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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l 03. 2020

인스타를 끊어야 삶이 보인다

스마트폰이 사달이 나야

나처럼 인생 복잡하게 사는 사람도 없을 거다. 폴더폰을 쓰고 있는데 스마트폰도 별도로 가지고 다닌다. 전화와 문자는 주로 폴더폰을 사용하지만 인터넷 사용이 불가피할 때는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다. 데이터 함께 쓰기 기능을 사용해 인터넷을 쓰는 - 전화 기능은 없는 스마트폰이다.


폴더폰 사용은 나 자신이 인터넷 사용을 절제하려고 하는 특단의 조치였다. 폴더폰만 쓰고 싶었는데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여러 기능 때문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가 없다. 애들 학교, 유치원 알람도 죄다 앱으로 되어 있고, 카메라도 써야 하고 내비게이션도 써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두 전화기를 사용하고 있다.


내 계획은 애초에 폴더폰만 사용하고 스마트폰은 꺼두는 거였다. 스마트폰은 꼭 필요할 때만 켜서 사용하고 다시 꺼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게 두 전화기를 사용할 만큼 특단의 조치를 강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자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언택트 사회가 도래하면서 스마트폰을 켜두는 시간이 확연히 늘어났다. 나는 SNS 속을 예전보다 더 자주 유영했다. 아이들 앞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려고 두 전화기를 사용하는데도 코로나 이후로는 쉽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이 아닌 성인과의 소통을 갈급했고 인스타는 재미있고 편했다. 말이 재미고 편함이지 인스타는 중독되기 딱 좋은 구조이다. 멍 때리기 딱 좋은 특유의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글을 주의 깊게 하나씩 읽어야 하는 블로그나 브런치와 다르게 인스타는 사진 위주라서 검지 손가락 하나만 올려 가면서 이미지를 구경하기 딱 좋다. 


책 덕후인 나에게 인스타는 책을 검색하기에도 유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출판사들도 요즘 메인 SNS 플랫폼으로 인스타를 사용하고 있다. 출판사들의 서평 이벤트, 신간 정보, 작가 북 토크 정보도 죄다 인스타에 올라온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검색할 때도 인스타는 안성맞춤이다. 얼마나 방대한 그림책 사진들이 올라와 있는지 책을 접하기도 전에 책을 다 읽은 느낌마저 든다. 어떤 피드는 저작권을 침해할 만큼 너무나 많은 책의 페이지의 사진을 올려서 책을 만든 작가에게 내가 미안해질 지경이다.


과다한 인스타 이용의 문제는 삶에 집중이 안 된다는 거다. SNS 속을 왔다 갔다 하니 계속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고 그 속에서 내가 더 행복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스타를 하면서 책 읽는 시간마저 확 줄었다. 인스타 속 책들 이미지를 보고 나면 책을 읽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러다 이틀 전 스마트폰 액정이 사달이 났다. 폰을 여러 번 떨어뜨렸더니 폰이 남아날 수가 없다. 궁금해 죽는 줄 알았다. 내가 모 출판사 서평 이벤트에 당첨이 됐는지 안 됐는지... 액정이 까매져서 볼 수가 없다. 애들 알림장도 볼 수가 없다. 컴퓨터로 인스타에 접속도 해봤지만 내 아이디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서비스 센터에 당장 갈 짬이 나지 않아 그냥 이틀을 버텼다. 그 이틀 동안 내가 느낀 건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봄으로써 얼마나 많은 걸 현실에서 놓치고 있는지... 아이들이 놀아달라는 소리도 "잠깐만!"이라는 소리로 대체하고 급하지도 않은 인터넷 세계의 일을 처리할 때도 있었다.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송금하는 일, 누군가에게 답하는 일, 집에 책이 널렸는데도 책을 끊임없이 검색하는 일, 이런 급하지 않은 일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일들로 진짜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다. 내가 인스타를 할수록 아이들을 외롭게 만들었다.  


스마트폰 사달이 나고서야 나무가 보이고 풍경이 보였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용해졌다. 아이들과 차분히 앉아 아이클레이를 하면서도 인터넷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액정이 보이지 않으니 단념했다. 아이클레이 점토를 빚으며 마음이 편안했다. 그동안 스마트폰이 스마트폰이 아니고 스피드폰었구나 싶을 정도로 나를 급하게 만드는 게 스마트폰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급하지도 않은 것들로 내 삶을 급하게 만들었다. 


어제 액정을 고쳐왔다. 이제 다시 일상을 살아갈 때 스마트폰을 거두려 한다.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을 살아보니 얼마나 이 아이가 나에게 해로운 녀석인지 알게 됐다.


오늘, 스마트폰을 끄고 아이들과 눈 맞춤하려 한다. 아이들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 들으려 한다. 한 명 한 명의 요구를 더 충실히 들어주려 한다. 스마트폰과 안녕, 심호흡이 필요한 시간이다. 


큰 나무를 보면, 멈춰 서고 싶어진다. (중략) 큰 나무 밑에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지만, 나무 크기만큼의 침묵이 있다. (p.65) 오사다 히로시, <심호흡의 필요>


2020.7.3

날마다 새벽에 글 쓰는 노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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