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당최 무슨 소리야? 댄스프로젝트그룹 이소

<오디토리움 시리즈: 그 때 그 극장 편> 연희예술극장

by 노랑망고

이번 달은 어떤 공연/전시를 보러 갈까?


<매달 3회 이상 직관하기>라는 연간 목표를 세운 내게 무엇을 보러 갈지 선택하는 최우선 기준은 공연의 출연자, 전시의 작가이다. 이름이 기준이 되는 의사결정은 단순하지만, 그 과정에서 넘어야 할 장애물이 존재한다. 바로 치열한 피켓팅과 높은 티켓가가 그것이다.


장애물과 대치 상태가 쉽사리 마무리되지 않을 땐 재빠르게 차선책으로 선회한다. 다른 공연이나 전시를 찾게 되는데 선택의 기준은 공연이나 전시를 소개하는 문구가 된다. 감각적이면서도 유행을 타는 소개글이 있는가 하면, 얼마나 역사적 가치가 있고 명성 있는가를 강조하는 소개글도 있다.


공연소개글.PNG 소개글을 읽고 무슨 공연인지 예상해 보세요


그러던 어느 날, 양 극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요상한 소개글 하나를 접했다. 아무리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던 그 글은 예비 관객들을 예매창으로 안내하기는커녕 제3의 방향으로 혼자 앞서가버렸다. 이걸 보러 가는 게 맞을까 여러 번 고민하던 나는 결국 현장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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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개요

공연명: 이소 <오디토리움 시리즈: 그때 그 극장편>

일시장소: 2026.2.28.(토) 14시 연희예술극장

기획의도: 신진예술가를 위한 자유로운 예술실험축제 '제10회 모자이크 페스티벌:노 리미트(NO LIMIT)'가 서울 연희동 연희예술극장에서 열린다. 연희예술극장이 주최하는 페스티벌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및 실연할 기회를 주는 공연예술제로, 올해는 '노 리미트'라는 주제 아래 장르와 형식, 경계와 제약을 넘어서는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신진팀 7팀과 지난해 우수작 초청팀 2팀 등 9팀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 우수작인 창작집단 모르Z '카페人 중독 투샷'이 개막작으로, 이소 '오디토리움 시리즈 : 그때 그 극장편'이 폐막작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출연진 및 제작진: 댄스프로젝트그룹 이소


cast.PNG 출연진 및 제작진


극장에 입장하자 평소 마주하던 무대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무대가 어디인지 감이 안 오니 어디에 앉아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앉으라고 마련한 장소가 두 군데 정도였는데 퍼포머가 무대를 넓게 쓰려나 예상해 보았다. 감으로 판단해야 하니 일단은 안전한 구석에 앉았다. (등받이 의자가 필요한 관객을 위한 접이식 의자가 별도 비치되어 감사하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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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이 앞, 뒤로 구분되어 있는 독특한 배치(좌)와 구석에 비치되 있던 접의식 등받이 의자(우)


Unstoppable 멈추지 않는


극을 관람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공연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 퍼포머가 캐리어(나중에 알고 보니 스피커였다)를 끌고 걸어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긴 생머리의 그녀는 관객 출입구로 들어와 내가 앉은 객석을 지나 앞쪽 무대로 향했다. 두 군데 객석 앞으로 큰 원을 그리며 걷더니 이내 암전이 되었다.


