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제없는 스튜디오 Dec 02. 2022

청소년퀴어의 ‘자캐 커뮤니티’ 9년 향유기 -좌절편-

혼자 버티는 건 익숙합니다

※ 경고: 청소년으로서 느낀 어려움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혐오 공격을 묘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관련 내용에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자캐커뮤란, '자작 캐릭터 커뮤니티'를 줄인 말로 짧게 커뮤라고도 불린다. 인터넷에 온라인 사이트를 생성해 시대와 배경 등 캐릭터들이 활동할 세계관을 정하고 타 사이트에 홍보하면(운영진), 이를 본 사람들이 해당 커뮤의 배경과 설정에 적합한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타인의 (가상) 캐릭터와 교류를 한다(러너). 이런 사람들을 짧게 '커뮤러'라고 부른다. 커뮤러들은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고, 나이는 적게는 초등학생, 대개 중·고등학생부터 20대, 간간히 30대 내외로, 여성 청소년이 주류인 문화다. 하지만 “실제 사회와는 동떨어진 가상 세계니까”라고 해서 현실 사회의 문제가 덜한 건 아니다.

운영진과 러너

 커뮤러들은 대개 트위터를 이용해왔다. 자캐커뮤니티는 다양한 플랫폼에 분포해있지만, 트위터에 최적화된 형태로 커뮤를 운영하거나, 개인 계정을 자캐커뮤 향유층들에게 홍보하는 데에도 트위터를 많이 이용한다. 본인도 자캐커뮤 향유층들을 좇아 트위터를 자연스레 이용해왔지만, 비청소년은 비툴, 네이버 카페, 청소년들은 네이버 밴드나 라인 등 각 플랫폼에 맞는 형태의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 다양한 sns가 등장하고 사라짐에 따라 사용하는 플랫폼이 바뀌기도 하며, 요즘은 틱톡 같은 숏폼 비디오에서도 커뮤를 한다. (참고: 틱톡 해시태그 동영상들 #커뮤 #커뮤캐)


 ‘자캐커뮤’라는 취미를 향유한 지 어느덧 9년, 갈수록 커뮤를 즐기기가 힘들다. 이유는 내가 퀴어이고, 청소년이기 때문이었다. 수 년간 자캐커뮤니티는 폐쇄적으로 돌변했다. 그저 캐릭터 그림을 그리고, 창작을 하고, 글을 통해 누군가와 어울리고 소통할 때에도, 사람들은 어딘가 자신의 상식과 ‘다른 것’, ‘모르는 것’을 경계했고 마주치고 싶지 않아 했다. 기존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이 취미에도 스며들었다는 걸, 나는 ‘자캐커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회가 소수자를 배제하듯, 커뮤를 할 때에도 시스젠더* 남/녀 외의 성별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 수 없거나, 참여유저의 성별을 제한하고 연령제한을 높이는 등 온라인에도 차별의 벽이 세워졌다. 청소년 퀴어에겐, 온라인 세상에서도 나로서 취미를 누리는 게 허락하지 않았다.

*시스젠더(Cisgender): 태어날 때 받은 지정성별이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과 일치하는 사람. 트랜스젠더(Transgender)는 지정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자캐커뮤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생,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당시엔 성소수자도 지금만치 가시화가 되지 않았고, 스스로의 성정체성이 분명치않아 나를 둘러싼 배제를 정확히 인지하진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성소수자, 장애 및 질병, 정신질환, 여성, 아동 등 소수자를 가시화하는 언어가 늘어나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인권을 폭넓게 고민하는 발화자도 늘어났다. 덕분에 나는 젠더퀴어*라는 개념을 알게 되어 나를 정체화할 수 있었다.

*젠더퀴어(Genderqueer): 본인의 젠더가 사회의 (남여)이분법적 젠더 개념에서 벗어나 있어나, 이를 넘어선 사람.


