.

바다가 된다.


다 흩어져서야 알게 되는. 다 잃어야 간절해지는.

어쩌면 그래서 그것의 이름이 ‘꿈’이 아닐까?


짧게 5년. 길게 7-8년을 바쁘게 살았다. 이런저런 일을 벌여놓기만 하다 보니 머릿속도 온통 ‘일’ 생각이고, 몸도 익숙해진 데로 허겁지겁 움직이며 살았다. 가만히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꿈을 꿨다. 요리를 하고 식탁을 차리는 꿈을 꿨다. 시간만 있으면 다 될 거 같았다.


그런데 정말 나에게 그런 날이 왔다. 하던 일을 절반 이상 뚝 잘라 정리했다. 자, 이제 되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고깃배 등불에 눈이 흐려지고 소금물에 끓여져 몸은 빠싹 건조해지고 햇볕을 너무 쬐어 총기가 사라졌다.

몸도 따이고 창자도 발라졌다. 혹시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은데, 대가리가 말한다.

다시 꿈꾸자고.


멸치들은 바다로 돌아갔을까 궁금하다.

솔직히 많이 궁금하진 않다. 돌아갔는가 중요치 않다는 걸 안다. 등뼈 한 조각. 창자 끄트머리라도 남아있으면 지금도 해엄치고 있을 테니.


이제 냉동실 문을 열 차례다. 오래전 엄마가 준 멸치를 찾아 똥을 따고 뼈를 발라 멸치볶음을 해야지. 꽈리고추도 한 움큼 넣어야겠다. 그렇게 반찬 하나 만들어 놓고, 책을 펴야지.

잠깐 늘어지게 낮잠을 자도 좋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