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

섹스는 좋은 것인가?

[노파의 글쓰기]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

by NOPA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중 제일 처음에 본 것은 <더 랍스터>였습니다. 대학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제가 좋아할 것 같다며 추천해줬습니다.


언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이었는데, 종종 제가 한국 사람 같지 않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언니가 정의한 한국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이 영화에서 제 불분명한 정체성의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언니의 짐작은 정확했습니다.


저는 <더 랍스터>의 기괴함이 엄청나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묘한 유머감각과 잔인함의 코드가 저의 취향을 관통하는 것을 느끼며 그때부터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아마 저의 이상함의 일부는 그리스에서 온 것인가 봅니다.


그리고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보며 <더 랍스터>는 완전히 순한 맛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란티모스의 영화를 볼 땐 모든 윤리의식과 도덕관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원형이 시작되는 그리스 사람답게 속세인들의 전두엽을 후드려 패는 스토리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동방예의지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가 보기에 그의 영화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가여운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감독이 가장 두들겨 패고 싶은 것은 성 윤리였던 것 같습니다.


1. 섹스는 좋은 것인가?

만일 우리가 도덕과 윤리 규범을 습득하지 않은 아기의 상태라면, 모든 성적 행위를 나를 즐겁게 하는 ‘좋은 것’으로 판단할 겁니다.


그러나 아기일 때 우리의 몸은 이런 성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우리는 그저 버둥거리며 이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몸이 그런 즐거움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땐, 이번엔 우리의 뇌가 더 이상 아기처럼 순수한 상태가 아닙니다.


온갖 사회 윤리와 도덕 규범이 우리 머릿속에 견고한 성곽처럼 쌓아 올려져 우리는 이 틀 안에서 행위의 의도와 결과를 평가합니다.


따라서 순수하게 성행위가 좋은 건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몸은 어른이고 뇌는 아기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벨라는 성인의 몸에 아기의 뇌를 이식한 존재로 그려지게 되는 겁니다.


어른이자 아기인 벨라는 자위와 섹스를 ‘좋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합니다. 그러니 좋아하는 섹스를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매춘에 대해 조금도 ‘잘못됐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매춘을 합니다.


이 사실을 안 벨라의 애인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길길이 날뜁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원래 벨라의 특수한 상태(낮은 지능과 아름다운 몸)를 이용해 벨라와 실컷 섹스를 한 후 지루해질 즈음 버리려고 했습니다. 늘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잘못됐다는 감각'을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벨라가 섹스 후 돈을 받았다고 하니, 마치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인간을 본 것처럼 그녀를 비난하고 모욕합니다.


2. 매춘은 나쁜 것인가?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는 자신이 도박을 해서 번 돈에 대해선 아주 으스대면서, 벨라가 매춘으로 번 돈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인 양 혐오합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대단한 것은, 벨라가 남자를 보며 느꼈을 그 기괴함을, 관객에게도 충분히 납득시킨다는 점입니다.


왜 빵을 사기 위해 한 매춘은 더럽고, 크루즈 여행 비용을 마련하려고 한 도박은 안 더러운가? 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게 합니다.


물론 영화 밖에서는 답이 분명한 질문입니다.

한때 강원도로 라스베가스로, 카지노 원정을 다녔던 저로서는 도박으로 번 돈이 매춘으로 번 돈과 비교되는 사실 자체에 모욕감을 느낄 지경입니다.


당연히 매춘이 더 나쁘지!

그러나 왜? 라는 질문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원래 그런 거니까! 라고 우기는 것 외에는.


사실 노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매춘이 도박보다 신성해 보이기도 합니다. 벨라가 번 30프랑은 말 그대로 땀 흘려 번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의 약혼자가 말했듯, 그것은 많은 액수의 돈도 아닙니다.