 하지만 내 성정체성을 인지하는 동시에, 무지와 혐오에 둘러싸인 나의 사회적 위치를 마주해야 했다. 다양한 SNS에서 소수자의 가시화와 인권 이슈가 화제로 오르내리자, 커뮤러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동시에, 자신들이 해왔던 차별과 배제는 혐오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도리어 여성 외 정체성은 배척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논리를 적극 받아들이며, 자캐커뮤 향유층 내 젠더퀴어 혐오는 더욱 심각해졌다. 내가 자캐커뮤에서 청소년 퀴어로서 취미를 누리고자 하면,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자캐커뮤 중에 젠더퀴어를 향한 혐오는 다른 혐오와 결이 달랐다. 가령, 캐릭터를 내 정체성에 맞게 젠더퀴어로 설정하면, 가상세계에 현실문제를 끌고오냐며 나의 성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나를 자신에게 납득시키라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가 하면, 지인들을 동원해 일대다로 달려들어 서로의 음습한 혐오를 다독여주면서 젠더퀴어 당사자를 몰아넣고 조롱했고, 신상정보를 캐내 인신공격, 사이버 스토킹, 살인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실제 연구자료 및 논문과 서적을 근거로 들어도, 돌아오는 것은 항상 조롱과 공격이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즐겁고 정당한지 애초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지인들과 소속감을 다지기 위해 사이버불링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젠더퀴어들이 안심하고 뛸 수 있도록 만든 ‘all 젠더’ 커뮤니티에 들어가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커뮤니티 자체를 정지시키게 만드는 악질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가족, 친구, 온오프라인의 지인 대부분은 모른 체하거나, '네가 신경 꺼'라는 말을 조언이랍시고 한다는 점이다. 젠더퀴어의 커밍아웃은 동성애처럼 어느 정도 인지가 있는 성소수자에 비해 어렵다. 믿을 만한 주변 사람에게 관련 정보를 설명하더라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되려 아웃팅을 당할 걱정을 해야하는 게 현실이다. 내 선택이니 범죄 수준의 괴롭힘을 당하든, 도움을 요청하는 위험을 감수하든, 감당은 개인의 몫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까운 주변인에게 무시당하거나, 때로 나를 혐오하는 논리에 공감하고, 주장하는 모습을 반복해 보고 있자면 극단적인 생각이 든다.


 그즈음인 2017년, 인천의 한 아동 살인사건의 가해자인 10대가 자캐커뮤를 하고 있던 것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평소에도 정신질환을 앓고있던 한 학생이 자캐커뮤를 알고, 자극적인 요소를 포함한 성인 커뮤니티에 나이를 속이고 들어가 이에 과몰입한 나머지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자캐커뮤가 부정적으로 사회에 알려지면서, 납작한 시선으로 왜곡하여 타 커뮤니티에 퍼뜨리려는 악질적인 일반인들이나 취재진 등을 막기 위해 전체적인 자캐커뮤니티들은 더 폐쇄적이 됐다.


 자캐커뮤의 향유자들은 자신의 취미가 부정적으로 알려지고 나쁜 취급을 받게 될까 불안해하면서, 그 화살을 '가해자가 청소년이어서'라는 단편적인 사실로 돌렸다. 청소년이 수위 높은 콘텐츠를 소비한 게 문제라며, 얼마 전까지도 같은 취미를 함께 하던 커뮤러들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쏟아냈다. '청소년이 나이에 맞지않는 짓을 하며 왜 성인들을 피곤하게 만드냐', '청소년이 xx를 보는 것은 빻은 거다' 등 청소년 혐오가 만연했고, 또래 청소년들도 그 논리대로 자신의 욕구는 성인이 되고나서야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언제부턴가 자캐커뮤 내에서는 나이제한을 높여, 청소년은 참여할 수 없는 곳들이 많아졌다. 친목을 도모하는 sns계정의 구독조차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들어와 활동을 캡처해 돌려보며 비난하거나, 생중계를 하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커뮤 내에서 이런 문화를 배우고 전승해간다는 점이다. SNS에서 한 번 퍼진 잘못된 문화는, 재밌는 놀이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 어느새 당연하게 되는 걸 자주 지켜봐왔다. 놀이를 빙자한 혐오문화는 늘 변두리에서 SNS의 메인에 자리 잡고, 혐오가 나쁘다는 걸 머리로 인지하면서도 습관처럼 자신의 혐오를 발견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혐오는 상대적 다수의 집단문화다. 하지말라고 호소하는 소수를 차단하고, 무시하고, 공격한다. 혐오가 아니라는 확신으로.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고 지친다. 아무리 호소해도 듣지 않는 사람, 자신의 논리적 완결성을 나의 존재 위에 두는 사람, 즐겁기위해 혐오도 상관없는 사람, 가상세계에 왜 그딴 걸 끌고오냐던 사람, 다른 사람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건 쿨하지 못하다는 사람, 그런 사람들. 나는 그저 자캐커뮤를 하는 게 즐겁고, 캐릭터나 세계관을 상상하며 공유하는 게 좋았고,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 짙어진 혐오는 작지만 내겐 큰 즐거움이었던 하위문화 안에서조차 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말라고 나를 고립시키고 거부한다.


 가상의 세계에서도 소수자는 배제된다. 취미라도, 가상의 공간일지라도 실재하는 사람이 상상하고 누군가의 경험에 의존하기에 현실의 문제를 재현한다.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씁쓸하지만 전하고 싶다. 나에겐 너무나 지독한 현실이다. 불편한 존재는 지우고 익숙한 편견 속 즐거움에 집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 취미를 향유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만약 커뮤를 그만두더라도, 나의 존재를 위협받지 않으며 건강한 취미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글쓴이 & 그림

문제없는 문제아 강하

매거진의 이전글 투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