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제없는 스튜디오 Oct 27. 2021

투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건 익숙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미래입니다. 이렇게 제 이야기를 펼칠 기회가 생겨서 정말이지 신이 나요.


오늘 저의 하루를 천천히 함께 보시면서
혹시 뭔가 어색한 점은 없는지 찾아보길 바라요.


오늘도 버스를 탔습니다.

“삑, 학생입니다.”

교통카드 단말기 앞에서 픽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요, “잔액이 부족합니다.” 음성이 나오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앉을 자리를 찾아 뒤쪽으로 이동하니, 할아버지 한 분이 부르십니다.


“학생, 나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는데 여기 앉아.”

“아, 고맙습니다. 오늘 짐이 좀 많아서요.”

“그래 학생, 벌써 방학 했나 봐? 방학이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차게 살아야 해, 알겠지?”


조금 떨떠름하지만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은 들를 곳이 많거든요. 평일 오전에 이렇게 버스에 앉아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을 받고 있자니 기분은 꽤나 상쾌해요. 아, 내릴 정류장이 코앞이네요. 일광욕은 여기서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서 책 좀 반납하고 와야겠습니다.

 

자료실에 들어서니 익숙한 얼굴이 저를 반깁니다.

“미래 학생, 오랜만이네요.”

“네, 선생님. 간만에 책 반납하려고 들렀어요.”

“어디 보자.... 반납 다 됐습니다. 미래 학생은 책을 참 많이 읽어요, 요즘 학생답지 않게. 아 참, 내 정신 좀 봐. 미래 학생한테 추천할 프로그램이 있어요. 지역 중고등학생 독서 토론 모임. 우리 미래 학생 여기서 꽤 잘할 것 같던데, 참여해볼래요? 신청서는 여기 있어요.”

얼떨결에 두 손으로 받아든 신청서에는 어김없이 인적사항란이 있었습니다. 이름, 전화번호, 학교, 학년, 이메일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와서 접수할게요.”

“아유 뭘, 인적사항만 기입하면 되는데 지금 하고 가지 그래요.”

“죄송합니다, 오늘 제가 일이 많아서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그럼 다음 주에 또 봐요.”

사서 선생님은 영원히 모르시겠지요. 인적사항만 기입하면 되는 간단한 신청서를 왜 선뜻 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는지. 마음 쓸 것 없습니다. 다음 약속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도서관 옆 상가에 늘 가던 미용실이 있습니다. 딸랑, 하고 울리는 도어벨, 어딘가 달큰하면서도 눅눅한 미용실 냄새, 그리고 나를 반기는 주인아저씨의 익숙한 목소리.

“어어 그래, 우리 미래 왔구나!”

“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래, 벌써 방학 했어? 오늘은 어떻게 잘라줄까. 늘 하던 대로 앞머리는 눈썹 위, 구레나룻 깔끔히 밀고 투블럭 말고 그냥 상고로 하면 되겠니?”

“아뇨, 투블럭 해 주시고요. 앞머리는 이 사진처럼 부탁드려요.”

“어어 그래, 멀끔하니 영화배우처럼 보기 좋겠다. 그런데 너 이 머리 해도 되냐? 학칙에 안 걸리겠어?”

“괜찮아요. 그냥 이렇게 해 주세요.”

다섯 살 무렵부터 다녀온 미용실이니 주인아저씨가 저에 대해 모르는 게 있을 리가 없지요. 딱 한 가지만 빼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숙련된 솜씨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갑니다. 아저씨의 옷자락이 스칠 때마다 나는 희미한 박하향이 코끝에 맴돕니다. 숱을 치고, 길이를 맞추고. 답답하고 작은 상자 속에 갇혀 있던 내 마음을 청량하면서도 알싸한 향기가 풀어놓는 듯합니다. 앞머리 라인을 내리고, 면도기로 뒷머리를 시원하게 밀고. 바닥으로 날리는 머리카락을 따라 나의 마음도 조금씩 여기저기로 흩날립니다.

“자, 다 됐다. 학생 커트는 7000원만 주면 돼.”

“아유 아저씨, 이렇게 받으시면 뭐가 남아요?”

“나야 뭐 땅 파서 장사하니까 아무 문제 없지. 다음에 또 오렴!”

내가 학생 커트를 받아도 될까 잠깐 걱정이 되어서, 괜히 너스레를 떨어 봤습니다. 이런, 미용실에서의 담소가 너무 길어졌네요. 친구랑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뛰어야겠어요.


팝콘은 친구가 사고, 푯값은 제가 내기로 했습니다. 여랑이는 제게 학생증을 휙 던지고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으면서 매점에 줄을 서러 갑니다.

“학생 영화표 두 장 주세요.”

“학생증 보여주시겠어요?”

이런.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집니다. 매표소 조명이 유독 저만 비추는 것은 착각일까요, 현실일까요.

“여기요.”

여랑이의 학생증을 내밉니다.

“이건 한 사람 거고, 다른 한 분도 신분증 주셔야죠. 사진 보니까 친구 학생증인데, 본인 학생증은 안 주시나요?”

