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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nbusin Jun 24. 2019

일과 사랑 모든 것이 무너져 간다는 생각이 들 때.

영화 칠드런 액트 리뷰

[이 영화는 브런치무비패스로 관람하였으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칠드런 액트 시사회에 당첨돼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날따라 피곤해서 영화를 보지 않고 퇴근 후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시사회 참여는 결정된 사항이었기에 영화관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보았던 것이 참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 근래 보았던 영화 중에 몰입도도 높았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였다. 시각적인 자극이 극대화된 화려한 영화들도 많은 즐거움을 주지만, 철학적 키워드를 던져주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영화에 몰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관객에게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 속 키워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 좋았다.




영화 칠드런 액트는 인간의 존엄, 즉 죽음의 자기 결정권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 '피오나'판사와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수혈을 거부하는 미성년'애덤'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이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더 주목했던 점은 사람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 변화하는 것,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었다.


피오나 판사는 능력 있는 판사로서, 그 누가 보더라도 멋진 커리어를 가졌고 본인을 사랑하는 자상한 남편도 있다. 당연히 능력이 있으니 좋은 집에 거주하고, 상식이 통하는 격식 있는 사람들만 만난다. 

일, 그리고 가정을 양립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피오나는 워크 앤 라이프를 멋지게 살아왔다.
그러나 피오나에게도 갑작스러운 시련이 나타난다. 


점점 더 업무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남편에게 관심이 상대적으로 멀어졌고, 외로움을 느끼는 남편은 외도를 선언한다. 그 와중에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수혈을 거부하는 애덤을 위한 결정도 내려야 한다. 둘 다 힘든 경험이다. 일이 힘들 때 의지가 되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위로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흔들리면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고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두 상황이 동시에 오는 것은 어떤 이라도 큰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믿고 열심히 커리어를 쌓으며 자아실현을 했지만 영혼의 반려자가 배신한다면 가치관이 붕괴되고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해버리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판단해주지만 본인의 인생을 판단하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피오나 판사는 여태까지의 이성적인 판결 대신,  애덤을 직접 만나서 애덤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애덤은 종교적 선택은 자신의 선택이며 죽음의 자기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오나 판사가 보기에는 그러한 가치판단을 하기에 애덤이 어리고, 그의 가능성을 생각하여 병원 측에게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린다. 

그 후 애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자신이 굳게 믿었던 가치관이 수혈로 인해 변화해버렸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적 신념이 사라지면서 종교 대신 피오나 판사를 자신의 믿음의 구원자로서 선택을 하지만 피오나는 애덤을 거절한다. 계속된 거절 속에 좌절감을 느낀 애덤은 결국에 두 번째 죽음을 택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애덤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피오나는 슬퍼한다. 슬퍼하는 피오나의 옆은 결국 가족인 남편이다. 

그녀는 남편을 용서했을까? 판사는 도덕적 판단이 아닌, 법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고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서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도 이성이 먼저가 아닌 감성이 먼저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판사가 답을 결정할 수 있지만 정답을 만들 수 없다. 정답 없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람은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져도 되는 걸까?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일까? 

일과 사랑 두 가지 모두가 무너졌을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러한 큰 질문을 던진다. 


바뀔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모든 게 무너진다고 느낄 때, 가치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엉망이 돼버렸을 때, 세상에 혼자라는 기분이 들 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믿어야 한다. 자신이 자기 인생의 결정권 자이고, 자신의 선택이 정답이니까. 평소에 본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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