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 글쓰기] 서울의 봄 리뷰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결말을 알면서도 긴장과 분노로 치를 떨며 본 탓에 진이 다 빠졌습니다. 이것만 봐도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천만 영화입니다.
역사라는 명백한 스포가 있는데도, 무려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달려가 넷플릭스 한 달 구독권보다 비싼 영화를 보게 했습니다.
인스타 팔로워 만 명 모으는 것도 온 우주의 기운을 쥐어짜야 하는데, 그 사양 산업에서 천만 명이 돈을 쓰게 하다니! 분명 말도 안 되는 뭔가가 있는 겁니다.
사실 영화는 모든 말도 안 되는 것들의 향연입니다.
초기 대응을 지시해야 할 국방 장관이 미 사령부로 도망간 일이나, 내란 상황에서도 홀짝홀짝 차를 마시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군 수뇌부, 그리고 야욕에 미쳐 전방을 지켜야 할 군대까지 빼돌린 전두광이까지! 그중 가장 말이 안 되는 건 이 모든 일이 실화라는 사실입니다.
다들 한 방에 몰아넣고 어찌나 쏴 죽이고 싶던지요.
저처럼 온순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건, 배우들의 연기가 그만큼 탁월했다는 뜻입니다. 저의 난폭함은 전부 탄탄한 각본과 압도적인 연기 탓입니다.
1. 이 영화의 유일한 판타지는?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내 안의 T를 소환하여 보니, 이 영화는 선악에 관한 것이라기보단 권력 다툼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정승화(극 중 계엄사령관)와 장태완(극 중 이태신)은 유신 체제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그 시절 최고 권력자들입니다.
영화와 달리 장태완은 정승화의 심복이었다고 하고, 정승화는 박정희 시절 선거 조작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 박정희 사망 후에는 언론사 사장들을 불러 김대중이 대통령 되는 것을 막으라고 압박을 줄 만큼 독재 정권에 충성했습니다.
물론 진짜 악인은 전두광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김일성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시절에 상관을 치겠다고 전방의 군대까지 빼 온 인간이 아닙니까?
자신이 권력을 차지할 수 없다면 온 나라가 불바다가 돼도 괜찮다는 거지요. 치가 떨리는 이기심입니다.
그러나 ‘선(善)’이, 민주화와 인권 수호를 말하는 거라면, 정상호 역시 선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적법한 권력의 계승자였고,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건 장태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서 장태완을 모델로 했음에도 이태신만 실제 인물과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겁니다. 감독은 전두광의 악(惡)에 대비되는 선명한 선(善)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실제 인물에 많은 각색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권력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정의로운 군인이자 절대 선(善), 이태신이야말로 이 영화의 유일한 판타지인 겁니다.
2. 정상호는 왜 졌을까?
이 질문이 제가 <서울의 봄>에서 가장 흥미롭게 살펴본 부분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영화가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아무리 전두광의 기세가 대단했다고 해도 그 엄격한 서열 사회에서 정상호는 전두광의 상관이었고, 적법하게 권한을 위임받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즉 이 싸움에서 정상호는 지면 안 됐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전두광에게 진 이유는, 바로 ‘비겁한 인간들’ 때문입니다.
역학 관계의 한 끝에 정상호가 있고 다른 끝에 전두광이 있다면,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것은 비겁한 인간들입니다. 영웅도, 악인도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해 있는 인간 유형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의나 명분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판세입니다. 비겁자들은 모든 육감을 동원하여 돌아가는 상황을 감지하다가 판세가 기우는 쪽으로 잽싸게 몸을 던집니다. 그곳에서 권력에 동조하고 떡고물을 주워 먹습니다.
이런 현상은 상류층으로 갈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일어나는 듯합니다. 욕망은 큰 반면 수치심은 없기 때문입니다.
전두광은 이런 비겁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목구멍까지 차도록 떡고물을 쑤셔 넣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전두환 휘하의 누구도, 5.18 항쟁에서 그의 악행을 증언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 점이 늘 의문이었는데 영화를 보고야 그 답을 알게 됐습니다. 떡고물을 ㅈㄴ 처먹었던 겁니다.
3. 떡고물에 대한 확신
전두광이라고 이 비겁한 인간들이 버러지처럼 느껴지지 않았겠습니까마는, 권력을 가지려면 필요한 버러지였습니다.
그래서 전두광은 이들에게 ‘떡고물에 대한 확신’을 심어줍니다. 나한테 붙어 있으면 반드시 떡고물이 떨어진다. 나는 악인이지만, 나눠 먹는 악인이다. 그러니 내게 붙어라!
비겁한 인간들을 움직이게 하는데 이보다 강력한 주문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상호는 누구에게도, 무엇도 약속해주지 않았습니다. 원칙만 내세워서는 군인은 될 수 있어도 권력자는 될 수 없습니다. 권력 투쟁이라는 것은 이 비겁한 자들을 누가 먼저 내 편으로 만드느냐의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말 필수불가결의 버러지인 겁니다.
그렇게 비겁자들이 전두광의 떡고물에 붙으며 판세가 기울었고, 결국 희대의 악인이 정권을 잡게 됐습니다. 그래서 5.18 같은 일이 일어났고, 아직도 떡고물을 바라는 비겁자들이 그 지역 전체를 조롱하고 혐오를 선동합니다.
4. 그다지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결말
<서울의 봄>은 지금의 이 몰염치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시작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보고 분개한다는 것은, 우리가 돈돈돈 하는 지금 시대에도 어떤 멋진 것들을, 이를 테면 염치와 양심 같은 것들을 바라고 희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인 것 같아서, 영화의 뒷맛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서울의 봄 아직 안 보셨다면,
악인들이 영화 상영을 막기 전에
속히 뛰어가서 보시기를 적극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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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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