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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Dec 31. 2020

난 뭘 하면 좋을까요?

영화 <줄리앤줄리아(Julie & Julia, 2009)>


하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아니면 지금 내가 과연 잘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는 ‘힘내세요!’ ‘다 잘될 거야!’ 등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특히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요즘 꽤 잘나가는 친구라면 괜히 얄미워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을지도. 그런 이유로 나는 번역 일이 없어서 반강제로 쉴 때면 오히려 자기 계발서 같은 책들은 되도록 읽지 않는다. 아무리 위로와 용기가 필요해도 자기 책까지 낸 인사들이 늘어놓는 성공담에 심사가 꼬여서 가자미눈을 할 테니 말이다.


1년 전쯤이던가? 번역 일이 없어 한창 심사가 꼬여 있을 때 (ㅎㅎ) 우연히 어떤 영화 한 편을 보고 꼬인 게 다 풀린 적이 있다. 사실 그 영화는 내가 뭐라도 글을 써서 여기에 올려보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 한 방이기도 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또다시 곱씹어 보는 영화 <줄리앤줄리아>다.


이 영화는 무려 50여 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살아가는 두 주인공의 삶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과거 프랑스의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와 현대 뉴욕의 요리 블로거 줄리(에이미 아담스). 두 사람은 이름이 비슷하지만 사는 곳도, 시대도, 하는 일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똑같이 ‘요리’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막막한 줄리아


난 뭘 하면 좋을까요?
뭔가 새로운 일을 찾고 싶어요.
- 줄리아의 대사 중에서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건너온 낯선 프랑스.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중년의 나이, 언어 장벽, 남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고정관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명문 요리 학교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담은 요리책을 펴내려고 노력한다.


내게 인상 깊었던 점은 ‘전설적인 요리책을 펴낸 프렌치 셰프’라는 성공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보여준 줄리아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였다.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줄리아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메릴 스트립의 멋진 연기가 한몫했을지도.)



우울한 줄리


한편! 한때 작가를 꿈꾸었던 줄리의 삶은 우울하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작은 집, 잘나가는 친구들,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까지. 그러다가 그녀는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줄리아의 레시피를 직접 요리하고 그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는 365일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댓글이나 방문자 수에 설레다가도 뜻대로 되지 않는 요리 때문에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우는 모습이 귀여웠던 줄리. 하지만 차근차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채워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느새 줄리아를 닮아있었다.


줄리아가 요리를 배운 건 남편과 음식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죠.
그러다 인생의 즐거움을 알았고요.
저도 이제서야 알 것 같아요. 줄리아가 그걸 깨닫게 해줬죠.
-줄리의 블로그 마지막 글 중에서



줄리아처럼 막막하고 줄리처럼 우울하다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마음속에 뭔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 ‘난 뭘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얄밉게 이러쿵저러쿵 충고하기보다는 ‘차갑지만 기분 좋은 바람’ 같은 걸 슬쩍 불어넣어 준달까? 왠지 모르게 힘이 난다. 뭐라도 가볍게 시작하고 싶어진다.


내가 힘이 들 때마다 속으로 되새기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주위가 깜깜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불부터 하나씩 켜나가면 된다.’

요새는 특히 더 이 말이 와 닿는 것 같다. 정말 별것 아닌 일부터 시작해보길. 그래도 새해니까. n


+

‘힘내라! 할 수 있다!’와 같은 말은 얄밉다고 해놓고선 오늘 같은 날 기어이 이런 글을 써 올리고 있는 나도 참…. ㅎㅎ 너무 째려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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