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2

by 윤지영



인터라켄이 왜 아름다운지는 눈뜨고 나서 창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초록색, 파란색, 흰색이 어우러진 자연 본연의 색으로 인해 이 도시는 아름답다. 길가에 인적이 드물고, 아이들의 놀이터조차 나무로 듬성듬성 만든, 밤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나라.


61760030.JPG 아기자기한 스위스 마을
61790010.JPG 이 세상 평화의 근원지 같아보이는 레만 호


말이 없는 산맥과 호수를 잠자코 보고 있노라면, 여기의 동화 같은 마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명확하게 단 한 사람. 엄마.


나의 엄마는 척박한 인생을 살았다. 속초 바다 앞, 큰 눈에 곱실거리는 머리를 한 엄마는 서울로 올라와 아빠를 만났다. 아직도 기억나는 기다란 반지하 집에서 속초 새댁은 나와 동생을 키웠다. 두 딸이 방황할 때도, 주변에 의지의 대상이 없더라도, 삶이 그대를 괴롭게 할지언정 그녀는 엄마라는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속초 바다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같이. 자신의 흰머리가 검은 머리카락수를 역전하고, 눈가의 잔주름이 큰 눈 위로 내려앉는 와중에도 한결같았다.


엄마를 생각하면 햇빛을 받지 못한 어여쁜 꽃 같다. 탐스럽고 무럭무럭 자라나 잎을 피워야 할 본분이 있는데, 햇빛이 없어 꽃은 고개를 숙이고 만다. 보송보송한 꽃잎은 조금씩 마르고 탄력 있는 잎사귀는 손을 아래로 축 늘어트린다. 고단한 세월이, 매일 일기를 쓰고 서점을 차리고 싶다던 엄마의 문학적인 삶을 조금씩 훔쳤다.


나는 꽃을 키우지 못한 빛을 내가 다 가지고 간 거 같아 죄스럽다. 내가 벌어 내가 온 여행이지만 여기서 본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더욱 엄마 생각이 난다. 다른 여행지보다 효도관광이 많아 보이는 이 곳은 노년에 오기에 알맞은 곳이다. 아직 두다리 건실한 나는 조금 더 고생스러운 여행을 해도 괜찮으니 나대신 엄마가 여기 와서 이 나라를 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엄마. 여행 오기 전, 엄마가 울릉도에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바쁘다며 그녀의 소원을 묵인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예전부터 싸가지가 없던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싸가지 없을 예정인 건가.


엄마는 그래도 큰 딸이 나름 먼 여행 떠난다면서 출국 전날 오만 원짜리 몇 개를 쥐어주었는데, 나는 한 번만 거절하고 두 번째에 냉큼 받아서 여행길에 올랐다. 함께 가지 못한 울릉도가 내심 찔려서 그 돈으로 파리 몽쥬 약국(한국인들의 화장품 쇼핑 성지)에서 클라란스 화장품 두 개 샀는데, 이걸 보상이라고 내밀 나의 마음이 참 염치없고 부끄럽다. 그러나 정작 엄마 앞에서는 나 혼자 여행해서 미안하다고 말도 못하고, 나 밖에 없지? 그런 말이나 내뱉겠지.


불현듯, 삶이 준 숙제에 순종의 순종을 거듭한 엄마의 인생이 하늘을 찌를 거 같은 스위스의 산보다 위대하게 느껴진다. 세상 만물보다 한사람이 귀하고, 나의 엄마는 나에게 훨씬 더 귀중하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아름답기만 한 스위스에 엄마가 오면 그녀 인생의 노고가 조금은 보상이 될까.


엄마의 노년은 다시 어여쁘게 꽃 피울 수 있을까.


융프라우의 꼭대기에 올라 집에다 엽서를 보냈다. 여기는 너무 아름다워. 한국에 도착하면 우리 같이 여행을 가자. 엄마는 스마트폰이 아니라서 동생이 대신 엄마의 사진을 보내온다. 작은 액정으로 단잠을 자는 엄마를 본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엄마를 알게 된다. 그녀의 인생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 이해하게 된다. 모든 딸들은 엄마에게서 벗어나려 애쓰다 결국 엄마의 인생을 답습하게 되는 것처럼, 나도 무던히 벗어나려던 엄마의 길에서, 결국 회귀하겠지.


속초를 떠나 서울로 온 엄마, 한국을 떠나 스위스로 온 지영이. 참 닮은 두 사람.


나는 가끔 엄마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쓰는 것이 두렵다. 표현력이 부족한 내가 위대한 엄마 인생을 불쌍하게 보이게 할까 봐. 그리고 꽤 괜찮게 포장한 나의 인성이 들통날까 봐. 그럼에도 엄마에 대해 쓰는 이유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날것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울분을 토했던 날의 배의 배로 엄마를 사랑하는, 그리고 이해하는 글을 쓸 것이다. 글은 진심으로만 써지니까 나는 앞으로 배의 배로 엄마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겠지.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나처럼 인성 쓰레기 자식도 엄마랑 다시 관계를 쌓아갈 수 있으니, 혹 누군가 당신의 부모를 원망하고 있다면 차근차근 폭풍의 시간을 겪고서는 다시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인터라켄 호스텔에 붙어있었다. 웃고 춤추고 사랑하기에도 인생은 모자라다고.


여행 중에 그린 그림. 글과 개연성 없음..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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