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망고 Mar 04. 2022

서울시향은 과연 얼마나 잘할까

<2022 서울시향 신년음악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말로만 듣던 서울시향 공연을 보러 갔다. 클래식 레퍼토리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서울시향에 대한 배경지식도 없는 상태라 신년 음악회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2022년 첫 공연이라 더 들뜬 마음으로 들어선 세종문화회관. 내 눈을 제일 먼저 사로잡은 건 관객의 옷차림이었다.

보통 로비의 풍경 같아 보이지만 유심히 보면 옷차림의 특이점이 보인다   


캐시미어 코트에 명품 가방, 그리고 검은색 단화. 서울시향 공연은 익숙하다고 말하는 옷차림으로 로비를 서성거리는 사람들. 신사 숙녀스러운 대화와 몸짓에서 그들만의 질서가 느껴졌다. 그동안 대극장에서 봤던 공연의 관람객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3층 맨 뒷좌석에 앉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소리가 명확하게 전달된다


미하일 글린카│<루슬란과 류드밀라>

공연이 시작되고 서곡이 연주되었다. 평화로운 곡 분위기 속 현악기의 합이 너무 잘 맞았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수십 개의 활이 바람을 일으켜 3층 객석까지 닿는 느낌이었다.


                                                

‘와, 잘한다. 잘해서 너무 좋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당장이라도 내 소감을 전하고 싶을 만큼 흥분되고 몰입되었다. 자연스레 다음 무대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다. 서곡이 끝나고 무대는 암전, 그리고 피아노가 무대 중앙으로 들어왔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피아노 협주곡 제2번

공연장에 여유 있게 도착한 덕에 프로그램지를 찬찬히 볼 여유가 있었다. 이번 음악회 레퍼토리에 대한 설명이 프로그램지 2면에 걸쳐 작성돼 있었다. 평론가의 곡 설명과 해당 곡의 초연 분위기까지 담은 설명글에 ‘이게 시향의 프로그램지 스타일인가?’ 하며 읽었다. 그리고 1악장을 듣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30분 전 내가 프로그램지를 읽지 않는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에게 한참 미안할 뻔했다’였다.


혼비백산.

오케스트라 중 누군가의 악보가 밀렸나 싶을 정도로 혼잡했고, 피아노 악보 템포 지시어에 <손이 가는 대로> 라고 써있나 할 정도로 터치가 난무했다. (다만 모든 터치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님의 의도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너무 잘 쳤다). 프로그램지 설명에 따르면 이 곡을 처음 듣고 한 부부는 “이런 음악은 우리를 미쳐버리게 할 거야! 도대체 우리를 놀리자는 건가?”라고 불평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했다. 놀랍게도 나보다 10열 정도 앞에 앉은 한 중년 남자가 연주 중간에 나가버렸다. 시대를 아우르는 클래식의 힘이다.



인터미션

허리 한번 펴고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이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직 2부 시작까지 한참이 남았는데 플루트 연주자가 무대로 들어와 열심히 연습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모습은 공연 시작 전에도 목격한 장면이라 의아했다. 플루트뿐 아니라 다른 목관 악기 연주자도 열심히 연습하길래 ‘대기실 공간이 좁은가?’ ‘리허설 때 지적을 받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공연을 기다리며 프로그램지를 읽는 관객 너머로 목관 단원들의 연습하는 모습이 보인다


표트르 일치 차이콥스키│교향곡 제4번

앞서 목관 연주자들이 틈나는 대로 연습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목관 악기가 번갈아가며 멜로디를 연주하고 현의 피치카토가 곡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앞서 열심히 연습한 플루트 연주자가 본인의 멜로디 파트를 실수 없이 연주했을 땐 그새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는지 내적 박수를 쳤다. 현악과 목관, 금관이 칼같이 구분된 느낌이고 일부 파트에선 바이올린과 첼로가 편을 나눈 듯 서로 다른 구성을 가졌다. 내적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 건 팀파니였다. 치고 빠지는 것은 기본이며 들릴 듯 말 듯 계속해서 박자를 끌고 가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천둥과 번개 폴카

놀이동산에 온 듯한 해맑은 앙코르곡을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스크 쓴 1,500명 관객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는 MC 오상진 씨의 멘트가 역설적이게도 얼마나 고단한 일상을 살고 있는가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격려는 논란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서 받았다. 혼돈의 시대를 표현한 듯한 100년 전 곡은 코로나 같은 혼돈이 100년 전에도 있었다며 지금 우리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