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향한 긴 여정의 시작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집

by 문제없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집은 80년대 중반, 다섯 살 때 살았던 염창동의 집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상가들이 들어서서 과거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당시에 높은 건물이라곤 우리 집 앞에 있는 3-4층짜리 연립주택과 1층에 슈퍼가 있는 4-5층 정도 되는 상가건물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집 주변으로 상가들도 있었고 연립주택이나 아파트도 좀 있었던 걸 보면 우리 집은 철거 직전의 다 쓰러져가는 마지막 집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다섯 살 때라 내 기억에 남아있는 모습이 매우 단편적이긴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네 집이 낯설지 않았던 것도 내가 살던 집과 비슷해서였던 것 같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네모난 마당 한가운데 수돗가가 있고 대문에 서서 수돗가를 바라보면 그 너머에 주인집이 있었다. 나머지 모서리들엔 세 들어사는 집이 3가구 있었는데, 대문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두 가구, 왼쪽으로 한 가구가 함께 사는 형태였다.


우리 집은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크기의 방이었는데,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고, 부엌과 연결된 단칸방이 있었다. 부엌에 있는 연탄아궁이의 높이 때문에 방 입구가 어린 나의 가슴 정도까지 왔는데, 방에 들어가려면 엄마가 나를 위해서 놓아준 벽돌을 밟고 낑낑대고 올라가야 했다. 한 번은 그 높은 방 입구에서 발을 헛디뎌서 부엌 바닥에 크게 머리를 부딪힌 적도 있었다. 엄마한테 말하면 혼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안쪽으로 항상 덜컹거리는 작은 창문이 있었고, 나-엄마-아빠 순으로 누워서 잠을 잤는데, 키 170이 넘는 아빠가 누우면 머리 위나 발 아래쪽으로 여유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의 매우 좁은 방이었다.


우리 집 옆 집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 둘과 부모님이 살았는데, 낮에 부모님이 일하러 가고 나면 자주 그 집의 아이들과 어울려 다녔다. 당시에 어린이집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하여 세 들어 사는 집의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이 맞벌이하러 나간 사이에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은 자동차 바닥을 구경한다며 기어 들어가서 온 몸이 시꺼먼 기름 범벅이 돼서 돌아와 엄마에게 맞은 적도 있고(엄마는 아직도 그때 내가 입고 있었던 노란색 털실로 짠 베스트가 예뻤는데 기름이 안 빠져서 결국 버렸다며 아쉬워하신다.), 숨바꼭질을 한다고 멀리까지 가서 숨다가 어느새 인공폭포 가까이까지 가기도 했고, 뚜껑이 없는 꽤 깊은 맨홀을 건너겠다며 폴짝거리면서 뛰어다니다가 옆 집 남자아이가 빠져서 동네 아저씨들이 구하러 온 적도 있었다. 주변에 함께 놀 수 있는 아이들이 모두 남자아이들뿐이어서 항상 나무 막대기로 칼싸움을 하거나 공을 차며 놀았던 기억밖에 없다.


수도가 집마다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물을 쓰려면 마당 가운데 있는 수돗가에서 받아서 써야 했다. 저녁밥 지을 시간이 되면 엄마들이 수돗가에 모여서 오늘 반찬은 뭐 해 먹는지, 낮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옆 집 반찬을 나눠서 받아오기도 하고 우리 집 반찬을 나눠주기도 했다. 하루는 옆집 아주머니가 작은 방게를 고무 대야가 넘칠 정도로 사 왔는데 게들이 바둥거리면서 대야를 빠져나오려고 하는 게 너무 징그러워서 집으로 도망갔다. 그 날 저녁 엄마가 그 방게로 만든 조림을 얻어와서 맛을 보았는데 딱딱한 껍질이 잘 깨물어지지 않고 간이 세서 먹지 못하고 뱉어버렸다. 낮에 봤던 바둥거리는 방게가 떠올라서 더더욱 먹고 싶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맛있는 냄새가 온 마당을 채웠는데 고기 냄새나 생선 냄새가 나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그 냄새가 우리 집에서 나는 냄새였으면 좋았을 텐데 대부분은 주인집이나 다른 집에서 나는 냄새였다.


