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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의 반딧불이 Dec 03. 2021

「그들을 구하려면 싸이버거를 잔뜩 사야 합니다.」


출간일 2018년 1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55쪽 | 412g | 148*210*20mm

ISBM 9788997820511

정가 5,800원




 "내 영혼에는 초원의 별이 흐릅니다."


 어느 날, 한 게임 커뮤니티에 글 하나가 쏘아 올려졌다.


 머나먼 옛날, 별과 바람을 벗 삼아 초원을 누비는 유목민의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 사실도 증언도 아니다. 꿈의 이야기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TripAdvisor.


 눈꺼풀이 세상을 가리우고 나면, 별빛과 함께 영혼의 형제들이 그의 시야를 채운다. 말 위에서 초원을 누비며 자유를 숨결과 같이 값없이 누린다. 기억에도 없는 풍광. 몸과 마음의 체험엔 없는,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만 있는 울림. 그렇지만, 의식의 그림자에서 일어나, 생생히 되살아나는 눈앞의 광경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을 뜨면, 차디찬 새벽 공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그는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을 흘린다. 돌아가고 싶다. 내 고향으로. 꿈에서만 볼 수 있는 내 영혼의 고향으로.


 적절한 묘사와 뽀인트가 살아있는 어휘 선택에 더해, 꿈에서 깨어나면 사라지고야 마는 세계가 주는 그 아련함…. 모니터 불빛으로 말라버린 안구를 적시기에 딱이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오토엔뉴스.


 그런데 그는 글이 끝나기 무섭게 고삐를 확 당겨, 이 슬픔을 달랠 수 있는 건 싸이버거뿐이며, 영혼을 달래고 싶으니 햄버거 먹게 돈 좀 달라는 앙탈과 함께 차갑고도 딱딱한 14자리 숫자를 남긴다.


 그렇다. 그것은 구걸글이었다. 싸이버거와 계좌번호에 얻어맞은 뭇 네티즌들은 허망함과 슬픔에 휩싸여 아이처럼 울게 되었다. 


 뒤통수를 보통 얼얼하게 만든 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글은 곧 인터넷 유행어가 되었다.


 "내 영혼에는 초원의 별이 흐릅니다.", "그들을 구하려면 싸이버거를 잔뜩 사야 합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KBS2, 「불후의 명곡(2011)」 中.


 짧은 글이지만 영향력은 적지 않아 팬메이드 만화가 등장한 건 물론이거니와, 몽골·중앙아시아 유목민 다큐멘터리 영상에 뜬금없이 싸이버거 얘기가 댓글로 달리는 건 예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소소한 대회 혹은 공모전에서 상품으로 걸리던 피자나 문화상품권의 위치를 싸이버거가 대신할 정도였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헤르만 케른(1839-1912), 「바이올린과 거지(1882)」. 


빌런, 우리들의 괴상한 이웃.


 비록 구걸글이지만 애정할 만하다. 한국전쟁 이후 들어갈 공장도 품삯거리도 없어 기타 줄 퉁기어 하루 밥값을 청하는 거리의 악사와 같은 이에게, 어떻게 미운 시선을 보낼 수 있을까. 축복을 빌어주면 빌어줬지. 비록 그것이 싸이버거로 빚어진 것이라고 해도.


 모두가 햄버거를 양껏 먹는데, 그는 몇 개의 햄버거를 먹었을까. 알 수 없다. 두 자리의 IP로만 남은 사내이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추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겨둔 계좌번호로 검색하면 흔적이 나오긴 하지만, 사칭도 많아서.


 다만 언젠간 먹고 말겠다며 과자 뒤꽁무니 쫓던 치타도 결국 과자를 실컷 먹게 되었으므로, 그도 희망하던 싸이버거를 먹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여하튼 싸이버거를 향한 그의 열정이 워낙 인상 깊었던 터라,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싸이버거 빌런'이라고 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영화 「약장수(2015)」 中.


