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필리프 조르당>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올해 처음 본 클래식 공연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서울시향 연주회를 봤습니다. 서울시민이거든요.
신년 첫 공연으로 서울시향 공연을 선택했다. 서울시민이라고 별도 할인 혜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근거리에 있는 클래식 특화 공연장에서 우수한 지역 예술단체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서울시민이 누리는 복지라 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니 브런치 첫 번째 글이 서울시향의 신년음악회 리뷰글이었다.
공연명: 2026 서울시향 필리프 조르당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②
일시장소: 2026.1.30.(금) 오후 19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소개: 파리 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역임한 필리프 조르당이 처음으로 서울시향을 만난다. 목관도, 금관도, 타악기도 없는, 오로지 스물세 명의 현악 연주자만이 무대에 올라 유려하면서도 정교한 합을 보여주는 슈트라우스의 작품과 치열한 현세를 벗어서 천국으로 향하는 과정을 대규모 편성으로 그리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구성 측면에서 완벽한 대척점에 자리 잡은 두 작품이 관현악 감상의 묘미를 선사한다.
출연진: 지휘 필리프 조르당(Philippe Jordan), 연주 서울시향
프로그램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메타모르포젠 Richard Strauss, Metamorphosen, TrV 290
-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제9번 Anton Bruckner, Symphony No. 9 in D minor, WAB 109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과는 초면인 관계로 정중히 인터넷 검색을 했다. 파리와 빈에서 오페라 음악감독을 역임한 이력에 눈에 띄었다. 오페라와 콘서트 지휘는 모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지만 아예 다른 분야라고 들었다. 최근 한창인 밀라노 동계올림픽을 예를 들자면, 한국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 신기록을 세운 최민정 선수의 주종목 쇼트트랙과 이제는 가수 강남의 아내로 잘 알려진 이상화 선수의 주종목 스피드 스케이팅과의 관계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려나? 오페라와 콘서트를 둘 다 소화하기엔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것으로 이해했는데 조르당 이 사람, 2027년부터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지휘자의 이력으로 호기심이 한층 커지는 가운데, 첫 곡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이 연주되었다. 23명의 현악 연주자로만 이루어진 3부 형식의 곡인데 특별히 박자나 분위기의 변형 없이 물 흐르듯 전개되었다. 자연스레 프로그램북을 펼쳐 곡 소개를 읽어 보았고 예상 밖의 사실과 마주하였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슈트라우스의 조국 독일의 상공엔 폭탄이 쏟아지고 음악의 도시 빈의 자존심이었던 국립 오페라 극장마저 무너졌다. 그다음 날인 1945년 3월 13일, 슈트라우스는 이례적으로 악보에 날짜를 기입한 후 작곡을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전쟁과 파괴에서 촉발한 창작물이란 걸 인지하고 음악을 들었을 땐 끓어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른 느낌이었다. 분노, 상실 등의 감정에 매몰될 수 있으니 최대한 자제한 걸까? 아니면 모든 감정은 밀어 두고 애도에만 집중하려 한 걸까? 자료를 찾아보니 슈트라우스는 1919년부터 5년간 이 극장의 공동 예술감독을 역임한 이력이 있어 더욱 애착이 갔을 상황이었다.
얼마 전 덕수궁에서 열린 전시 하나를 보러 갔다.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였는데 거기에 걸렸던 그림의 설명이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과 오버랩되었다.
전쟁이 휩쓸고 간 서울의 전경을 담은 도상봉의 작품은 전쟁의 상흔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담담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폐허가 된 전후의 시가지에서 느껴지는 쓸쓸하고 고즈넉한 정서는, 암담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짧은 인터미션 뒤 시작된 2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은 3악장 구성이지만 러닝타임은 60분이 넘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피날레 악장을 완성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였고, 3악장이 끝난 후 합창곡 <테 데움>을 연주하라는 대안을 남겼다고 한다. 오늘 공연에서는 생전 브루크너가 완성한 3악장까지만 연주되었다.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란 걸 직감한 작곡가는 후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을까? 1악장은 죽음을 앞둔 감정을 표현한 듯했다. 공연에 오기 전 곡을 미리 들어보았는데, 예습할 때 들었던 1악장은 기괴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현장에서 들으면 더 극적일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막상 서울시향의 1악장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 신기했다. 서서히, 찬찬히 끌어올리는 느낌이었고, 기괴하다 느꼈던 순간 바로 직전 정도로 지휘하는 느낌이었다.
한편, 2악장은 반전이었다. 죽음과 대척점에 있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었다. 격정적이고 박자감이 넘쳤다. 지휘자의 손끝을 보면 대략 몇 박인지 오는데 아무리 조르당의 손끝을 주시해도 패턴을 찾기 어려웠다. 그의 지휘 아래 바이올린부터 콘트라베이스까지 모든 현악주자들은 활을 끝에서 끝까지 사용하며 활기를 더했고, 요소마다 등장하는 플루트의 멜로디가 유독 존재감을 더했다.
마지막 3악장은 솔직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음악 너머에 있는 브루크너와 나눈 대화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브루크너의 인생 끝자락이 담긴 음악을 들으며 유한한 인생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다.
오늘을 가치 있게 보내고 남김없이 사랑한다면
내일이 없더라도 아쉽거나 불안한 건 없을 거야
브루크너가 말해주는 듯했다.
콘서트홀에 앉아 이처럼 영감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첫째, 영감 있는 작품이 있었고 둘째, 이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훌륭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셋째,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청중이 있어야 3요소가 비로소 완벽을 이룬다.
오늘 공연은 악장 사이에 박수는 물론 기침소리도 거의 없었을 만큼 조용했다. 더 정확히는 1, 2부 곡을 끝맺은 지휘자가 마지막 손짓을 마치고 공중에 떠다니는 음표와 쉼표가 사라질 때까지 고요히 지켜보았다. 박수는, 마침내 음악에서 지휘자가 깨어났을 때 시작되었고 계속되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