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향기가 가득했던 동굴집(1)

by 문제없다

여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쯤 원래 살던 집보다 조금 더 큰 등촌동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집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간다는 사실이 매우 기대됐다. 게다가 우리 집이 이사하기 전에 나와 함께 놀았던 옆 집 남자아이들이 먼저 이사를 해서 어차피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놀았다. 세간살이가 별로 없어서 작은 용달차 하나로 이삿짐은 충분했다. 이사 간 집은 2층짜리 벽돌로 된 주택이었는데 1층 도로변에는 세탁소가 있었고, 2층은 주인집이었다. 세탁소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성인 몸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통로가 있었는데 그 통로로 들어가면 오른편에 공용화장실이 나오고, 화장실을 지나면 세 들어 사는 집의 공용 출입구가 나왔다.


처음 내가 이 집을 보고 떠올린 것은 커다란 동굴이었다. 낮이었지만 백열등을 켜지 않으면 안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복도가 어두웠고,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천장에 달려있는 백열등 주변에는 먼지 낀 거미줄이 쳐져있어서 영락없는 동굴 그 자체였다. 들떠있는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으면서 저 안쪽에서부터 무언가 무서운 것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 기분을 떨쳐내려고 뒷마당으로 뛰쳐나갔는데, 그곳은 동굴과는 다르게 눈이 부시도록 밝았다. 커다란 라일락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심어져 있었고 나무 밑에는 어느 집 것인지 알 수 없는 항아리가 땅 속에 파묻혀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풍성한 장미덩굴과 그 주변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마당은 방치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관리된 느낌도 아닌, 적당히 무질서하고 조화로웠다. 그 순간부터 뒷마당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장소가 되었다.


동굴 안은 부엌-방 순서로 3가구의 집이 있었는데 우리 집은 그 세 가구 중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입구 방이었다. 부엌에는 수도가 딸려 있었고 연탄아궁이가 가운데, 가장 안쪽에 LPG가스를 연결할 수 있는 2구짜리 가스레인지를 놓을 공간이 있었다. 이제는 추운 겨울에 물을 쓰기 위해서 수돗가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방도 염창동에 비하면 큰 편이었고 부모님과 함께 누워도 아래위, 옆으로 충분히 공간이 남았다. 이사 오면서 큰 가구들을 버리고 와서 모든 것이 새 거였는데 특히 텔레비전이 생긴 게 뛸 듯이 기뻤다. 뒤통수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금성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었는데 정말 "채널을 돌린다"는 표현 그대로의 것이었다. 유치원 가기 전에 뽀뽀뽀를 보면서 아침밥을 먹는 게 즐거웠고, 주말 이른 아침에 해주는 만화를 보기 위해 누구보다도 빨리 일어나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쯤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가 준비해 놓은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혼자서 밥을 차려먹고 유치원에서 내준 숙제를 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염창동에 살고 있으니 큰길 건너 등촌동에 살고 있는 나는 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딱히 그 친구들과 놀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숙제를 마치고 나면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 나가서 그네를 타거나 철봉을 타면서 놀기도 했는데, 동네의 많은 아이들이 비슷한 시간에 나와서 함께 놀았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나와 함께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를 타고 시소를 타면 그걸로 충분했다.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그 아이들과 쿨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그때 같이 놀았던 아이들의 얼굴이나 이름 무엇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이 없다.


동굴집의 옆 집은 한동안 비어있었는데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어느 날 나보다 한 살 많은 여자아이와 동갑인 자매가 이사 왔다. 나에게 처음 생긴 여자 친구들이었고, 그 자매와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그 집에 처음으로 놀러 간 날, 아주머니가 친하게 지내라면서 간식으로 슬라이스 치즈를 내어주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치즈였다. 노란색의 치즈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서 자매가 먹는 모습을 따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여섯 살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토할 것 같은 맛이었다. 산뜻한 색깔과는 다르게 고약한 냄새와 맛에 놀랐고, 그걸 너무나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에 한번 더 놀랐다. 아주머니가 생각해서 주신 건데 먹지 않으면 섭섭해할까 봐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조금씩 베어 먹다가 아주머니가 보지 않을 때 주머니에 숨겨서 집에 돌아와서 버렸다. 이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슬라이스 치즈를 먹지 못하고 냄새만 맡아도 속이 안 좋아진다.