 빌런. 악당(Villain)이라는 뜻이지만, 정말로 못돼먹은 인간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범법도, 모범도 아닌 그런 애매한 위치. 토론거리보단 얘깃거리에 속하는, 그런.


 괴짜라는 단어가 사전적으로야 맞긴 하겠지만, 어쩐지 괴짜라는 말은 나쁘지 않은 사람에게 붙이기엔 너무 독하다.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 자식은 머리가 살짝 돌았어.' 같은 말이니, 독하지 않을 리가. 하지만 빌런이라 부르니 이건 이거대로 입에 맞는 느낌이다. 빌런. 만화 속에 나오는 사고뭉치지만 밉지 않은 유쾌한 악동처럼 정이 가는 존재이다.


 그러고 보니 계급 나누기 좋아하는 현대인들의 언어답게 빌런에도 급이 있다. '-선생', '-좌', '-갑', '-맨', '-빌런' 등. 명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빌런'은 하끗바리들에게나 붙는 호칭이다. 아니, 감성 충만하고 영향력도 센 글을 남겼는데 고작 빌런이라니?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싸이버거좌로 격상되었는데, 그와 글이 고정되어 변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무덤에 들어간 뒤에야 인정받는 예술가들의 윤곽이 얼핏 그려지기도 한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YES24.


우리는 욕구에 솔직한 이를 사랑한다.


 그런데 구걸을 하면서도 미움받지 않는다는 점이 어떤 사람들에게 꽤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준 모양인지, 나름 정성을 들인 이야기가 붙은 광고글과 구걸글이 드문드문 나오기는 한다만, 아직 그의 아성을 넘보기엔 역부족이다. 왜일까. 그것은 솔직함이었다.


 싸이버거 소설. 훗날 '유성의 후예'라는 멋들어진 이름이 붙게 되는 그 게시글의 제목은 이랬다.


 '2천언만 주실 분...(슬픈 사연 있음...)'


 참으로 솔직한 제목 아닌가. 그런데 그의 아류들은 견본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제목에서부터 요구를 감추고 시작한다. 글의 차이를 논하기 이전에, 이미 자신을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결핍을 밝히니, 글쓴이는 그 자체로 서사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성공한 작품의 주인공도 그렇지 않던가. 결핍과 욕구, 행동과 성취.


 인간의 요리를 좋아하는 생쥐 레미는 직접 요리를 하고 싶어 하지만(욕구),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요리사가 될 수 없다(결핍). 그래서 인간 요리사와 짝을 이루어 직접 요리를 하고(행동), 끝내는 인정받는다(성취).

 -「라따뚜이(2007)」


 먹는 걸 좋아하는 팬더 포는 위대한 쿵푸 마스터가 되길 원하지만(욕구), 자신감도 체력도 없어 안 된다(결핍). 훈련과 대화로 깨달음을 얻어 강해진 포는 타이렁을 무찌르고(행동) 용의 전사로 인정받는다(성취).

 -「쿵푸팬더(2008)」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만화영화 「네모바지 스폰지밥(1999)」 中.


 그리고 우리의 싸이버거좌는 싸이버거를 갈망(욕구)하지만 돈이 없다(결핍). 그래서 소설을 썼고(행동) 그의 글에 감탄한 이들이 싸이버거 살 돈을 주었다(성취).


 그렇다. 그 아류들에겐 이런 성공적인 스토리가 없는 것이다.   


 그 스토리를 완성한 것은 결국 독자들이 펼친 지갑 일지는 모르나, 독자들이 지갑을 열게 만든 건 글쓴이 자신이었다. 역사 배경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커뮤니티에 걸맞은 유목민 전사들의 이야기. 별과 시간, 그리움을 키워드로 만든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는 그가 사랑받을 이유를 제공했다.


 그렇기에 응원한다.


 그가 닿을 초원이, 꿈에 그리던 초원이기를.


 그렇기에 희망한다. 


 그가 있을 초원에, 별이 비추어주기를. 


 싸이버거의 별이 비추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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