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반 고흐, 호크니

노력 없는 천재 없다

by 북유럽연구소

반 고흐 미술관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한 달 전에 예약했던 일정. 다른 건 상황에 따라 조정 또는 포기할 수 있는데 반 고흐 미술관은 반드시 가야겠다 싶어 암스테르담으로 입국했다.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고흐를 사랑해서 만나면 매일 남자친구 이야기하듯 고흐 이야기를 했었다. 미술 선생님이 이 친구보고 천재 같다고 했을 만큼 그림을 잘 그렸는데 결국 대학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암튼 그래서 친구의 상상 속 남친이었던 고흐에 대해 시시콜콜한, 예를 들면 고흐가 내 생일 전날 사망했다거나 일본 민화를 무척 좋아했다는 등의 원치 않는 정보까지 알고 있어서 고흐 그림을 꼭 친견하고 싶었다. 전에 오르세에서 또는 몇몇 기획전에서 감질나게 한 점씩 보긴 했지만 아몬드 트리, 해바라기, 연인이 있는 풍경,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은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설레기까지 했다.


고흐와 호크니?

거기다 기획전으로 호크니와 고흐를 같이 하고 있는게 아닌가. 호크니 전시가 있는 5월27일까지 고흐 미술관은 일찌감치 매진. 어제 줄도 안서고 예약권을 내밀고 들어가면서 내 부지런함에 상을 주고 싶었다. (미술관 부티끄에 들러서 상을 줬다고 합니다ㅎㅎ)


고흐의 그림은 색이 밝은데도 슬프다고 해야하나 뭔가 아련하게 외로운 느낌이 있다. 등장인물 중에 웃는 사람도 없다. 거기다 고흐는 그 와중에 사회운동 하는 사람처럼 늘 고단한 사람들을 그렸다. 호크니 인터뷰 중에 “고흐의 그림 속 농부들처럼 고흐도 나도 고단하게 일을 하는 노동자일 뿐.”이라는 부분 무척 좋았다.



호크니는 21세기 고흐다. 스스로도 고흐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이번 고흐 전시에서 보니 분명하게 보였다. 호크니의 붓놀림이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재해석한 색감, 쨍한 색상의 대비. 이번 고흐 전에서 만난 호크니의 재발견이 내게는 큰 소득이다.


고흐도 호크니도 특별한 것을 그리지 않는다. 집 주변 건물,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등 요즘 같으면 누구도 사진기에 담지 않을 별거 없는 풍경이 단골 소재다. 평범함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얼마나 특별할 수 있는지, 익숙한 풍경을 지나친 내 무심함이 겸연쩍이면서도 나 대신 발견해준 그 평범한 아름다움이 보는 이를 얼마나 편안하게 만드는지 두 사람의 작품을 보며 감사하게 되었다. 진짜 실력자는 작품을 그리러 먼 곳에 가지 않는구나.


또 하나, 사람들은 고흐더러 광기의 작가라고 하지만 고흐는 광기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성실함으로 그렸다. 하루에 열 시간도 넘게 그림을 그렸으니까. 이번 전시에 고흐와 호크니의 스케치북을 전시해놨는데 드로잉과 스케치를 보면 입시미술하는 학생같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전에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는지 감동스러울 정도다.


"내가 그려도 피카소보다 잘 그리겠다" 하는 분들은 피카소의 초기작을 보셔야 한다. 기본기가 있어야 변주가 가능하다. 광기나 타고난 천재성만으로 대가가 된 사람은 없다. 노력하지 않는 이들의 질투 어린 변명일 뿐.


쓰고 싶은 말이 많은데 기차 안, 1유로에 두 개짜리 크루아상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




이미지 출처: 반고흐 미술관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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