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졌던 내향인 남편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들

행복한 내향인 관찰일지 02

by 노라

극내향인인 남편에 대해 연애 때 가졌던 개인적인 생각들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해서 살다 보니 그 크고 작은 생각들이 나만의 오해였다는 점을 깨달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내향인 남편에 대한 오해와 관찰 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오해 1]
내향적이라면 혹시 사회생활을 힘들어하거나 너무 스트레스받는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회생활 아주 잘한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비선호의 영역이라고 한다. 연애 초기부터 중기까지 함께 약속 가자고 말할 때 많이 망설였는데 (마치 고양이를 데리고 외출할 준비 하는 기분) 항상 기분 좋게 다녀와서 신기했던 기억. 여행 가서도 매우 잘 돌아다닌다. 다만 밖에서의 시간만큼 집에 돌아와 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긴 하다.


행복한 내향인인 남편은 회사 업무에는 최선을 다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열심히 해야 야근을 하지 않고, 빨리 집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누워 있는 (남편 피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그에게 회사 업무를 업무 시간 내 다 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는 사회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사회생활에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꾸준히 신기해하는 포인트인데, 남편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라는 반발심보다는 ‘? 굳이... 왜?’라고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쪽에 가깝다. 그의 사고 회로 상 회사는 업무를 하는 곳이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함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저 업무만 잘 되면 아무 문제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회사를 다니지만 전혀 누군가의 감정에 휩쓸리거나 자신의 감정을 얹어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는다. 그저 ‘왜 저렇게 생각하지?’의 태도로 일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회식 중 자신의 송별회를 제외한다면 회식에 나갈 이유가 전혀 없다. 이직을 해서 새로운 곳에서 일하기 시작해도 모든 것에 웃는 낯으로, 하지만 일이 끝나면 칼같이 퇴근하기 때문에 이런 이미지가 굳어져서 아무도 ‘오늘 맥주 한잔 하러 갈까요?’라고 묻지 않는다고 한다. 간혹 팀원 중 누군가 물어본다면 ‘오늘은 운동하러 가는 날이라서 안될 것 같다’라고 웃으며 대답하고 빠르게 퇴근한다고.


신기한 점은 이런 그의 태도가 회사에서 아주 좋은 평가를 받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 직장에서 팀장직으로 일할 때도 팀원들, 그리고 상사들에게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회사에서의 모습을 종합해보면 내가 회사에서 만났어도 좋은 동료라고 생각했을 만한 조건들이긴 하다.

항상 웃고 있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항상 기한 내, 혹은 그보다 여유롭게 끝냄

감정적이지 않음

하지만 회식은 절대 안 나오는 동료




[오해 2]
차분한 성격일 것 같은데 흥은 별로 없나?



우리 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부르는 소리의 8할은 남편이다. 우리 집 가족들은 알아주는 대문자 E 외향인들인데, 내향인이라고 알고 있는 큰 사위가 아주 얌전한 녀석이라고 알고 계신 엄마는 어느 날 나에게 물어보셨다. ‘O서방은 집에서도 저렇게 웃으면서 얌전히 있어?' 나는 그 질문에 ‘아니? 맨날 노래 부르고 춤추던데?'라고 항상 대답한다. 그 이야기를 집에 와서 하자 남편은 웃으며 대답했다. 집에서 춤추고 노래해야지 그럼 어디서 춤추고 노래하냐며.


남편이 주로 부르는 노래는 이문세 님의 노래들, 오 솔레미오, 에스파의 슈퍼노바, 그리고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CCM 송이다. (그의 나이 32세)

오늘도 머리를 말리며 요들송 비슷한 걸 부르길래 물어보니 댄스 버전 ‘다행이다’라고 한다. 비트박스는 덤

춤추는 영상들도 내 핸드폰에만 개인소장 중이다. 그중 유일하게 허락받고 올리는 흥 넘치는 그의 뒷모습 사진.


[오해 3]
내향적이면 잘 못 따지고 소심하려나?


‘내향적’이라는 말이 ‘소심한’이라는 형용사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남편은 실제로 웃으면서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인데, 그런 성격은 감정을 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엄밀히 말하면, 감정을 담을 만큼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는 감정 단 한 톨도 쓰지 않는다. 그게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더더욱.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윗 층에 중국인들이 이사를 왔는지 새벽 2시 경마다 중국어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 글에서 서술했다시피 남편은 10시 반에 잠들기 때문에 새벽 2시는 무조건 잠을 자고 있는 시간대이다. 하지만 이 층간 소음이 심해지기 시작하자 어느 날 중간에 깨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그는 에효 하고 한숨을 쉬더니 결심한 듯 침대방 창문을 열어젖히고는 중국어로 입 다물라고 말하며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아주 짧은 찰나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얼떨떨해져서 정신없이 웃고만 있었다. 남편은 헤헤 웃으며 다시 침대의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는 ‘새벽에 너무 시끄럽잖아’라는 말을 한마디 더 하고 이내 다시 잠에 들었다.


윗집은 다음 날부터 새벽에 싸우는 것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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