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제일 협업 안 되는 유형

일이 넘어올까 봐 벌벌 떠는 철벽이들

by 열닷새

철벽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마주쳤던 유형 중 하나는 ‘철벽이’들이다. 내 마음대로 철벽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사람들은 그저 순수하게 업무와 관련된 문의를 하러 찾아갔음에도, 본인에게 더 많은 일이 주어질까 전전긍긍한다. 그러고는 버릇처럼 “이건 제 일이 아니에요.", "앞으로는 저한테 오시면 안 돼요."라든가 “이건 닷새씨가 할 일이예요.” 등의 말을 한다. 나 역시 틈만 나면 일을 떠넘기려고 하는 사람과 근무를 했었기에 무슨 마음인지 잘 알지만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아무렴, 내가 동년배에도 하지 않는 일 떠넘기기를 경력이 25년, 30년 차의 부장, 팀장급에게 하겠냐는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 안 넘겨요


며칠 전 수출 제품의 사이즈를 고쳐야 할 일이 있었다. 공장과 IT를 비롯한 네 곳의 팀원들과 연차인 날에도 소통하며 온갖 문서에 제대로 표기되는지 확인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나머지는 확인이 다 되었고 마지막 하나, 관리팀에서 서류 작성을 하면 자동으로 발송되는 파일이 남았었다. 그저 단순히 정말 그 문서만 남았는지 확인하러 찾아갔을 뿐이다. 이미 세 번도 더 “이건 너네가 해야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터라 감정이 조금 쌓여 있었다. 담당자와 확인하던 중 갑자기 그 팀의 팀장님이 끼어들었다. “원래 닷새씨 팀에서 하던 업무인데 저희가 대신해주는 거예요. 닷새씨가 확인해야 되는 거고, 이 서류가 잘못 나가면 닷새씨 팀 책임이지 저희는 아니에요.”라며 몇 번이고 철벽을 쳤다. 그러고는 담당자를 바라보며 “이 문제에 부장님은 개입하시면 안 돼요. 이건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닷새씨랑 IT가 상의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예요. 닷새씨가 직접 소통하셔야 해요.”라고 했다. 순간 짜증이 치솟았다. 이미 내가 나서서 모든 문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틀리면 그들의 책임으로 하겠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 심지어 협조를 요청하러 간 것도 아니고 그저 확인만 필요했을 뿐이다. 대충 알겠다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뒤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경력 5년 차의 94년생 막내를 앞에 두고 저런 이야기를 하는 상급자를 보니, 참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사회생활을 워낙 오래 했으니 오만 사람을 다 만났을 텐데 얼마나 데인 것이 많았으면 저럴까 싶어 이해해보려 했지만 다소 불쾌하게 질척거리는 기분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왜 일부(라고 하기에는 다소 많은 느낌이지만) 철벽이들은 쉽고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협업을 망치는 걸까. 아이러니한 것은 철벽이들은 정작 본인 업무에는 자연스럽게 협조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굳이 메일로 내 컨펌을 요구하여 책임 회피를 하는 것은 덤이다. 특정 몇 명으로부터 이런 말을 하도 들으니 괘씸한 생각이 들어 이 사람들이 내 업무가 아닌 일을 이야기하면 "그건 저도 모르죠."와 같은 방어적인 태도가 취해진다. 짬을 내서 확인해 주고 답변해 봤자, 고마워하기는커녕 내가 물어봤을 때는 저런 태도만 취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제 직접 자리로 찾아가기보다 메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식으로 사무실 분위기는 점점 개인적으로, 그리고 삭막하게 변해간다.




어쩌면 나 역시 저들의 뒤를 밟아 철벽이 중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건가 싶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보고 진정한 사회인이 되어간다고 여기던데, 참 씁쓸하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사회생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인데 조금만 더 배려해서 기분 좋게 일할 수는 없는 걸까. 철벽이들과 대화를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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