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WDR) 방송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얼마만의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보러 간 건지 헤아려봤다.
‘만 1년이 넘었네’
그렇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높은 티켓가로 인한 예매창 진입 장벽. 둘째는 수준 높은 국내 오케스트라의 존재였다. 설득력 있는 두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독일 쾰른 방송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보게 된 건 바로 협연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최근 국내 여러 매체를 통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소개되고 있는 10대 소녀 김서현과 독일 대표 첼리스트하면 빠지지 않는 명연주자 다니엘 뮐러-쇼트. 소문으로 듣던 두 연주자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연명: 쾰른(WDR) 방송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일시장소: 2026.3.11.(수) 오후 19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소개: 독일 서부 공영방송 WDR을 대표하는 쾰른 방송 오케스트라가 2018년 내한 이후 8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선다. 이번 공연은 슈만의 극적인 만프레드 서곡을 시작으로 첼로와 바이올린의 조화로운 선율을 들려주는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지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의 격정적인 피날레로 이어진다. 깊고 서사적인 서곡에서 깊이 이쓴 현악 합주, 인간의 심리를 음악으로 표현한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낭만주의 음악의 다양한 색채를 한 공연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출연진: 지휘 안드리스 포가(Philippe Jordan), 바이올린 김서현, 첼로 다니엘 뮐러-쇼트(Daniel Müller-Schott) 연주 쾰른 방송 오케스트라(WDR Sinfonieorchester Köln)
프로그램
- 로베르트 슈만, 만프레드 서곡, Op. 115 Robert Schumann Manfred Overture, Op. 115
- 요하네스 브람스,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 a단조, Op. 102 Johannes Brahms, Double Concerto for Violin and Cello in a minor, Op. 102
-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f단조, Op. 36 Pyotr Ilyich Tchaikovsky,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협연곡인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 차례가 되자 두 사람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검정 바탕에 에메랄드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드레스를 입은 김서현과 흰색 셔츠에 검정 나비넥타이를 맨 턱시도가 잘 어울리는 다니엘 뮐러-쇼트였다.
오케스트라 투티(Tutti. 전체 연주)로 1악장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첼로와 바이올린의 독주가 번갈아가며 카덴차(Cadenza. 반주가 잠시 멈춘 동안 독주자가 기교적인 연주를 펼치는 구간)로 연주를 펼치는데 순간 온 신경이 몰입되었다.
'바이올린 되게 잘한다' 란 생각이 듬과 동시에 무언가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닭살보다는 전율에 가까웠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그 근원이 연주자의 실력인지, 김서현이 연주한 과다니니 악기의 특성인지, 아니면 그날 나의 기분인지 알고 싶었다. 협연이 아닌 음향 좋은 소공연장에서 독주를 했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았다.
한편, 오케스트라, 첼로와 함께 나오는 다음 악장에선 바이올린 음량이 한층 작아졌다. 1악장의 날렵함은 사라지고 업라이트 피아노의 머플러(약음) 페달이 눌린 것처럼 뭉툭한 소리가 났다. 추측컨대, 주변 소리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의도적인 컨트롤이 아니었나 싶었다.
한편, 훈훈한 외모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다니엘 뮐러-쇼트의 연주는 경쾌함과 다정함이 느껴졌다. 첼로의 카덴차에는 바이올린이 주로 연주하는 고음이나 더블베이스의 극저음을 연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종종 본인과 맞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들릴 때가 있다. 음계는 맞지만 피치는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의 연주에서 그런 어색한 순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협연자인 김서현을 바라보거나 본인 파트가 없을 때 오케스트라를 둘러보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킴벨은 그것을 다정함이라 표현하곤 하는데 함께 연주하는 주변인의 음악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까지 헤아리는 연주자의 여유와 배려 속에서 다정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짧은 인터미션이 지나고 2부 WDR 오케스트라의 무대로 이어졌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연주했는데 1~2악장과 3~4악장의 감상이 극명히 갈렸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낼 때 작곡한 곡이라고 했다. 애정 없는 결혼을 선택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파경에 이르렀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긴 여행길에 오르면서 이 곡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1, 2악장을 들으며 그가 느꼈을 암울함이 공연장 내부를 휘감았다. 차이콥스키는 그녀의 후원자 몬 메크 부인에게 이 곡을 헌정하며 상세한 설명을 편지에 덧붙였는데 정확히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1악장을 <인생이란 암담한 현실과 덧없는 꿈이 뒤섞인 것에 불과합니다>라고 하였고, 2악장을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는 없습니다>라고 묘사하였다. 왜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아팠던 건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와 반대로 3, 4악장은 점차적으로 행복한 감정이 차오르는 느낌이았다. 현악기의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연주법) 주법이 어느 정도 일조한 부분도 있지만, 정점은 그것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표정에서 행복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수 쪽과 가깝게 앉은 내겐 상수에 앉은 비올라 수석이 정면으로 보였다. 온몸으로 연주하는 비올라 수석은 리드미컬한 구간에서 어깨까지 들썩이며 크게 활을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수석 옆에 앉은 연주자는 다음 박자에 그와 비슷한 제스처로 호응해 주었고 그 모습이 보기에 심히 좋았다. (나중에 프로그램북에서 확인해 보니 비올라 파트는 그 2명 모두 수석이더라)
맨 뒤에 앉아 있던 퍼커션 주자들도 눈길을 끌었다. 존재감 없이 앉아있던 한 젊은 청년은 대장정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걸 스포 하였는데, 심벌즈를 살며시 들었기 때문이었다. 치아까지 보이며 씩 웃은 그는 ‘나 이제 심벌 들었다, 곧 칠 거야, 나 간다, 진짜 이제 간다’라고 말하는 듯 온몸을 들썩거렸고 이내 심벌즈를 강하게 쳤다. 그 옆에 앉은 백발의 연주자는 트라이앵글을 손에 들었는데 심벌즈 연주자와 눈길과 미소를 주고받으며 정확한 타이밍에 청명한 금속 소리를 내었다.
멋진 호흡을 보여준 두 협연자,
행복한 웃음을 전해준 두 쌍의 오케스트라 단원.
오늘도 나만의 감상포인트를 발견한 채 집으로 들어가며 스쳐 지나간 생각 하나.
"아,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이 재미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