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무대를 채운다는 의미, 연극 <그때도 오늘2>

<그때도 오늘2: 꽃신> NOL 서경스퀘어

by 노랑망고

즐겨 듣는 라디오에 김소혜, 안소희 배우가 출연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로 그룹 내 막내미를 맡았던 부분까지 비슷한 두 사람이 한 연극에 더블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가수 출신 배우가 강점을 보이는 뮤지컬도 아니고, 연출과 편집이라는 믿을 구석이 있는 영화도 아닌 연극이라니. 음방의 AR이나, 감독의 커트 사인 없는 실시간 그 자체인 연극 무대 위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연극 티켓을 증정하는 청취자 이벤트에 덜컥 당첨이 되었고 발걸음은 혜화로 향했다.




공연개요

공연명: 연극〈그때도 오늘2: 꽃신〉

일시장소: 2026.1.28.(수) 20시 NOL 서경스퀘어

기획의도: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4개의 시대를 오가는 옴니버스 형식의 2인극. 역사의 이면에서 그 시간들이 일상이었을 보통 사람들이 살아낸 어떤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출연진: 김혜은(여자 1), 김소혜(여자 2)

제작진: 작가 오인하 연출 민준호 주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연극 캐스팅과 시놉시스

소극장에 들어서니 푸르스름한 연기가 가득 찬 무대가 펼쳐졌다. 보름달 환하게 뜬 어느 시골집 평상의 풍경을 보며 극의 배경을 대충 가늠해 보았다. 무대 뒤편, 조명이 드리우지 않는 곳에 놓인 몇몇 무대 세트들도 보였다. 요즘 연극은 무대 세트를 굳이 가리지 않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전경


연극은 4개의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었다. 1593년 임진왜란, 1950년 한국전쟁, 1979년대 가발 무역여공 이야기까지 가슴 아린 역사적 순간을 현실로 살아간 서로 다른 두 여자의 모습을 담았다. 마지막 네 번째는 2025년 대학병원에 입원한 엄마와 임신한 딸의 이야기였는데 앞선 역사적 비극만큼이나 안타까울 오늘은 무엇일지 고민했을 얼굴 모를 제작진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럴까?


15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거진 400년이 넘게 흘렀음에도 한국 특유의 대화법은 여전하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있으나 정작 말투에서 배려는 실종되었고, 상대의 호의에 고맙지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보니 되려 고집을 부리는 모습이 왠지 익숙하다. 본래 선한 의도는 흐려지고 오해 위에 쌓인 오해만 남는 대화, 특히나 가까운 가족에게 더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1593년이나 2025년이나.


오늘의 출연진


상대적으로 어린 여자 역(여자 2)을 맡은 김소혜 배우는 사투리부터 격정적인 감정씬까지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어리광 피우는 사투리 연기는 그것 나름의 해맑은 느낌이었고, 앞서 언급한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한 본캐 김소혜의 빙구 웃음과 간간히 겹쳤다. 극이 진행될수록 배역에 녹아들었고, 특히 네 번째 씬에서는 임산부 역은 아픈 엄마의 딸이자 엄마가 될 딸의 심정, 그 전형을 보여주었다.

상대역이었던 김혜은 배우는 등장부터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을 빠르게 몰입시켰다. 공연날 연극 전공생으로 보이는 무리의 단체 관람이 있었는데 연기란 무엇인가 보여주는 베테랑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두 배우의 에너지 레벨이 달라 자칫 한쪽으로 쏠리지 않을까 약간의 우려가 있었지만 금세 톤과 결이 맞아가는 인상을 받았다. 인상적인 부분은 1970년대 신발가게 벙어리 사장 역할을 연기하는 부분이었는데, 앞서 자매의 언니이자 모녀의 엄마로 멘트를 쉼 없이 쏟아낸 것과는 극명하게 달라진 모습에 아예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병실 침대와 냉장고, 의자까지 모두 배우들이 직접 설치했다


배우들의 연기 외에도 이목을 끈 건 에피소드를 엮는 연출 방식이었다. 4개의 에피소드가 전개되는 동안 3번의 무대 전환이 있었다. 1막이 끝나고 음악이 흐르면 무대가 어두워진다. 2막을 위한 세트와 소품 전환을 하는데 두 배우가 그 모두를 직접하였다. 바퀴 달린 세트를 함께 밀어 고정시키고, 각자 소품을 옮겨 무대 곳곳에 배치했다. 일사불란하지만 급하지 않게 움직이는 어둠 속 두 배우의 실루엣을 보며 무대 전환조차 극의 일부라 느껴졌다. 오롯이 배우가 무대를 채우고 있었다.


커튼콜 장면


한편,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꽃신은 다른 듯 닮은 삶을 살았던 각 시대의 여성들을 연결하는 오브제다. 다음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로 데려다준 꽃신은 굳건한 신념이자, 최선의 사랑이었고, 위기 속의 인간애이자 스스로를 귀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문득 이 모든 걸 연기하고 있는 배우에게 감정이 이입되었다. 서로 다른 4명의 삶을 인터미션도 없이 표현해야 하는데 체력에 감정 소모까지 꽤나 힘들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 장면이 눈에 확 꽂혔다. 매 에피소드가 끝나고 무대 전환을 시작하기 전, 두 배우는 서로를 꽉 안아주었다. 포옹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꽃신


커튼콜이 끝나고 무대엔 꽃신만 남았다. 열연한 두 배우는 떠났지만 내게 전하는 마음은 꽃신에 담겨 있었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은 산더미고, 상대할 사람들이 한참 남았지만
분주함 속 소중한 사람과의 마음 담은 포옹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할 거에요.




그건 그렇고 즐겨듣는 그 라디오에 공연 잘봤다고 사연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생방으로 소개되었다. (헤헷)



https://youtu.be/Mhosaq7XnXM?si=yv3VFp2jSpk4snZ_&t=168

그리 놀랍지 않은, 음식 사진에 행복해하는 배디


매거진의 이전글세종문화회관의 요상한 기획, 무대 위로 올라간 관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