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8)_[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오지 마세요.”
며칠 전,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나무 문패 만들기’를 하던 목공 방장님이 4학년생들이 문패에 가장 많이 적는 말이라고 하자, 아이들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완성된 문패를 보니 ‘나는 5학년, 그래도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쓴 아이가 있다. 또 한 번 다 같이 웃었다.
‘들어오지 마세요.’ 아이들이 이런 문패를 내거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어른들에게 간섭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성장과정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이들 푯말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들어오지 말라’는 표지판 앞에선 나도 모르게 흠칫 주눅이 들곤 한다. 그림책 ‘들어갈 수 없습니다’(전정숙 글 / 고정순 그림 / 어린이아현)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그어진 선.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대한 이야기다. 출입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가도록 허락된 곳, 위험해서 들어갈 수 없는 곳, 비싼 값을 치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비롯,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없는 바리케이드가 쳐진 곳, 그곳에 사는 사람만 허락되어 배달 트럭은 짐을 내려 들고 다녀야 하는 곳들도 자주 만난다. 그런가 하면, 아주 오랫동안 들어갈 수 없던 곳. 남과 북을 나누는 경계선들도 우리가 넘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필요에 의해 그어진 선들 안에 익숙해진 우리는 스스로 선을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선을 지키기도 하면서 그것이 옳은 것이라 믿어왔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다고 하나, 사실은 어느 순간 누군가를 밀어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상황을 맞으면서 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처리된다. 엄중한 시기니까 최대한 비대면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출입금지’를 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출증으로 책을 빌리는 방식밖에 모르는 어르신들은 예약대출 시스템을 사용하기 어려워 이제 도서관은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QR코드, 키오스크가 두려워 들어갈 수 없는 식당이 많아지게 되었다.(심지어 스마트폰이 없는 어르신들도 많다) 마스크로 인해 의사전달이 쉽지 않은 장애인들, 주간보호센터와 장애인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 가족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집에 디지털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거나, 돌봐줄 어른이 없는 어린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학력격차가 나기 시작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디지털 불평등 분야 대표적 사회학자인 미국 산타클라라 대 로라 로빈슨 교수는 최근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러한 디지털 불평등은 ‘경제적 계급, 성별, 인종, 노화, 장애, 의료, 교육 수준, 시골 거주 등의 측면에서 발생하고, 이는 단순히 활용 면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 차원에서도 격차를 만들어 내는 등 정보소외 격차로 인한 문제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솔직히, 가끔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건 경계 안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경계 밖 사람들에게 ‘노력해서 선을 넘어라’ 하는 것은 물리적인 선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선까지 긋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선을 긋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나도 ‘출입금지’ 표지판 앞에 서게 될지 모르는데 말이다.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경계선을 넘어 그들 옆에 서야 한다. 그래야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저 푯말이 비로소 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그다음은, 함께 힘껏 떼어내면 될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