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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Aug 15. 2021

아무도 모르는 인어공주 이야기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인어공주> / 글그림눈큰



머나먼 우주의 은하수 어딘가에 인어들이 살고 있었어. 그들은 허리 위쪽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허리 아래쪽은 물고기 꼬리를 하고 있었는데, 별과 별 사이를 헤엄쳐 다니며 평화롭게 지냈지. 은하수의 가장 밝은 별에는 인어 여왕의 궁전이 있었어. 여왕에게는 어린 공주가 여섯 있었는데, 그중 막내 공주는 조금 특이했단다. 그녀는 외모를 가꾸느라 정신없는 언니들과는 달리 틈만 나면 궁전 밖으로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지냈거든. 


사실 공주들은 15살이 되어야 비로소 궁전 밖을 나가 별 여행을 할 수 있었어. 호기심 많은 막내 공주는 별 여행을 하고 돌아온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크나큰 즐거움이었지.

“내가 갔던 별은 온통 회색 모래 언덕뿐이었어. 정말 시시했지 뭐야.”

“난 붉게 빛나는 별에 가려고 했는데 너무 뜨거워 근처에도 못 갔어. 그뿐인 줄 알아? 너무 밝아서 하마터면 눈이 멀 뻔했다니깐.”

“막내 넌 나중에 어딜 가보고 싶니?”

난 저기 저 푸른 별에 꼭 가보고 싶어. 새까만 우주 속에서 유난히 푸른빛으로 빛나는 저 별이 너무 아름답거든.”

“지구 말이야? 거긴 우리랑 닮은 인간도 살고 있다던데.”

“맞아. 난 왠지 지구에 있는 모든 것과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얼른 15살이 되었으면.”




어느덧 시간이 흘러 막내 공주도 드디어 15살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어. 막내 공주는 언니들의 배웅을 받으며 궁전이 있는 별을 떠나 지구로 향했지. 과연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막내 공주는 모든 것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뭉게뭉게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 싱그러운 초록으로 살랑이는 숲, 깊이를 알 수 없는 에메랄드빛 바다까지, 지구는 막내 공주의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웠거든. 막내 공주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구를 구경했단다. 


그러다가 막내 공주는 우연히 바다 한가운데에서 아주 멋진 친구를 만났어. 그는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막내 공주처럼 몸에 꼬리가 달려있었지. 거대한 꼬리로 멋진 수영 솜씨를 뽐내다가 이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와 힘차게 물을 내뿜는 모습에 완전히 반해버린 막내 공주는 먼저 그에게 다가가 물었어. 


“안녕, 난 저 멀리 우주에서 온 인어공주야. 넌 누구니?”

“난 혹등고래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난 너무 외로웠거든.”

“왜?”

“인간들은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바다에서 잡아가거든. 내 친구들도 하나둘씩 잡혀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저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내가 기꺼이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그리하여 둘은 푸른 바닷속을 헤엄치며 며칠을 함께 지냈어.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혹등고래의 표정이 어두워지지 뭐야. 공주가 궁금해서 물었지.

“왜 그래? 나랑 지내는 게 재미없어?”

“아니야. 너와 함께 있어서 너무 행복해. 하지만 인간들이 언제 또 이곳에 찾아와서 우릴 잡아갈지 몰라. 나랑 있으면 너도 위험해질 거야. 그러니 얼른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렴.”

“아무래도 안 되겠다. 며칠만 기다려줄래? 내가 얼른 우리 별로 가서 널 도울 방법을 찾아볼게.”

막내 공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지구를 떠났어. 




궁전으로 돌아온 막내 공주는 언니들을 급히 불러 모아 지구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했어. 하지만 언니들에게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그때, 막내 공주에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문득 떠올랐어. 

‘그래! 궁전 저 멀리 새까만 소용돌이에 사는 마녀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녀가 날 도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하여 막내 공주는 남몰래 궁전을 빠져나와 어렵게 어렵게 마녀 성으로 찾아갔어. 마녀는 머리가 100개 달린 뱀이 땅에서 자라난 것처럼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 공주는 마녀를 보자마자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지만, 혹등고래를 생각하며 용기 내어 마녀에게 다가갔어.

그러자 공주가 찾아온 줄 이미 알고 있던 마녀가 먼저 말을 걸었지. 

“난 네가 이곳에 왜 왔는지 다 알아.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지. 네가 정말로 네 친구를 지키고 싶다면, 인간들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 못된 짓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어. 그러려면 네가 인간이 되어 그들과 직접 맞부딪쳐야 해. 하지만 한번 인간이 되면 다시는 지금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단다. 물론 네 별로 돌아올 수도 없지.”

“친구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공주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마녀는 펄펄 끓는 가마솥에 별똥별을 몇 개 집어넣어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물약 하나를 완성했어. 그리고 그것을 공주에게 주었지. 물약을 손에 쥐고 궁전으로 돌아온 공주는 곤히 잠들어 있는 가족들에게 눈물을 머금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어.




그 후 지구로 되돌아온 공주는 망설임 없이 마녀의 물약을 마셨어. 그러자 아름다운 꼬리가 사라지고 두 다리가 생겼단다. 인간이 된 공주는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마구잡이식 포획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또 아름다운 지구와 모든 생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열심히 알리고 설득했지.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과 뛰어난 말솜씨에 하나둘씩 감동한 사람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마침내 무자비한 포획을 멈췄단다.

공주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어. 하지만 그 대가로 다시는 궁전으로 돌아갈 수도, 가족을 만날 수도 없게 되었지.




세월이 흐르고 공주도 어느덧 인간과 똑같이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었어. 평생을 지구와 지구의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그녀는 죽기 전에 혹등고래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었단다.  

‘혹등고래가 과연 나를 알아볼까?’

공주는 마지막 기대를 안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어. 그리고 정말 우연히 태평양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던 혹등고래를 만나게 되었지. 혹등고래는 공주의 걱정과는 다르게 곧바로 그녀를 알아보았어. 그는 예전처럼 멋지게 물을 내뿜으며 말했단다.

“너였지? 나와 내 친구들을 구해 준 이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리고 고마워. 네 덕분에 우리 모두 무사했어.”

“그래, 그거 참 다행이구나.”

“그런데 넌 왜 아직도 여기 있니? 설마 너 우리 때문에 네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거야?”

“응. 하지만 난 괜찮아. 이 넓고 푸른 바다에서 너와 네 친구들이 마음껏 헤엄치는 모습만 봐도 좋으니까.”

“….”

혹등고래는 몹시 마음 아팠어. 그러다 그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힘껏 물을 내뿜으며 말했단다.

그거 알아?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평생 좋은 일을 많이 한 생명은 죽어서 별이 된대.”

“별… 별이 된다고?”

“그래, 사실 나도 너처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의 수명은 인간과 비슷하거든. 머지않아 너와 나에게 마지막 그날이 오면 우리 함께 별이 되어 우주로 날아가자. 그리고 별과 별 사이를 헤엄치며 실컷 노는 거야. 너희 별에도 가고 말이야.”


별이 유난히 눈부시게 빛나는 어느 날 밤.

태평양 한가운데 까만 밤하늘에는 별이 되어 우주로 날아가는 혹등고래와 공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대. 



그림  눈큰




실제로 혹등고래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한때 멸종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고래를 포획해 기름, 비료나 사료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죠. 다행히 1966년에 국제조약으로 포경이 제한되고 1973년에는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국제적으로 보호받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개체 수를 회복했고 멸종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혹등고래가 멸종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에 어쩌면 지구를 사랑한 인어공주의 숨은 노력과 희생이 있진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드엔딩인 인어공주가 조금이라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냈어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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