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서평] 세월호, 철까마귀의 날들, 인생
작가의 온도는 보통 그가 쓴 책 한 권만 읽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영 마음이 데워지지 않는 책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금각사> 같은, 그런 책들은 굉장히 지적이고 놀라운 표현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읽고 나면 한동안 기분이 나쁘다.
그런 걸 보면 ‘온기’라는 것도 아무나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닌, 어려운 글쓰기 역량인 듯하다.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면 일단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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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관계의 온도>를 읽으면서 박지음 작가님은 온기라는 역량은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주 노동자라는 어려운 소재를 거침없이 선택하여 쓰시는 걸 보면 도무지 따뜻함을 감출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런 분 같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소설가들은 사슴과 같아서 낯선 이의 SNS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 좀처럼 없다. 부지런히 살펴보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데 지음 작가님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마음도 표현해주시고 기꺼이 응원의 말도 남겨주시곤 했다. 그래서 분명 최근작도 좋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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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간 고래>는 근미래 한국에서 난파한 우주선을 고치는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로, 세월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알고 보니 작가님이 진도 출신이었다. 사건에 대한 충격이 남달랐을 것이다.
평생 막노동판을 전전한 70대 노인 ‘한’과 30대 이주 노동자 ‘옴’, 그리고 10대 다문화 가정 아이 ‘신율’까지, 상처투성이의 세 사람이 오해하고 이해하면서 극적인 결말로 내닫는 이야기다.
이렇게 약자성을 가진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면 이야기가 너무 무거울 것 같아 지레 겁을 먹는 사람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망가진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아이와 안 된다는 노인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청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웃겼다가 슬펐다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야기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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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해체 내용을 보면서 <철까마귀의 날들>이 떠올랐다.
선박을 해체하는 일을 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린데,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거대한 배에 매달려 목숨을 걸고 철을 자르는 날들을 보낸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의 결말은, 1달러를 받고 숙소로 돌아오거나 영영 신의 곁으로 떠나거나 둘 중 하나다.
이곳에선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는다. 그러나 달리 돈을 벌 방법이 없어 남자들은 사고로 죽게 되는 순간까지 일을 하고, 그렇게 번 돈을 고향으로 부치면 집에서는 남자를 위해 신부를 얻어준다.
그러면 남자는 잠깐 짬을 내어 들어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도 열 살 가량 되면 이 죽음의 난파선으로 들어가 1달러를 벌기 위해 목숨을 거는 날들을 시작한다. 소설 속 옴의 이야기가 사실인 것이다.
참고로 다큐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수작이니 꼭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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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우주로 간 고래>도 추천한다.
슬프고 아름답고 온기로 가득찬 책이다.
이렇게 계속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는 소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작가님, 오래오래 써주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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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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