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곳

여기는 바르셀로나

by 윤지영



덜 마른 머리를 탈탈 털며 숙소에서 나왔다. 어느 야경 못지않다는 몬주익 분수쇼를 보기 위해서다. 반듯한 도시의 블럭 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야 우리를 반기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처음 만난 바르셀로나는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우선 프랑스 니스에서 바르셀로나로 넘어오는 유로라인 버스가 엉망진창이었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 같은 곳에 버스 정류장 팻말이 붙어있는 거부터가 심상치 않았는데, 원래 새벽 3:15에 떠나야 하는 버스가 4:00에 오는 게 아닌가. 그래도 살았다며, 바르셀로나에 갈 수 있겠다며 언니와 얼싸안고 탑승한 버스는, 갑자기 자기네는 바르셀로나가 아닌 이탈리아 베네치아행이라며 하차하라고 했다. 뭐여. 그렇게 우리는 또 황무지에 덩그러니 떨궈졌다. 그나마 한국에서 싸온 누룽지가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분노를 달래주었다. 누룽지 만세다. 한국 버스 시스템 만세.


오매불망 기다리던 바르셀로나행 유로라인 버스는 결국 새벽 5시에 왔고, 따지고 소리칠 기운도 다 소진된 우리는 9시간을 꼬박 달려 오후 2시에 바르셀로나 산츠역에 도착했다. (여러분. 유로라인 버스 강력하게 비추 합니다. 타지 마세요. 제가 유랑 카페에도 글 쓸 거예요. 타지 말라고.)




성당에서 본 걸 그려보았다




시에스타. 태양을 피해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낮잠을 잔다는 스페인 사람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일요일이어서 그런 건지 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으스스했다. 이렇게 인적 없는 관광지는 일평생 처음이었다. 스트리트 문화를 완전 사랑하는 나는 바르셀로나 거리를 메우는 그래피티만큼 열정적인 에너지를 기대했는데, 이 곳은 잠들어버린 도시였다. 한국의 여름 저리 가라 하는 뜨거운 태양과, 열심히 길가던 우리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침을 뱉은 정신 나간 인간(우리는 봉변을 당했다), 수상하리만치 고요한 바르셀로나의 거리... 뭐야. 내가 개고생 해서 온 나라가 고작 이런 정서라고? 모든 게 미심쩍었다. 오후 내내 여기에 왜 왔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래도 몬주익 분수쇼라도 보자고 숙소에서 사부작사부작 나오는 길이었다.




바르셀로나 마켓에서 만난 과일들





에스파냐 광장을 가로지르는 분수쇼는 명성대로 웅장하고 신비로웠다. 적재적소에 바뀌는 조명과 오묘한 음악까지 곁들여져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 넋까지 빼기에 충분했다. 낮에 잠들었던 모든 사람이 광장으로 모였는지 시끌벅적해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뭐, 낮보다는 밤이 낫네. 우리도 시원한 물줄기와 이 도시가 주는 밤을 만끽하며 분수쇼를 즐겼다.



분수쇼를 감상한 지 얼마나 됐을까. 숙소에 가려고 돌아오는데 공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그 중심에는 버스킹을 하는 세 명의 남자들이 있었고. 그리고 그들의 음악. 충격적으로 좋은 음악이었다.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자 누가 있을까. 아. 왜 나의 글은 음악을 옮기지는 못하는가. 나의 글 실력마저 한탄스럽다. 바이올린 선율을 듣는 순간 나와 언니는 방금 본 몬주익 분수쇼도 망각하고 이 밤을 풀어내는 음악에 철저히 몰두했다. 여행에는 자고로 바다, 예술 그리고 음악이 있어야 한다는 나의 지론을 만족시키다 못해 초월시키는 그런 음악을 그들이 하고 있었다.




낮보다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의 밤




전자 바이올린, 첼로, 기타 세 가지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음악. 파리의 센 강에서 음악을 하던 남자의 기타 가방에도 우리는 유로를 떨어트렸고, 베르사유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아코디언을 치는 두 아저씨에게도 유로를 지불했는데, 이건 2유로 동전으로는 환산되지 않는 연주였다. 탐탁지 않은 바르셀로나의 이미지를 뒤엎어버리기에 충분한 예술이다.


우리가 유럽에 온 이유는 더 큰 세상, 현실로부터 도피, 다양한 예술, 그들의 삶. 이렇게나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소 앞에서 브이를 그린 우리 사진보다, 위엄 있는 자연과 구부정해도 멋진 할아버지들을 더 많이 찍었다. 뽀샤시하고 예쁜 원피스를 입은 우리의 모습도 물론 있지만, 기차에서 쭈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잠을 쪼개 글을 쓰는 우리가 더 짙은 모습으로 존재했다.


스페인 광장에서 자신의 연주에 심취해 페달을 밟고 선율을 울리던 바이올리니스트.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것도 망각한 채 밤늦게까지 그 자리에 있게 해 준 예술가에게 박수와 유로를 아끼지 않던 사람들. 그들이 바르셀로나의 조각을 완성시켜주었다. 이 풍경을 알게 해줘서 고마웠다.


우리가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걸어 다니더라도 예술에 대한 서포트는 하자며, 그림으로 작은 예술을 하는 우리는 예술가들을 위해 기어코 그들의 CD를 샀다. 지영아. 시디플레이어도 없으면서.








파리만 좋은 줄 알았는데, 예술가들이 왜 바르셀로나를 사랑했는지 오감으로 알게 되었다. 사람도, 영화도 반전이 매력 있듯이 낮과 밤이 완전 다른 바르셀로나의 밤을 나는 잊지 못할 거다. 외롭게 그림을 그리고 사무치는 밤 자락에 글을 꾸덕꾸덕하게 눌러 담을 때, 이 바람과 이 음악이 생각날 거 같다. 이렇게 여행지에서의 영감이 또 하나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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