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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의 반딧불이 Aug 23. 2022

『하악하악』, 세대 간의 소통은 가능한가?


 "하악하악."


 텍스트만 보아도 무얼 뜻하는 지 알 것이다. 신음소리. 그러나, 어감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쓰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일상에서 들린다면 누군가 땀나게 뛰고 숨을 고르는 소리지만, 웹상에서 쓰면 의미가 다르다. 특히 게시판의 댓글에서 후렴구로 쓰인다면, 십중팔구 '당신이 올려준 파일 혹은 그림이 너무나도 야해서 신음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하악하악'. 대강 그런 뜻이다. 


 설명을 보고도 '아니, 저게 그런 뜻이었어?' 하고 의문이 든다면, 그건 그냥 그런 뜻으로 접해본 적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유행어라지만, 이미 너무 오래 돼 생명력을 잃은 표현이니까. 작가 이외수가 쓴 책의 제목인 '하악하악' 또한 그렇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tvN, 『신서유기 2(2016)』.


하악하악, 의외로 명상록


 사실, '하악하악'은 성적인 표현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덕후 커뮤니티에서부터 쓰였던 말인데, 출판사에선 이런 맥락을 차마 설명할 수 없었던 모양인지, "'거친 숨소리'를 뜻하는 인터넷 어휘" 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끝내버렸다.


 제목부터 인터넷 유행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아니, 목차부터 털썩, 대략난감, 캐안습, 즐! 등. 책이 인터넷 유행어로 가득찼다는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건 젊은 세대를 위한 재미난 책이다. 단지, 그 유행어들이 출판 당시(2008) 기준으로 봐도 좀 낡은 말이긴 했지만.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보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싱그러운 빛의 꽃과 물고기. 그리고 그런 우아한 그림과 재치있는 글을 한껏 돋보여주는 여백.


 해보지 않았던 영역으로 생각을 뻗게 만드는 짧은 글귀.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와 함께 이외수 특유의 언어유희가 깃든 대조법으로, 읽는 재미와 생각을 적당히 깨우는 재미를 갖춘 책. 


 그러니까 이 책, 보기와 달리 명상록이다. 이외수 작가의 괴짜 이미지와 인터넷에서 쓰였던 추임새 하악하악을 제목 쓰는 등 인터넷 유행어가 녹아들어있어 단번에 눈치채기는 힘들지만. 그래서 그런 건지 일단 출판사에서는 그림 에세이로 분류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양승희, 「"이 사람이 손대면 물고기는 밥상 아닌 하늘을 헤엄친다"」, 『머니투데이』, 2014-10-08.


 원래 에세이 장르에 속하는 책들이 활자 수가 조금 적은 편이긴 하지만, 『하악하악』은 쪽 당 글이 두 세줄. 많게는 네다섯 줄 정도에 불과해 비싸다는 의견도 적지 않긴 하다. 아무래도 작가 이외수의 인기가 제일 높았던 때인 데다, 세밀화 명인 정태련 작가의 그림까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모양.


 절판되지 않은 걸로 보아 지금도 팔리는 모양이긴 한데, 그런 와중에 중고 매물은 또 많고 싸다. 중고가 500원, 1,000원 매물이 대부분. 심지어 180원 하는 초저가 매물까지 등장했다.* 아무래도 베스트셀러였기에 매물이 많고, 출간된 지 14년은 된 데다 수요는 적어서. 또 얇아서 보관하기도 좋을 테고. 책 가격이 낮은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그런 단순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 와서는 가격은 큰 상관 없는 것 같다.

*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UsedShopHub/Hub/2867778, 검색일자: 2022-08-23.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만화영화 『네모바지 스폰지밥(1999)』 中.


네티즌 이외수, 갤주 이외수


 하악하악. 제목이 저렇다고 내용까지 외설스러운 건 아니다. 아니, 살짝 애매하다. 지금보다도 훨씬 자유분방했던 당시 인터넷 분위기덕인지, 아니면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 때문인 건지, 야동 언급이 좀 자주 나온다.


 이렇게 설명하니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야한 동영상을 보는 할아버지 역할로 나와, '야동순재' 별명을 얻으며 젊은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았던 거물 배우 이순재로부터 시작한, 네티즌 할아버지 열풍에 편승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외수는 정말로 네티즌 어르신이었다. 『하악하악』 부터가 2007년 3월에 개설한 SNS 플레이톡에 매일 써서 올린 글을 엮어 쓴 책이니까.** 앞의 글은 그냥 오해하도록 쓴 것이다. 어쨌든 아마, 그런 붐이 없었더라도 출판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2867778, 검색일자: 2022-08-23.


