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60억 인구라면 60억 명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60억 가지의 감격, 애틋함, 애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에게도 우리 엄마는 복잡 미묘하고 특별한 존재다.
내 주변 대부분 사람들은 엄마를 사랑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결국에는 엄마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철없던 시절,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전심으로 동의할 수 없어서 의아했다.
스무 살 이전에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했고 스무 살 이후에는 엄마와 치열하게 싸웠다. 이십 년간 나에게 묻어 지워지지 않는 엄마의 흔적들을 지우려 애썼다. 교회에서 하는 나눔의 절반은 엄마였고, 어느새 엄마는 나의 가장 큰 피난처에서 나의 고난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엄마에게서 멀어지려고 할수록 엄마와 가까워진다는 걸 알았고, 엄마는 나의 우주였으며, 엄마는 엄마 삶이 최선이었음을 나이가 먹어 알게 되었을 즈음, 부산 여행을 갔다. (유럽 여행 얘기 중에 갑자기 부산 얘기 좀 꺼내겠다)
홀로 떠난 여행지, 부산의 보수동 책 골목. 거기에 '우리 글방' 이라는 이름을 한 책방이자 작은 카페가 있다. 앉아서 중고책을 조금 읽다가 괜찮길래 구매해야겠다 싶었고, 오래 읽고 싶어서 그 자리에서 카푸치노도 주문했다.
그 책방은 감상이 있는 책방이어서 밥 말리와 빌 위더스의 노래를 엘피로 틀 줄 알았다. 그렇게 아날로그 감성에 푹 빠져서 책을 읽다가, 정말 아무 개연성 없이 엄마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엄마한테 물었었다. 엄마는 만약에, 내가 가게를 차려준다고 하면 어떤 가게를 하고 싶냐고. (차려줄 돈 없음) 나는 엄마가 맥주를 좋아하니까 호프집이라고 말하거나, 남의 집 죽어가는 화분도 기막히게 살려내니까 꽃집이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의외로 작은 서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왜?라고 물으니 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맞아. 엄마는 그랬다. 삶이 원망스러워서 술 진탕 마시고 들어와 뻗어도 다음날 저녁이면 어제치까지 밀린 일기를 썼다. 새해가 다가올 때가 되면 나에게 다이어리 하나만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나는 그런 게 귀찮으니까 유니클로에서 히트텍 세일할 때 후려쳐서 쇼핑하고는 사은품으로 준 다이어리를 주거나 뭐 그런 식으로 엄마의 부탁을 대충 때웠었다.
엄마가 여기 부산에 오면 참 좋았겠다.
토요일마다 일찍 퇴근하고 와서 조성모의 1집을 틀고 청소기를 돌리던 조성모 광팬 아줌마,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소설책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던 엄마. (그 책이 그렇게 꺼이꺼이 눈물 나는 책인 줄 알았으면 난 엄마에게 안사다줬을꺼다)
나에게 부산은 휴가를 내서 얼마든지 올 수 있는 여행지였다. 그리고 내가 벌어서 내가 온 여행이라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렇게 온 여행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엄마는 아니다. 삶이 고단하고 다리가 퉁퉁 부어서,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어도 나와 민정이가 밟혀서 매번 제자리로 와 묵묵히 엄마로서의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고향 친구들이 있는 속초에도 못 내려가고, 그 좋아하는 바다를 십몇년을 가지 못했겠지. 큰 눈에 곱슬머리를 가져 꽤 미인인 엄마는 지금 많이 늙어서 어느 날은 엄마가 너무 작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생각나서 부산의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영화 감상 책을 읽으며 말도 안 되게 눈물을 흘렸다. 참아볼라다가 참을 수 없어서 소리 없이 서럽게 울어 휴지가 필요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때 엄마 생각을 하면서 운 이후로 기적같이 나는 엄마의 인생이 해석이 되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삶의 방식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엄마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나를 사랑했다. 그 방식이 합당하지 않더라도 엄마는 엄마가 받은 사랑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나에게 주었음이 진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부산에서 올아와 엄마와 진심으로 웃으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고, 아직도 가끔 싸가지없이 대들지만 낯간지러운 사랑한다는 말도 먼저 한다. 물론 문자로.
부산 여행은 그렇게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을 회복시켰다. 조금 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건은 무조건 여행 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씨름한 문제를, 풀어보려고 치열하게 애썼던 실타래를 여행의 자리에서 해석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벧엘처럼. 그래서 기억력이 나쁜 내가 아직도 '우리 글방'을 기억하나 보다.
스위스 여행에서 나는 부산여행과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물론 대상은 동일하다. 나의 우주. 스위스에서 나는 조금 더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잔인한 죄인인지를 부지중에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