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문화로 보는 사회
지난봄 유럽에 갔었다. 인원이 많아 자동차를 빌렸는데 운 좋게(?) 매일 운전대를 잡았다. 덕분에 이렇게 쓸 수 있으니 다시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잉글랜드와 독일, 이태리를 거쳤는데 방문 목적과 달리 깊은 인상을 남긴 게 있다. 국가별 운전문화다. 알려진 바대로 영국은 통행방향이나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다. 평생 해온 운전습관이 부정당하니 처음엔 헤매는 게 당연하다. 역주행을 하거나 연석을 밟는 일도 많다. 뭐든 그렇지만 실수가 잦아지면 위축된다. 방어운전은 좋지만, '위축운전'은 교통흐름에 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긴장이 고조되었다.
만약 그 상황에서 뒤차의 경적이나 상향등이 번쩍였다면 그야말로 '멘붕'이 왔을지 모른다. 다행히도 내가 만난 현지인들은 초보를 존중했다. 서행을 해도 경적을 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끼어들어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 생기면 손짓을 통해 양보한다. 야간에는 상향등을 번쩍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와 달리 이는 99% 양보하겠다는 의미다. 노면 상태는 좋지 않았음에도 과속차량이 거의 없어 위협을 느낄 일도 없었다.
'선진국은 다른가?'라고 생각할 무렵 독일로 건너갔고, 얼마 뒤 '영국이 다른 거였다'는 걸 알게 됐다. 독일의 교통문화는 한마디로 '지킬 건 지키면서 할 건 한다'다. 법규도 잘 지키지만 답답하면 경적도 울리고 과속도 빈번하다. 160km는 아우토반의 1차선에 서기엔 충분치 않은 속도로 느껴질 정도다. 그럼에도 이들은 '앞지르기'를 하지 않는다. 주행 차선을 넘나들며 굳이 먼저 가겠다고 다투지 않는다. 앞선 차가 자신의 속도에 맞는 차선으로 움직이길 기다린다. 국내 고속도로 사고 다수가 빈번한 추월에서 비롯되는 걸 생각해보면, 미련해 보이는 이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이탈리아에선 웬만하면 운전대를 놓길 권한다. 따사로운 지중해 기운으로 여유가 넘칠 줄 알았건만 이게 웬 걸. 서울, 부산 이상이다. '기다림'이 없어 경적과 상향등이 난무한다. 차선도 없어, 눈치 보다간 앞으로도 못 간다. 카트라이더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해도 과장은 아니다. 당연히 소형차가 많고 사고율이 높다. 백만 명 당 교통사고로 56명이 죽는다. 반면, 독일은 42명, 영국은 27명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낮다. 도로 포장률이 낮고 가로등의 희미한 조도를 생각하면 대단한 수치다.
숫자는 사회를 반영한다. 한국은 어떨까. 91명으로 흔히 비교하는 OECD 국가 중 하위권이다. 교통사고는 자살, 질병과 함께 사망 3대 원인이다. 이 수치를 낮추는 건 매우 유의미하다. 사고 발생률이 준다는 건 운전자들의 의식구조가 바뀌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통문화 개선은 매번 논의되는 안전과 복지 선진국으로 가는 길 중 하나다. 연일 보도되는 수십 명의 재난이나 참사의 기저에는 그릇된 길 위의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당장 제천 화재만 해도 불법주차로 사고 규모가 커졌다. 소형차나 여성을 무시하는, 자동차가 곧 능력과 지위가 되는, 여기서 비롯되는 과격한 끼어들기나 독촉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풍토임을 부정하긴 힘들다.
교통사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 해에 5000 명이 죽는 사고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는 무책임한 사회다. 말한 놈의 의도는 달랐겠지만, 이런 면에서 '세월호는 교통사고'가 맞을 수도 있다. 눈앞의 도로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산적하다.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 당국의 역할은 말할 필요도 없고, 국내 유일의 완성차 업체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대자동차의 점유율이 왜 줄어드는지, 사람들이 외제차를 굳이 왜 사는지. 단지 기술과 성능의 문제인지. 한 번 새겨볼 법하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란 측면에서도 한 번 고민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