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내향인 관찰일지 01. 프롤로그
이것은 우리 집에서 가장 자주 웃는, MBTI 검사 기준 I (내향형) 90%에 육박하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언젠가 한번 '자기는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기가 내 제일 친한 친구지.'였다. 중, 고등학교 동창이나 대학 동기들 중에는 없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친구들은 맞지만 그중에 제일 친한 친구는 없다고.
그래서 고백하자면 결혼식 당일 그의 친구들이 축하해 주러 온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정말 이 남자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닌가 남몰래 걱정하기도 했다.
친구가 없는 그는 약속도 없다.
한국에서도 한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였는데, 미국에서 사는 지금은 더 없어졌다. 6개월에 2-3번 정도? 그것도 모두 개인 약속이 아닌 함께 참석하는 가족 약속 일정들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굉장히 심심한 인생이라고 표현할 만한 그의 일상생활은 오전 7시 전에 시작해서 밤 11시경에 끝난다.
연애 3년, 결혼 1년 도합 4년을 바로 옆에서 바라본 결과, 남편이 이 루틴을 벗어나는 것은 일 년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더 글로리 몰아봤던 날, 수리남 몰아봤던 날, 나는 솔로 레전드 기수 함께 본 날 등이 그런 날들이다.
그는 이런 흔치 않은 날들이 도파민 폭발한 날이라고 말한다. 이런 특별한(?) 날들 빼고는 남편은 거의 대부분의 날에 10시 반 ~ 11시 반 사이에 잠들고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밤 11시 46분, 역시나 곤히 잠들어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남자는 매일 무엇을 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걸까?
그의 일상에 대해 시간대 별로 좀 더 자세히 써보자면 아래와 같다.
그는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거실에 앉아 스트레칭을 한다. 알람은 항상 그가 일어난 다음, 본인이 늦잠을 잔 것처럼 한 템포 늦게 울린다.
미국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는 매일 오전 7시 30분 책상에 앉아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한국 이중 국적인 그는 엄밀히 말하면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어쩌면 영어 공부가 딱히 필요 없다고 느낄만한데도 그렇게 매일 30분, 성실하게 영어 공부를 한다.
(항상 잠결에 그가 영어 공부 하는 소리를 희미하게 듣다가 다시 스르륵 잠에 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오전 8시, 업무 공부를 시작한 그는 9시쯤이면 여지없이 커피를 내려 마시고, 업무를 시작한다.
11시쯤 아직 비몽사몽 한 아내에게 점심 메뉴를 묻는다.
점심은 12시~1시 사이에 먹는다.
오후 1시, 항상 똑같이 디카페인 커피를 내려 마시고는 5시까지 집중해서 일을 한다.
그의 인생에 야근이란 없다.
5시, 모든 업무가 거의 마무리된 시간, 그는 저녁을 챙겨 먹은 후 일주일에 5~6번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50분 정도 운동을 한다.
돌아오면 8시쯤, 씻고 유튜브 좀 보거나 함께 영화를 보면 하루가 거의 마무리된다.
놀랍게도 이 일상을 정말 매일, 똑같이 반복한다.
매일 웃는 표정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인생의 만족도가 높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진심을 담아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 감탄한다. 냉장고 앞에서 물을 꺼내 먹으며,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서, 점심을 차려 먹으면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하다.
어느 날 문득 이 남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행복한 건지가 궁금해졌다. 돌이켜보면 연애 때부터 나는 진심으로 이 남자의 사고회로가 궁금했던 것 같다.
어떻게 그 비슷한 날들에서 매일 행복을 느끼고 만족스러워하는 것인지.
분명히 스트레스받는 날도 있을 것이고, 서운함, 실망, 각종 부정적인 감정들이 있을 텐데 내가 아는 그는 매일 똑같이 웃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꽤 오랜 기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질문하고, 어떻게 이런 상태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 시간들이 쌓여 결국 그의 사고방식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친구도, 약속도 없기 때문에 나라도 이 관찰일지를 기록해야 할 것 같다는 묘한 책임감도 느껴졌다.
알고 보니 행복한 내향인이 되기 전까지 그에게도 잠 못 드는 날들과 웃음이 하나도 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누가 봐도 행복한 사람이다. 반질한 피부, 반짝이는 눈, 항상 길게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행복한 내향인으로 살아가던 중 우울함을 숨기고 살아가던 패션 외향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패션 외향인은 행복한 내향인의 작고 고요하지만 동시에 아늑하고 단단한 세계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 글은 행복한, 아니, 행복해진 내향인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내가 보고 배우고 싶어서 시작했던 남편 관찰 일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