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작가들의 인정투쟁

[노파 문학관 : 해남] 10일 차.

by NOPA


20260308 8일 차 #1. 글 싸지르기

무엇도 쓰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근 이틀간 지금껏 쓴 글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단발적으로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배설하듯 써낸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글을 쓴 줄 알았는데, 싸지르고 있었다. 진짜 쓰고 싶은 게 무언지를 생각했다. 이제 좀 더 신중하게 써야 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숙고의 과정이 몹시 괴로웠다. 너무 괴로워서 가면 쓴 사람들로 가득한 대형 카페로 숨어들고 싶었으나 시골에는 도피자와 가짜를 위한 공간은 없다. 오롯이 홀로 앉아 자신의 글이 배설물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수밖에 없다. 해남에 와서 처음으로 도시로 돌아가고 싶었다



#2. 오만과 편견

우울한 진실을 마주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문학관에 왔는데, 새로 온 입주 작가가 막 자신의 방에 짐을 부리고 나서고 있었다.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성 작가의 뒤를 아내로 보이는 동년배 여성이 뒤따는 중이었다. 먼저 알은체를 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새로 입주하신 작가님이신가 봐요, 저도 여기 입주해 있는 김노파라고 합니다.”


그러자 남자는 “네, 안녕하세요” 하면서 그냥 나를 지나쳤다. 안 그래도 꼬인 심사가 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저 오만한 자가 나를 무시했다, 나를 통성명을 할 수 있는 대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대는 방금 내게서 영원의 증오를 샀다. 내 기필코..


모든 것이 내 오해이고 편견이었다. 입주 작가는 아내였고, 남성이 따라온 남편이었다. 남편은 그저 내 오해에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어색해서 자리를 피했을 뿐이다. 괜히 미안해서 나중에 작가님께 내 편견을 간증하고 초콜릿 두 개로 속죄를 시도했다.


#3. 인정 투쟁

새로 작가가 들어올 때마다 먼저 온 작가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데, 이 순간이 문학관 생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인간부터 자기 영역에서 대가를 이룬 사람까지,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다 보니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어떤 노교수님은 아무도 자신에게 굽신거리지 않는 게 서운하셨는지, 느닷없이 촌장님이 자신을 박대해서 그렇지 실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기 시작했고,


반면 어떤 작가님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저 자기 계발서를 한 권 썼을 뿐이라며 한껏 자신을 낮췄는데 알고 보니 모두가 아는 대기업 최초의, 최연소 여성 간부로 발탁돼 기사까지 난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대단한 이력도 없고, 작품도 극본 하나, 웹소설 하나 입상한 게 전부면서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은 채 이상한 방식으로 나대는 사람이었고,


또 다른 작가님은 등단도 제대로 하시고 소설까지 썼으면서 문화 기획 쪽 일로 생계를 잇는다는 이유로 너무나도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신입 작가처럼 행동하셨다.


그래서 다들, 왜 이 중에서 가장 별 볼 일 없는 내가, 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제치고 가장 장기간 문학관에 머무는 행운을 거머쥐었는지 의아해하는 중이다.


알고 보니 ‘두 달’이 문학관에 입주할 수 있는 가장 긴 기간이었고,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 딱 두 명 뿐인데, 그중 한 명이 나였기에 나 역시 이유가 궁금하던 차다.


아무래도 나는 이상한 방식으로 행운이 따르는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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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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