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잠을 조를 때면 언제고 냉장고의 몸서리가 들려온다.
꿈에 잠긴 머리맡에서 너의 감동에 울컥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줄곧 네 생각에 사로잡힌 가쁜 호흡이 창백한 달빛을 따라 은은해지면
관성 같은 손가락을 속옷 안으로 슬그머니 밀어 넣는다.
푸른 빛이 감도는 창가에 갈가마귀가 훌쩍 뛰어오르고
느닷없는 울음소리가 수치스러워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부엌으로 달음박질 칠 때 들려오는 마룻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는
비틀거리는 실내화처럼 나의 시시한 기대를 비웃는 거겠지.
요란하게 기지개를 켜고 실없는 하품을 하면서 두서 없는 호들갑을 떨쳐내 본다.
미련스럽게 주변을 기웃거리며 허리를 비틀고 헛기침을 해댄다면
지난 내 모습을 비웃는 싸늘한 시선들이 불안한 예감만큼이나 바래져 버릴까.
냉동실 문을 열고 시커멓게 달아오른 망설임을 맥없이 구겨 넣는다.
붉은 잇몸 사이에 숨겨 둔 하찮은 고백들을 입김에 따라 베어 물면
얼어붙은 성애에 새긴 애틋한 사랑의 노래가 고드름 같이 쏟아져 내릴까.
그냥 하품을 하는 시늉을 했을 뿐인데, 낮은 목소리에 너의 이름이 새어 나온다.
좋아한다는 말에 냉장고의 고동소리가 두세 번쯤 울린다면
너의 대답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괜찮은 것인지.
냉동실 바닥을 무심코 긁어대는 손톱자국이 우리의 이니셜이라면
너 역시 진심이라고 상상해 보아도 좋을 텐데.
나직한 괘종소리에 모든 시계바늘이 동시에 한 시를 가리킨다면
내일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 보는 것도 괜찮겠어.
굳어버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뺨에 문지르면서
달콤하고 감미로운 맛이야 그려 볼 수 있겠지만
쓸쓸한 웃음으로 멍하니, 민망한 고개만 살며시 가로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