 그것 아니어도 전부터 채팅이나 인터넷을 즐긴다는 건 소개된 바 있긴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아마 출간 전인 2007년부터였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이외수 갤러리'를 만들어 작가 이외수에게 갤러리 관리 권한까지 주었다. 그리고 이외수는 그 기대에 부응해 젊은이들과 적극 소통하였다. 고민 상담부터 글에 관한 조언도 나누는 사뭇 훈훈한 광경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터넷 유행어가 나오기도 했다.



 게임 캐릭터 일러스트의 처참한 몰골을 본 뒤 "버럭, 남자가 여자 옷 입은 거 모를 줄 아슈?"***라며 일갈하는 댓글이 게임팬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하고.

*** 디시인사이드, 이외수 갤러리,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oisoo&no=15814, 검색일자: 2022-08-23.


출처: 인벤, https://www.inven.co.kr/board/lol/2653/1008439, 검색일자: 2022-08-23.


 문학인을 꿈꾸는 네티즌이 이외수 갤러리에 남긴 시가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라는 이외수의 감상과 함께 널리 퍼지기도 했다.


 심지어 디시인사이드 회원들이 이외수 선생님과 나누고 싶다며 야동을 공유하고****, 이외수는 기술적 문제로 볼 수 없어 좌절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으니,***** 그냥 편승이라는 말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 일명 '빅파이'. 파일 공유 웹페이지의 'bigfile'에서 유래한 은어.

***** 디시인사이드, 이외수갤러리,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oisoo&no=1453&page=438, 검색일자: 2022-08-23.


 그러고 보면 이런 모습은 지금 봐도 꽤 센세이셔널하다. 그도 그럴 게, 인터넷 커뮤니티를 저렇게 젊은 사람과 똑같이 즐길 수 있는 네티즌 할아버지는 충분히 존재할 수 있지만, 그런 모습으로 호감을 얻는 모습은 지금도 정말 힘든 일이니까.


 '야동순재'로 네티즌 할아버지 열풍이 불었다고 말은 하지만, 그런 네티즌 할아버지상에 부합하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이순재, 이외수, 혹은 '네이버 지식iN 태양신'으로 유명한, 치과의사 '녹야 조광현' 정도.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니고 '야동' 키워드가 붙었는데 호감을 얻는 건 더욱이, 이런 건 젊은 사람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열풍이라기보다는 이외수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김용운, 「[포토]'식객' 자운과 오숙수, '성찬도 우릴 무시 못해'」, 『이데일리』, 2008-05-29.


도인 이외수? 방송인 이외수?


 이외수는 작가 치고는 별난 구석이 많았다. 아니, 외형부터 규격 외였다. 호리호리한 몸에, 긴 수염, 땋아 묶은 긴 머리칼, 수수한 흰 옷…. 그의 상징적인 외형을 표현하라 하면 결국 무협지의 도인 묘사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개의 심정을 알기 위해 개집에 들어가 자본 적이 있다.', '글을 쓸 때 옆으로 누워서 쓰다보니 허리 건강에 좋지 않아, 앉아서 쓰는 컴퓨터를 쓰게 됐다.'는 등. 도인 같은 풍모와 글에 인생을 바친 듯한 괴짜 같은 행동. 그런 모습이 꼭 한국의 디오게네스처럼 보였는지, 다른 괴짜 같은 행동이 발굴되거나 해도 나쁘게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그런 지라, 그가 '야동' 얘기를 해도, 이외수라면 그래도 이상하지 않다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워낙 호감을 많이 얻었던 지라,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라디오 진행자, 드라마 『크크섬의 비밀(2008)』에 출연하기까지. 작가 이외수는 몰라도, 재밌는 할아버지 이외수는 아는 젊은이가 많았던 때였다.


 그래서일까, 이외수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훈장(1975)』, 『벽오금학도(1992)』 같은 소설이 먼저 나와야할 것 같은데, 어째 『하악하악』이 더 자주 언급됐다.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베스트셀러******이기는 하지만, 판매량으로 보면 3개월 만에 120만 부가 팔렸다는 『벽오금학도』******* 또한 절대 뒤지진 않는데.

****** 제주일보 편집부, 「베스트셀러 '하악하악' 10주째 1위 고수」, 『제주일보』, 2008-09-05,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2681, 검색일자: 2022-08-23.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barcode=9788965744436, 검색일자: 2022-08-23.


