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23) _[동구관찰]
고민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시작은 일산도서관 시설을 대관해 달라는 전화가 오고나서다 고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장소를 빌려달라는 거였다. 마침 동아리방만 대관이 가능해서 그러마 했다. 문득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나?’ 생각이 들었다. 일산도서관은 벽이 없는 도서관이다. 동아리방 문을 열면 바로 열람공간이다. 발달장애인이 열 명 넘게 왔다 갔다 할 건데 열람공간 이용자들과 어떤 눈빛을 주고받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커다란 안내문을 붙이자. 오늘은 발달장애인들이 동아리방을 씁니다. 따뜻한 눈빛으로 배려해 주세요. 손글씨로 예쁘게 써붙여야지.’
‘아니야, 그 안내문을 발달장애인들이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쪽지로 만들어서 책상마다 놓자.’
‘아니지, 도서관은 원래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인데 이런 안내문은 너무 과잉 아니야?’
‘음, 그런데 혹시 이용자들이 발달장애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거나 뭐라 하면 어쩌지? 상처받은 장애인들이 도서관을 오지 말아야 할 공간으로 인식하면 안 되는데.’
며칠 끙끙대고 고민을 하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전화를 걸었다.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계신 이상엽 삼달다방지기님이다.
“당사자에게 물어보세요.”
짧은 대답에 뭔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 나는 왜 그 생각을 한 번도 못했지?’ ‘그렇게 열심히 고민했는데... 아, 나는 왜 그 생각을 한 번도 못했지?’
그림책 동구 관찰(조원희 지음 | 엔씨문화재단)은 남자아이 한 명과 고양이가 서로 눈을 맞대고 노려보는 표지로 시작된다. 처음엔 아이가 동구라는 고양이를 관찰하는 이야기인가 싶지만, 읽다 보면 동구를 관찰한 고양이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고양이 시선을 따라 같이 동구를 관찰한다. ‘이 녀석이 동구다. 열한 살. 내가 뭘 하려고만 하면 꼭 방해를 한다. 식습관이 별로 좋지 않다. 녀석은 가끔 이상한 소리를 낸다.’ ‘열한 살짜리들이 다 그렇지 뭐.’하고 한 장 더 넘기면 ‘동구는 가끔 차를 타고 병원에 간다. 차 안에서 동구는 말이 없다.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다. 병원은 나도 싫다.’ 병원을 다녀온 동구 모습이 그려진다. 그때야 보인다. 동구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 앞 장을 다시 넘긴다. ‘아, 동구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구나.’ 그때야 알아챈다. ‘병원에 다녀온 동구는 힘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부르면 동구는 다시 웃는다. 나는 동구가 웃는 게 좋다.’ 고양이는 동구를 핥는다. 동구가 웃는다.
동구가 병원 가는 장면을 보기 전 장애가 있는 아이라는 걸 느끼지 못한 까닭은 뭘까? 고양이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그냥 동구를 관찰한다.
고양이가 아닌 나는 여전히 편견 덩어리다. 책도 많이 읽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세상 속 장애인에게 다른 눈빛을 갖고 있다. 동구는 그냥 동구일 뿐인데, 세상 속 동구는 ‘동구’ 그 자체가 아니라 ‘발달장애인’이었다.
“별다른 코멘트가 없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저희에게 대관했다는 내용만 안내해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다른 대관 때와 같은 안내문을 만들어 동아리 방 문 앞에 붙였다. 동아리방 대관이 있던 날, 한 명 두 명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는 ‘동구’들을 만났다. 이름을 묻지 못했지만, 나는 고양이 눈을 가지려 애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가끔 그때 만난 사람들을 다시 도서관에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