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
Lost stars의 OST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하느님. 왜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에 낭비인가요.”
인생에 있어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청춘일 수는 있지만 육체적 신선함, 미지로의 유혹을 느끼는 무지함, 지금 당장 떠나도 리스크가 없는 어린 소생. 그런 건 분명 국한된 세월의 한 켠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에 낭비라는 애처로운 애덤 리바인(Adam Levine)의 목소리에 동요되면서도 노래가 담은 비극적인 메시지를 인정한다.
영화 ‘은교’에서 은교도 마찬가지다.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싱그러움, 하얀 피부,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며 웃는 눈. 그런 건 그 시기에 더욱 아름답게 돋보이는 요소들이다. 정작 은교 본인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모른다. 그래서 순결도 마음도 낯선 남자에게 쉽게 내어준다. 그래야만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고 은교가 겪었던 세상이, 은교의 몸이 말하기 때문이다.
청춘의 값어치를 알아보기에 요구되는 것은 연륜. 시간에게 소중한 것을 잃어보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것.
시인 적요는 그렇게 은교 본인도 모르는 은교의 아름다움을 흠모하며 상상 속으로 그녀를 채운다.
내가 그 둘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 세월.
인간의 눈은 겉모습만을 보고 육체만를 보기 때문에 내면을 올바로 볼 수 없는 한계를 가졌다. 그 한계는 많은 인생의 폭풍과 파도를 겪고, 무수히 많은 꽃들이 내 옆에 피고 지고를 반복했을 때에야 비로소 확장된다. 은교와 적요는 인간이 지닌 필연적 한계를 뛰어넘기에는 그저 너무 연약한 인간들이었을 뿐.
아름다운 은교를 글로 담는 건 적요의 제자 서지우의 광기 어린 명예욕으로는 불가하다. 소중한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 세월이 알려준 통찰력을 가진 시인 적요가 가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