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그 밤에 종을 흔들었을까?

[노파 문학관 : 해남] 12일차. 달마고도, 귀신

by NOPA


20260311. 11일 차

#1. 달마고도 걷기

종일 달마산 둘레길을 걸었다. 제대로 걸으면 6시간 30분 걸리는 코스인데, 어떤 아저씨가 산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여차하면 죙일 같이 걷겠다 싶어서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랬더니 몇몇 갈림길에서 표지판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갔던길을 되돌아가고, 되돌아간 길을 다시 거슬러올랐더니 꼬박 8시간을 걸었다. 약 4만보 가량 찍혔다. 역시 몸살을 앓았다.


20260312. 12일 차.

#2. 밤길 산책

저녁쯤 되니 몸이 풀려서 오늘은 해변으로 밤 산책을 했다. 작년에 두 달 살이 할 때 있던 동네보다 가로등도 제법 있고 훨씬 문명화된 동네여서 올 때는 산길로 돌아오려고 했다. 입구까지 가서 깨끗이 포기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까만색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걸으면서 찍은 영상인데도(그래서 비닐봉지가 다리에 스치며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인데) 움직임을 전혀 감지할 수 없다. 산길 입구에 서는 순간 나는 결코 이곳을 지나갈 수 없음을 직감하며 바로 반대편 불야성으로 돌아 나왔다.

잘못 찍힌 것 아님. 시골 밤은 원래 이렇게 생겼음



#3. 우연한 복수와 귀신이 밤에 다니는 이유

그러나 너무 어두운 곳에 오래 있으면 방향 감각을 상실하여 모르는 길을 한참 헤맸다. 그러다 불을 환히 밝힌 집이 있길래 저건 뭔가, 하고 네이버 지도를 찾아보니 익숙한 펜션 이름이 나왔다. 작년에 두달 살이 할 때 알게 된 분이 운영하는 펜션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할까말까 잠시 고민하는데, 갑자기 집안에서 땡땡땡, 하고 정신 없이 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너무 웃겨서 좀 더 집을 노려보며 서 있으려다가 집주인이 심장마비 걸릴까 봐 그냥 돌아나왔다.


집주인이 원체 겁이 많은 사람인데, 대로변에서 꽤 떨어진 곳에 펜션을 얻어 밤마다 무서워서 집을 환히 밝히고, 잘 때도 귀신 들까봐 법문을 크게 틀어놓고 잔다고 했던 게 생각난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이 인적 없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길을 헤매던 내 실루엣을 보고 겁이 나서 종을 흔들었을 것이다. 어디 절에서 가져온 종일 테지. 아무튼 나를 쫓아냈으니 종의 효과는 좋은 셈이다. 두 달 살이 할 때 앙금 쌓인 게 조금 있었는데, 오늘 다 풀렸다.

시골 밤하늘


오는 길에는 간간이 지나는 차들을 뚫어져라 보면서 왔다. 시골은 저녁 7시만 되어도 굉장히 밀도 높은 어둠이 깔리므로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그러니 이 시각에 도로를 걷는 사람이라는 것은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어떤 운전자는 뭔가 잘못 봤나 싶어 상향등을 켜서 다시 나를 확인했고, 어떤 운전자는 급하게 속력을 올려 쌩 지나갔다.


낮에는 빵빵 거리면서 나를 농락하던 사람들이 밤에는 잔뜩 겁에 질려 달아난다. 그러자 귀신이 왜 밤에만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권능을 얻은 기분이다.


시골 밤, 참 좋다.

작년에 두 달 살이 했던 곳에 비하면 여기는 무척 밝은 곳이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205953839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감성글 #해남여행 #문학관 #입주작가 #땅끝마을 #시골길 #시골밤 #밤산책 #달마고도 #달마산 #남파랑길 #둘레길걷기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3화입주작가들의 인정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