[스윽~ 스윽~] 앞이 보이지 않아 청각에 의지하여 상황을 파악했다. "저기 앞에 봐봐" 킴벨이 먼저 알아채고 내게 말해주었다. 킴벨이 가리키는 곳에선 아까 그 하이힐 여성이 땅을 기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땅에 머리카락을 질질 끌며 뒤로 말이다. 한참을 기어 다니다 일어나서 뒷걸음질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공연장 전체에 울렸다. 관객으로 보였던 퍼포머들이 하나 둘 러닝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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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그리며 무대를 활보하는 퍼포머들(좌)과 캐리어로 착각했던 이동식 스피커와 거치된 휴대폰(우)


어느 순간 달리는 걸 멈추었는데 그때부터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잘 들어보면 한국말인데 단박에 이해되지 않았다. “이동을 이동하다”. 어느 상황을 묘사하는 듯한데 철학책을 읽는 것처럼 한글이 인지는 되지만 이해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또 다른 퍼포머는 지난 공연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관객이 통로에서 비켜주지를 않았다”, “부모님이 공연에 오셨는데 극 중간에 나를 끌어안았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이를 기괴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했다는 것이다. 손이든 발이든, 입이든 몸이든 이들은 멈출 수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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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거리는 퍼포머의 대사가 대략 저런 식이었다(좌) 그 중얼거림을 요가 자세로 하는 모습(우)


Simultaneous 동시다발적인


퍼포머가 7명까지 늘어나면서 극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사라졌고 관객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주목하고 싶은 퍼포머에게 다가갔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객들이 시선강탈하는 요가 퍼포머에게 집중했을 때였다. 그때 킴벨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단다. 처음엔 본인이 다음 회차 공연 퍼포머라고 소개했는데 나중에 펜을 꺼내더니 정체 모를 문장 하나를 팜플렛에 쓰고 사라졌단다.


퍼포머들 중 일부는 바디캠을 착용하거나 휴대폰 카메라를 소지했는데 해당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 상황이 스크린에 송출되었다. 대략 2~3군데에서 벌어지는 현장 상황이 교차되는 장면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 간간히 사전 촬영한 VCR이 나오기도 했는데 연희동 주변을 배회하는 퍼포머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나름의 메시지를 담았을 텐데 입으로 중얼거리는 대사만큼이나 즉각 이해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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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럽게 남기고 간 한 문장(좌)과 스피커에 거치된 휴대폰 카메라로 중계되고 있는 시야 밖 상황(우)


Unstoppable 그리고 Simultaneous. 연상되는 두 단어는 젊은 예술가 그룹에게 어울리는 표현들이다. 다만, 자칫 관객에게 난해함만 주고 끝날 수 있는 공연이었는데 중간중간 소소한 배려가 있어 그렇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일부 장면들은 난해하고 때론 기괴했다. 관객 입장에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이라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걸 고려해 퍼포머들은 관객 쪽으로 다가가거나 아이컨택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안전거리가 보장되면서 비자발적으로 극에 포함되지 않겠구나란 심리적 안정감이 생겼다.


공연 시작 3시간 전에 받은 안내 문자와 티켓 배부처 직원의 설명도 유의미했다. 공연 간 자유로운 입퇴장이 가능하고 촬영이 가능한 부분을 고지해 주어 관객들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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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떤 동작을 하든 일정 거리가 유지되는 모습(좌) 그리고 사전 안내 문자(우)


그래서 이 공연은 어떻게 마무리되었을까?


퍼포머가 두 명씩 서로를 마주 보며 쉐도우 복싱을 하듯 격렬한 몸의 대화를 주고받다가 끌어안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분열된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듯 무리를 이루더니, 모든 퍼포머가 서로를 감싸 안고 한 뭉텅이가 되어 로비로 향했다. 이후 한 명씩 관객이 들어왔던 출구로 나갔고 시야에서 모두가 사라졌다. 그때 객석 앞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한 명씩 얼굴을 내밀었고 비대면 커튼콜로 공연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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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을 통해 배우 한 명씩 인사하고(좌) 마지막 인사는 현장에 남아 있던 퍼포머가 마지막 인사(우)


난해해 보였고 실제로 난해하기도 하였으나

그 모호함을 연기한 퍼포머들의 열심이 보기에 흐뭇했고,

현장에 함께한 관객들의 얼굴에도 너그러운 미소가 띠어져 있는 걸 보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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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출연진(좌측)과 테크팀(우측) 커튼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