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있고, 제주에는 없는 것

영화 <소공녀>를 보고

by 두현

영화 <소공녀>는 집보다 취향을 택한 여성의 이야기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얻은 그녀의 수입은 한 모금의 담배와 한 잔의 위스키에 소비된다. 눈만 붙일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친구 집을 전전하는 떠돌이 생활을 이어간다. 모두가 필수 공간이라고 여겨졌던 ‘나만의 집’을 포기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를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 청춘을 함께 한 친구들, 버팀목이었던 남자 친구도 다른 길을 찾는다. 현실이라고 다를까.


'취존'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온라인 공간의 댓글에서 자주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존중보다는 비꼼의 뜻으로 쓰인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걸 어쩌겠냐..'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우리 사회는 취향을 존중받기 쉽지 않은 곳이다. 하나의 담론만이 사회를 지배했다. '개발' 혹은 '성장' 정도의 결을 벗어난 취향은 자기 계발을 저해하거나 조직의 발전을 해친다고 여긴다. 이를테면, 직장이나 국가에서 '자기 계발'을 위해 지원되는 비용은 대부분 미래에 특정한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런 풍토에서 나만의 취향은 사치로 여겨진다.


올 초, 제주도에서 살다왔다. 기약을 정하지 않고 내려갔는데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제주의 자연이 좋았다. 파도소리 들리는 해안은 몇 발이면 닿고, 피톤치드 풍기는 숲길이 지천이다. 조금 지나니 곳곳에 숨어있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생겼다. 한데, 이런 것들은 일시적이었다. 풍광이나 음식의 생소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졌다. 한 달쯤 지나니, 비로소 한 해 만 명씩 섬으로 이주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제주도만의 특별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없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타인의 시선과 간섭이 없었다.


도시는 시선과 간섭이 가장 횡행하는 곳이다. 학교에서는 시험으로, 직장에서는 업무평가로, 동네에서는 험담으로, 타인의 시선을 산재한다. 그것들이 더 나은 삶을 향한 동기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나은'을 지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들이다. 짐작컨대 그들 중 몇몇은 서울을 떠나 제주로,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고국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 제주에서는 온전히 내 생각과 취향에만 집중하면 됐다. 그 때문인지 잠은 줄었지만 피부는 좋아졌고 살도 쪘다. 많은 제주 이주민이 도시의 삶보다 수입은 적지만, '풍요롭다'라고 말한다.


2018년 우리가 함께하는 공간에는 무수히 많은 이들이 공존한다. 잠자리보다 기호식품을 중시하는 이도 있고, 누군가는 연봉을 반으로 줄이면서 낯선 섬 생활에 도전하기도 한다. 넓게 보면 사람보다 동물에 더 많은 애정을 줄 수도 있고, 이성보다 동성 간 사랑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삶의 궤적에서 벗어난 '소수'가 있다. 자신만의 생각과 취향이, 이상하거나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가 오길 바란다. 행여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뭐, 어때, 나라도 즐거웠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면 될 테지만.

작가의 이전글유럽에서 운전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