악취나는 사람, 살 많은 사람, 변태같은 사람을 엄청난 비위와 인내심으로 안고 뒹군 결과가 고작 30프랑인 겁니다. 즉 결코 쉽게 번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말을 적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그 끓어오르는 거품은 그래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리 윤리와 도덕의 실체일 겁니다.


어떤 실증적인 근거도 들이대지도 못하면서 그냥 이게 옳으니깐 그런 줄 알라고 하는 것.

거부하면 더러운 것, 부도덕한 것, 하면서 단전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

순수한 통제.


3. 매춘이 더러움을 획득한 역사

사실 매춘이 '더러운 짓'이 된 이유는 가부장제의 역사에서 간단하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허락되지 않았던 과거에 매춘은, 아마 여성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생산 활동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섹스 산업은 언제나 불황을 모르다 보니,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 이 업계에서 한 밑천 마련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수 있었을 겁니다. 거기에 ‘더러운 짓’이라는 윤리적 평가가 따르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자들에게 유일한 생산 활동일 수 있는 이 일에, ‘아주 잘못된 일’이라는 윤리적 평가를 주홍글씨처럼 새겨두었고, 그 결과 여자들은 오래도록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돼야 했습니다.


심지어 남자들은 일과처럼 매음굴을 드나들었던 시대에도 매춘 여성은 영혼까지 타락한 존재로 비난받았습니다.


이런 인식은 모든 문화권마다 엄청나게 단단하게 뿌리내린 것이어서, 매춘 여성을 사람 대접해 준 남자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자로 추앙받습니다. 이를테면 부처라든지, 예수라든지 하는 분들 말입니다.


그래서 섹스로 번 돈으로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학교 수업료를 내고, 사회주의 운동에도 참여하는 벨라를 보면서 근본적인 것들을 질문하게 됩니다.

그건 언제부터 나쁜 것이었나. 왜 나쁜 것이 되었나..


4. 가여운 것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는, 왜 제목이 ‘가여운 것들’인가였는데, 이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바로 벨라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게 된 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 벨라는 모든 삶의 의미를 맛있는 것을 먹고, 기분 좋게 섹스하는 것에서 찾는, 순수하게 동물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극한 연민을 느낀 순간부터, 그래서 가진 돈을 전부 그들에게 줘버린 순간부터 벨라는 누군가를 돕는 일에 대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즉 벨라가 동물적인 삶에서 좀 더 고차원적인 삶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바로 ‘가여운 사람들’인 겁니다.


아마도 감독은, 인간을 진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연민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러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즉 끝내 동물적인 욕구에 머무는 사람, 특히 잔인함을 즐기는 사은 아예 동물로 만들어버립니다.

역시 그리스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결론입니다.


그 동물은 인간의 몸을 하고 있어서 엄청나게 괴상해 보이데,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괴상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인두껍을 쓴 동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5. 그럼에도 엄청나게 웃긴 영화

그러나 질문만 심각하지, 영화 자체는 전혀 심각하지 않습니다.


기괴하고 어이없는 스토리에 5분마다 빵빵 터지고, 환상적인 영상미에 넋을 놓게 됩니다. 물론 제 유머 코드가 이상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이 웃은 것은 있습니다.


특히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의 시그니처는 기괴한 춤 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춤 역시 완벽하게 기이하고 괴상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그의 괴상함이 정말 좋습니다.


6. 그리고 엠마 스톤.

<버드맨> 때부터 좋아했는데, 늘 궁금했습니다. 인생에 특별한 사건도, 이야기도 없는 사람이, 대체 왜 연기를 잘하는 걸까. 이 절박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스톤이여,

나는 그동안 당신이 그냥 연기를 꽤 하는 헐리웃 배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어떤 지점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몰라봬서 미안합니다. 아마 당신의 유일한 단점인, 지나치게 예쁜 얼굴때문일 겁니다. 담배를 좀 피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러나 목소리를 떠올려보니 이미 피우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저 당신의 다음 영화가 궁금할뿐입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3723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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