세수는 매일 수돗가에서 했다. 이른 아침 수돗가는 세수와 양치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퉁퉁 부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에 잠옷 차림이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엄마가 고무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서 부엌 안쪽에서 씻겨줬다. 대야 안에 나를 앉히고 수건으로 물을 적셔서 내 몸 구석구석을 닦아줬다. 젊은 시절 엄마는 힘이 장사였는지 항상 온 힘을 다해서 박박 닦아줬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내 몸은 시뻘겋게 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깨끗하게 목욕하고 나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여름에는 아저씨들이 종종 등목을 하기도 했다. 겨울에는 찬물로 세수하는 게 너무 싫었는데 엄마가 아궁이 연탄불로 물을 데워주면 그 물을 섞어서 세수를 했다. 꽁꽁 언 손과 얼굴이 순식간에 녹는 기분이 들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는 게 좋았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엄마와 함께 근처에 있는 공중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다. 따뜻한 온탕에서 때를 불리고 초록색 이태리 타올로 엄마가 온몸의 때를 밀어줬다. 당시에 나는 온탕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오래 몸을 담그지 못하고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는데 그렇게 하면 때가 잘 불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혼났다. 엄마는 먼저 내 몸의 때를 밀어주고 놀고 있으라고 했는데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숨 참고 오래 버티기, 맨 끝에서 끝까지 수영하기 등, 혼자서도 잘 놀았던 것 같다. 세신을 다 마친 엄마가 항상 마지막에 옆에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등 좀 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에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공중목욕탕을 가보지 않아서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목욕탕 안에서 놀다가 지겨워지면 엄마보다 먼저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선풍기로 대충 물기를 말린 다음에 탈의실 한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엄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가 나오면 쏜살같이 달려가서 요구르트를 사달라고 졸라서 동전을 받았다. 목욕탕 냉장고에는 우유, 박카스, 주스, 요구르트 같은 음료에 아주머니가 직접 갈아서 만든 오이팩 같은 것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먹고 싶은 음료수를 골라 카운터에 가지고 가서 계산했다. 난 그 요구르트를 조금씩 아껴 마시면서 엄마가 집에 갈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곤 했다.


집에 수도가 없으니까 당연하게 화장실도 따로 없어서 푸세식으로 된 공용 화장실을 함께 사용했다. 마당의 오른쪽 한 구석에 칸 두 개짜리 화장실이었는데, 화장실 안에 있는 빨간색 커다란 고무 대야 안에는 항상 물이 가득 차있었다. 볼일을 보고 나면 그 물을 떠서 나의 흔적이 모두 흘러내려갈 때까지 부어줘야 했다. 화장실 주변은 항상 지독한 냄새와 함께 파리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날아다녔고, 거미줄도 군데군데 있어서 볼일을 볼 때면 벌레가 나에게 덤벼들지 않을까 긴장된 상태였다. 밤에는 노란 전구에 의지해서 볼일을 봐야 하는데 어릴 때 혼자 가기 무서워서 방구석에 엄마가 준비해 준 요강에 소변을 보거나 아침이 올 때까지 참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이불에 오줌을 싸면 엄마에게 크게 혼났다.


겨울에는 항상 연탄을 쟁여두는 것이 일이었는데, 좁은 부엌 구석에는 연탄을 쌓아두는 자리가 있었다. 보통은 한 달 치 연탄을 한꺼번에 쌓아놓고 썼던 것 같은데 생활비가 궁해지면 연탄을 미리 채워놓지 못해서 가끔 엄마가 옆 집에 연탄을 빌리기도 했다. 빌린 연탄을 갚을 때는 항상 먹을거리를 같이 준다던지 연탄 두 장으로 갚는다던지 했다. 연탄불은 꺼지지 않게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 외출하거나 엄마가 일하러 가서 연탄불이 꺼지면 슈퍼에 가서 번개탄을 사 오라고 시켰다. 내가 사 온 번개탄을 비닐을 벗기지 않은 채로 불을 붙여서 연탄불을 살렸고 방 안이 따뜻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 연탄 특유의 매캐한 냄새 때문에 겨울에도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지냈는데 바닥에서는 뜨거운 열이 올라와서 땀이 날 정도로 더웠지만 코 끝은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찬 바람 때문에 차가웠다.


어릴 때는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던 것 같다.


-계속-



* 안녕하세요.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제가 살았던 집들을 떠올리며 그 집에 얽힌 추억들을 하나씩 적어가려고 합니다.

제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처음이라 매우 부끄럽지만 제 글을 통해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