“죄송합니다. 학생증이 없어서요. 신분증 없이는 안 되나요?”

“요즘 하도 속이는 사람이 많아서 학생증 없이는 학생 표 못 끊어드려요.”

“그럼 그냥 어른 한 장 학생 한 장 주세요.”

“여깄습니다. 가운데 열에 두 자리 붙여드렸어요. 곧 시작하니까 얼른 들어가세요.”

3000원 더 내고 말았습니다. 안 된다고 하시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남의 속도 모르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여랑이가 야속하지만 고소하고 달콤한 팝콘 한 줌에 나쁜 기억은 다 잊고 즐겁게 영화나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평일 하루를 이렇게 자유로이 보낼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이니까요. 잠깐잠깐의 불편함 때문에 이렇게 화창하게 즐거운 날을 버릴 수는 없죠.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똑같은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사람들 무리에 섞여 교문을 통과할 필요가 없었던 날. 목적 없는 공부와 경쟁에서 벗어나서 마음을 놓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며 즐길 수 있었던 날. 학생이라는 틀을 만들어 나를 마구잡이로 쑤셔넣고 개성이란 손톱만큼도 허용하지 않던 세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어쩌면 행복하고, 평화롭고, 따사로운 날.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마음 한 켠이 저려 오는 일이 많았던 날. 몇 주 전이었으면 없었을 일들이 몰려서 일어난 날. 소소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서러워지는 이런 일들을 아마도 제 친구 대부분은 겪어본 적도 없겠지요. 조금 억울해지기는 하네요. 여기까지 제 하루를 따라오시면서 눈치채셨나요? 네, 저는 학교 밖 청소년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숨통을 조여 오는 생활이 답답해서 당장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부당한 대우, 동급생들의 괴롭힘, 그걸 묵인하는 선생님. 불필요한 규정과 제재, 매일매일 똑같은 생활, 시험만을 위한 목적 없는 암기. 모두가 앞만 보면서 달리는데 정작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없는 이상한 달리기 경주. 달려야 하는 까닭은 아무도 알려 주지 않고 “우리는 왜 달리나요?”하고 물으면 “버르장머리 없게 말대답 하지 마라”라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 아침이 되면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갔다가 밤이 깊어서야 지쳐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공간. 머리에 지식을 집어넣어고 행동양식을 ‘교정’해서 표준적인 사람을 제조하는 모습이 꼭 공장 같았어요. 매일 아침 등굣길을 걸을 때면 높고도 견고하게 양쪽으로 쌓인 콘크리트 담장에 당장이라도 눌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굣길에 머리 위를 총총히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기필코 이 갑갑한 울타리를 벗어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마침내 자퇴 처리가 완전히 끝난 날, 어깨를 무겁게 눌러 오던 책가방을 벗었습니다. 칙칙하고 갑갑한 교복도 벗어서 내려두고 담장 밖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떠오르는 해가 눈웃음짓고 들판의 풀이 손을 흔들어 저를 맞이합니다.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 속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오릅니다. 방향을 정하고 걸음을 옮기니 발자국마다 확신이 따릅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짜 준 시간표를 지키는 대신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루를 보냅니다. 매 순간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 살랑이는 바람과 일렁이는 풀내음을 온전하게 느낍니다. 잠깐잠깐 서글픈 웃음이 입가에 감돌기는 합니다. 함께 걸을 동료가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이 나를 자꾸만 투명하게 만들어서.


학교 안을 염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학교 밖에서, 담장 너머에서 씩씩하게 제 길을 걸어갈 겁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저를 학생이라고 칭하는 매 순간 저는 머뭇거립니다. 긴 싸움 끝에 벗어던진 교복을 주워 ‘자, 여기 네 옷 맞지?’하고 상냥하게 도로 들이미는 손을 어떻게 뿌리칠지 고민합니다. 소속 학교와 학년을 적으라고 할 때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학교를 떠난 우리들이 보이지 않으시나요? 참여하고 싶은 공모전이 있었지만 학교란을 비워 두면 신청서가 제출되지 않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증빙 자료로 학생증이나 교복을 가져와야 하는 이벤트를 즐기는 친구들 옆에 혼자 서 있었습니다. 학생 할인을 받고 학생 요금을 내는 친구 옆에서, 나이는 같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성인 요금을 냈습니다. 학생이라서 누릴  수 있었던 학교 도서관, 체육 프로그램, 공동체 생활에서도 배제되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은 공동체의 조각이 아닌가요? 왜 학생이 아닌 청소년은 못 본 체 하시나요?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학생이 아닌 청소년으로 존재할 수 없을 때 우리들은 조금씩 투명해집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씩 약해집니다. 그러니 우리를 지우지 마세요. 우리는 학생이 아닌 청소년입니다. 어느 날 드넓은 벌판을 걷다가 동료를 마주치고 눈웃음을 주고받을 날을 기다립니다. 더 이상 투명하지 않은 우리는 엇갈리는 서로의 길 위에서 힘이 되고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글쓴이 & 그림

문제없는 문제아 라우릴 (문제없는 스튜디오 <레인보우 시뮬레이터> 기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