그 자매와 처음으로 뒷마당에서 소꿉놀이라는 것을 했다. 지금까지는 남자아이들과 항상 놀았기 때문에 뛰어다니거나 어딘가에서 뛰어내리거나 하는 놀이가 전부였는데 여자아이들과는 그런 놀이를 할 수 없었다. 뒷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접시, 그릇, 포크 같은 것들을 늘어놓고 풀이나 꽃을 꺾어서 그 위에 올려놓고 먹는 시늉을 했다. 그 당시 여자아이들은 자기만의 소꿉놀이 세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했다. 언니는 항상 엄마 역할, 동생은 아기 역할이었고 나는 손님이나 아빠 역할을 했다. 자매가 시끄럽게 역할놀이를 하는 동안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라일락 나무의 꽃들을 보면서 따뜻한 볕을 쬐면서 눈감고 있는 게 좋았다.


동굴집의 라일락 나무는 봄날의 즐거움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연보라색과 하얀색의 라일락이 그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신기해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라일락 나무에 오늘은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보러 갔다. 라일락이 만개하는 날이면 그 향기가 뒷마당을 넘어서 집안까지 퍼졌다. 오랫동안 그 향기를 맡고 싶어서 꽃을 양 손에 가득 안고 코를 파묻고 킁킁댔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뒷마당에 앉아서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책도 읽고 숙제도 하고 소꿉놀이도 했다. 만개했을 때보다 라일락 꽃이 떨어질 때가 더 환상적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라일락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워서 일부러 나무를 흔들어 꽃 비를 맞기도 했다. 수북이 떨어진 라일락 꽃잎들을 양 손 가득히 모아서 머리 위로 던지기도 하고 그 꽃들을 모아 물에 띄우거나 병에 담아두기도 했다. 금세 누렇게 말라버리는 모습이 야속하긴 했지만 봄이 되면 다시 아름 다고 환상적인 라일락 꽃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나는 봄이 오는 게 참 좋았다.


동굴집 뒷마당에는 식물들이 많은만큼 벌레들도 많았다. 손끝으로 건드리면 몸을 둥글게 마는 공벌레부터 지네, 개미, 거미 등, 종류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양한 벌레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만만하고 숫자도 많았던게 개미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괴롭혔을까 싶을 정도로 개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개미를 잡아다 물에 빠뜨려서 수영이 가능한지도 살펴보고, 개미가 지나가던 길을 만들어서 그 길대로 지나가는지도 살펴보고 먹이를 나르던 개미를 괴롭히기도 했다. 하루는 개미가 설탕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개미굴 입구에 가득 설탕을 부어버린 일도 있었다. 입구가 막힌 개미굴을 빠져나오던 일개미들이 다음날 순식간에 사라져서 다 죽어버린 게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며칠 후 우리집 입구에 개미굴이 생긴 걸 발견했다. 자잘한 새끼 일개미들 수십마리 기어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개미들이 복수하기 위해서 우리집에 개미굴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자고 있는 내 몸에 기어올라 나를 공격하면 어쩌지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는데, 일에서 돌아온 엄마가 작은 개미들이 득실거리는 걸 보고 에프킬라를 무차별적으로 뿌려서 결국 그 개미굴도 없어졌다. 지금도 개미들을 보면 그때 괴롭혀서 미안하다고 속으로 사과하고 가급적 밟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계절의 변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해 준 동굴집은 장차 내가 어떤 집에 살고싶은지 집에 대한 내 취향을 만들어준 최초의 집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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