 그래도 이해는 간다. 확실히, 책으로 이외수를 만난 사람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이외수를 만난 사람이라면. 인터넷에서 이외수를 만난 사람이라면, 그에게서 기대하는 책은 응당 『하악하악』처럼 가볍고 재밌는 책이다. 적당한 유머, 적절하게 생각을 하는 문장, 풍부한 인터넷 용어에서 느껴지는 친숙함.  


 그런 걸 고려할 때 내용, 그림, 시의성까지 굉장히 적절한 책이었으니, 베스트셀러였던 게 납득이 간다. 이런 걸 보면 이외수의 기획이 참 대단하다 싶다. 과감함도 그렇고.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티빙.


하악하악, 요즘도 먹힐까?


 그러고 보면, 이 책이 나올 때만 해도 인터넷 문화는 서브컬처였다. 폐인문화, 햏자 등의 인터넷 문화나 유행어는 알음알음 퍼지긴 했지만, 그래도 수면 아래에만 있는, 일상과는 구분되는 서브컬처였다.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은 더 이상 '서브'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감이 있다. 이젠 우리네 일상과 인터넷을 분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송에서부터 인터넷 유행어를 쓰고, 심지어 문학잡지에서 개구리 페페가 표지를 장식할 정도니까.********

******** 민음사 홈페이지, http://minumsa.minumsa.com/book/21127/, 검색일자: 2022-08-22.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런 책이 더 나와도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하악하악』 만큼 성공하긴 힘들 것이다. 


 물론 인터넷 유행어와 정서를 양념처럼 살짝 넣을 수는 있지만, 『하악하악』처럼 인터넷 유행어와 글로 범벅이 된 책이 지금에 와서 10주 연속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무래도 힘들어 보인다.


 이제는 어르신이 네티즌과 똑같이 노는 걸 보고 '와, 저런 분이 인터넷을 저렇게 하신다고?' 하며 신기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금도 여러 기업과 정치인, 셀럽들이 '2030세대를 잡아라!' 라는 구호 아래 발을 바삐 놀리고 있고, 그걸 다들 아는 상황이다. 그리고 값싸게 보급된 통신기기는 소통 창구가 없는 사람들을 모두 인터넷으로 모았고, 네티즌은 이제 젊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됐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 어르신이 인터넷 유행어를 써가며 어필해봤자, 그러한 흥미를 유발할 수가 없다. 


 아, 그럼 답은 없는 것인가? 아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픽시브, EVS, https://www.pixiv.net/artworks/92229366.


 답은 취미이다.


 이따금 나이 든 정치인이 게임을 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민 게임 위치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MOBA 장르의 게임을 즐긴 것과 같은. 그게, 호의적인 반응은 없었기 때문에 반응은 좋지 않았느냐 반문할 수 있지만, 잘 보면 다들 댓글을 굳이 남기고 갈 정도로 관심은 가졌다. 정말로 관심이 없었다면 그런 많은 양의 댓글도 없었다. 다만, 해당 정치인의 이력으로 볼 때, 이벤트성으로 한 번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쇼'라고 부르며 외면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올리는 커뮤니티의 속성 상 자세한 예시를 들기는 어렵지만, 기성세대 어르신이 젊은이와 같은 취미에 관심을 보일 때, 젊은 사람들도 관심을 보였다.


 SNS에서 게임 캐릭터 이모티콘을 쓰는 전 장관이나, 게임을 즐겼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칼럼을 쓴 의원이나, 이따금 SNS에 게임 링크나 스크린샷을 올렸다 지우는 장관과 같은. 해당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의 관찰을 통해 진짜로 게임을 평소에도 즐기는, 자신들과 같은 취미인이라는 사실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같은 취미를 즐기는 젊은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얻고 있다. 그건, 누가 봐도 '쇼'는 아니었으니까.


 이외수의 경우도 잘 보면, 이외수 갤러리 말고도 커뮤니티 여기저기 관찰하며 즐긴다는 게 입증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철 지난 어른이 다시 인기를 얻기 위해 알랑방귀 떠는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진실성이야 말로, 2030세대를 잡는 원동력이다.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이젠 그들과 우정을 나눠야 하는 것이다. 이걸 우정이라고 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다를까?


 우정을 일컫는 말로, '같은 시간을 공유한 사람만의 특권'이라는 말이 있잖은가. 그런 것이다. 취미라고는 말했지만, 같은 시간, 같은 놀이를 즐기며 같은 정서를 나누는 동질감. 바로 그것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연결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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