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 문학관 : 해남] 14일차.
20260314
#1. 까만 밤
새까만 시골 밤길을 걷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태생적으로 불안도 많고 겁도 많은 사람인데 이상한 일이다.
어둠이 내 몸 곳곳으로 스며들면 나도 어둠의 일부가 되는 기분인데, 내가 감춰지고 가려졌다고 느끼는 순간 평안함이 차오른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태양 아래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안정감이다. 역시 나는 어둠, 죽음, 침묵, 이런 것들과 더 친한 것 같다.
밤길에 나의 평안을 깨트리는 것은 간간이 지나다니는 차들이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내 모습을 세상 아래 드러내면 다시 불안해진다.
그렇게 나를 스쳐간 차가 저 앞에서 속력을 늦추거나 유턴을 하면 좀더 어두운 곳으로 몸을 숨기고 차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차가 다시 속력을 내면 나도 어둠 속을 나와 다시 걷고, 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도 어둠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 내 인내심이 더 길다. 차에 앉은 사람은 늘 바쁘니까.
새까만 밤바다를 보고, 그보다 더 까만 밤길을 걷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눈속으로 쏟아진다. 도시에선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어둠과 빛.
잠시 멈춰서서 나를 둘러싼 이 어둡고 반짝이는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발을 딛고 선 공간 전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 건가?
살아있지.
그러니까 한손엔 등산 스틱을 들고 다른 한 손엔 구텐탁 씨를 쥐고 걷는 거겠지. 계속 살아 있고 싶으니까.
밤에는 어떤 차도 나를 향해 경적을 울리지 않는데, 다들 살아있고 싶어서 그렇다. 계속 살아 있으려면 밤중에 칼 들고 다니는 여자를 자극하지 않는 게 좋으니까.
자신이 살아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살고 싶다는 욕망만큼은 뚜렷하게 감각되는 기이한 밤. 시골의 어둠 속에선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고 불확실하다. 그 비현실성을 경험하는 일이 두려우면서도 좋다.
도시로 돌아가면 이 밤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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