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권

관계가 깊어질수록 흐려지는 경계에 대하여

by 조금 다른 별

얼마 전,

동생에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의 소식을 들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가족이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흔드는 일이다.
동생은 장례를 치르고 봉안을 마친 후

집에 두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5년을 함께한 가족이었으니, 그 상실의 자국은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그 상처가 울퉁불퉁한 흉터로 남기보다는, 기억 속에서 조용히 자리 잡기를 바란다.


우리가 관계의 범위를 넓혀왔듯,
이제 그 대상은 비생명적 존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AI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지금,

우리는 반려견과 맺었던 관계처럼
AI와의 관계 또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친구, 상담자,

때로는 나를 대신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과거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돕던 존재가

점차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동물이 법적 권리의 논의 대상이 되기까지

인간의 인식이 변화해 온 과정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AI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반면 AI는 주어진 명령을 수행할 뿐,

그 의미를 스스로 탐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의미라는 것은 스스로 생겨난다기보다
누군가가 그것을 부여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자리를 얻는 것처럼 보인다.


반려동물의 인격화나 동물권의 확장 역시,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존중하기 시작한

인간의 선택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자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감각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그 경험은 호르몬과 신경 작용을 거쳐 처리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고 축적되면서,

뇌 속에는 ‘나’라는 인식이 형성된다.
이렇게 보면 자아는

충분히 축적된 감각과 인지 경험이
복합적으로 통합되며 형성되는 과정에 가깝다.


현재의 AI는 인간의 행위를 모사한

통계적 학습의 산물이지,
스스로를 자각하는 존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것이 영원한 한계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술과 학습의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자아적 AI’의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로봇권은

로봇이 인격체로서 가질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의미한다.
실제로 EU 의회는 '전자 인간(Electronic Person)’ 개념을 논의한 바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로봇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당장 로봇을 인격체로 인정해
법적 책임이나 저작권, 혹은 로봇세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을

일부 닮아가거나 대체하는 AI가 등장한 지금,
그 존재를 어떤 위치에 두고 바라볼 것인지는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 되고 있다.


사이보그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페르소나 AI는 인간일까.
AI는 아직 인간이 아니라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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