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아. 엄마는 새해가 되어서야 작년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네. 변명하자면 네가 열감기를 앓아 매일같이 병원을 오가기도 했고, 또 아빠랑 며칠을 다투다 화해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린 탓도 있어. 언젠가 다툼에 대해서도 편지를 써보고 싶은데 오늘은 논외로 하자. 참고로 부부는 싸우면서 단단해지는 거니까 가끔씩 엄마 아빠가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대신 네 앞이니 조심조심해볼게.
너는 지금도 어린 아기지만, 작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지. 지난번 편지에서 엄마의 사랑의 언어가 ‘함께하는 시간에 나누는 대화’라고 했던 거 기억하니? 우리가 교감은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 대화가 통하는 건 아니잖아. 이참에 고백하자면 아빠도 출근하고 집에 없는 날이면 너와 둘이 있는데도 엄마는 종종 혼자인 것 같았어. 혼자가 아닌데도 혼자인 기분. 하지만 절대 혼자는 아니어서 계속해서 너에게 온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현실. 그래서 육아가 어려운 건가 봐. ‘에’와 ‘오’ 사이 어딘가의 소리로 옹알이하는 너를 내려다보는 일은 분명 크기를 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차오르는 일이지만 어느 날은 딱 그만큼의 고독으로 다가오기도 하더라.
그런 와중에 마음을 지키는 일은 단순했어.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 어제의 후회에 물들지 않고 내일의 허상에 낙관하는 것이 아닌 그저 주어진 순간을 너와 함께 몰입하는 것. 날이 좋으면 산책을 나가고, 배곯지 않게 든든히 먹이고, 졸려하면 재우는 단순한 하루를 충실히 사는 거야. 그러다 보면 아빠가 집에 왔고 나는 또 너의 사소한 일과를 말하며 하루를 마감했지.
물론 매일 그렇게 사는 건 쉽지 않은 탓에 어떤 날은 백 미터 달리기 주자처럼 필사적으로 살아내고 그다음 날은 지쳐 방전된 채로 느릿한 걸음을 반복하다 보니 벌써 일 년이 지났네. 사실 진리는 단순한데 그 단순한 게 엄마는 늘 어렵단다. 그래도 지난한 날의 실패를 밑거름 삼아 올해는 좀 더 단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 사이에 너는 키가 22cm나 자라고 엄마, 아빠, 이거를 말할 수 있게 되었네. 이번 해에는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찬송아, 다가오는 새해에도 딱 오늘 하루만 잘 살아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