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뻑뻑하고 살짝 뒷골도 당기고. 간밤에 잠을 설쳤더니 아침부터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나이 서른이 넘어가도 홀로 집에서 자는 건 여전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 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어록이 혼자서 스르륵 열릴지도 모를 거라는 상상은 왜 하게 되는 걸까? 남편과 함께 잘 때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인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보조 잠금장치까지 걸어놨건만 혼자 자야 하는 이 밤, 공포는 꼭 닫힌 문으로도 새어 들어오는 모양이다.
남편이 출장을 갔다. 짐을 싸는 남편을 향해 옷가지는 넉넉하게 챙겼는지, 세면도구는 어떻게 구비해야 하는지를 아이 챙기듯 세세하게 나열하면서 정작 일주일 동안 혼자서 지내야 하는 나는 미처 챙기지 못했다. 오히려 남편이 잘 잘 수 있겠냐며 나의 안위를 물어온다. 홀로 드는 잠자리가 익숙지 않음을 서로가 알기 때문이다. 자기 한 몸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부부는 자기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챙기는 일을 자처한다. 작은 일도 세심하게 돌본다. 그런 짝이 곁에 없으니 그날따라 유난히 집이 크게 느껴졌다. 팔꿈치를 뻗어도 닿는 것은 극세사 이불뿐이다.
칠흑같이 어두울수록 상상력은 날개 돋친 듯 뻗어나가는 법.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암막커튼을 걷었다. 가로등이 안 방을 훤히 비추고 나서야 꽉 힘을 주었던 어깨가 풀린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드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나약해진 것 같다는 생각.
부모님이 바쁘셨는지 아니면 기념일을 딱히 챙기지 않는 가족 문화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선물도 받지 못했다며 한숨을 폭 내쉬던 해마다의 5월 5일이 기억난다. 뱃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딱히 가지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리도 허했던 걸 보면 나는 그저 챙김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네가 여전히 어린이인 것을 축하해. 너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어. 그저 존재로써 응원받고 다독여지기를 바랐다.
머지않아 챙김받는 시기가 끝날 거라는 걸 안뒤로부터, 빨리 자라기로 했다. 선물을 못 받아도 종종거리지 않는 의연한 태도를 가지고 싶었다. 어른은 돈을 버니까 사고 싶은 것도 맘껏 살 수 있을 거였다. 지켜보는 이 없이도 홀로 굳건할 것이었다. 이 땅에 나를 책임질 이는 오직 나뿐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단단해져야겠다 싶었다. 허기를 느낄 새 없는 사람처럼 내 몫을 챙겼다.
그런데 남편 없이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때로부터 한 발자국만치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나는 아직도 나를 살펴줄 이가 필요하구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언제까지나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사람이구나. 결혼한 이후로 홀로 잘 사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어려운 미션인지 체감한다. 나는 그럴 위인이 못되므로 정말 결혼하기를 잘했다.
혼자서는 잠들지 못하는 어른에게, 다정하게 안위를 물어주는 타인이 필요한 이에게 결혼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준다. 약간의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단잠을 재워주는 이가 삶에 존재하는 것을 은총 아니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야 안다. 내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려고 신이 어린이날마다 아껴둔 것을. 남편이 없는 이 밤, 빈 집만큼 은총의 자리가 크게 다가온다.
결혼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만드는 동시에 약함을 인정하는 강인함을 준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날, 비로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완성된 느낌이다. 암막커튼은 단정하게 쳐져 있고 도어록도 잠자코 있다. 그간 밤잠을 설쳐 쌓인 피로에 눈이 저절로 감긴다. 남편의 코골이마저 자장가 삼아 깊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