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이탈리아+크로아티아+헝가리
"엄마, 비엔나에서 뭐하지?"
"비엔나 하면 비엔나 커피, 비엔나 소시지 아니야?"
이번 여행에 있는 것? 라면 다섯 개.
이번 여행에 없는 것? 계획.
느긋한 여행을 좋아한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나 어디-어디-어디 찍고 어디서 뭘 먹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행은 아무래도 나랑 맞질 않는다. 여행 와서까지 치열할 필요가 있을까. 일상에서 이미 치열하게 살고있는 걸.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핀이 튕겨나갈만큼 풍성한 삼단같던 머리숱이 아가 고무줄로 다 묶일 만큼 줄었다ㅠ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힐링여행, 계획 없는 슬로우여행이 엄마와 나에게 딱 맞는 템포다.
비엔나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 첫날은 저녁에 도착해 여독을 풀겸 라면에 와인 한 잔하고 일찍 잤다. 둘째 날 아침 일찍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 때문에 딱 하루가 온전히 있는 셈이다. 2박1일.
비엔나 소시지와 비엔나 커피, 우리 둘이 머리를 맞대도 더 이상 선한 것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비엔나(이하 현지 표기대로 빈)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꼭 가야할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친구는 주저없이 두 가지를 제안했다. 훈데르트바서 박물관 방문과 자허토르테 먹기. 좋았어! 빈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그렇게 딱 두 가지만!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스웨덴에서 지속가능발전을 공부하면서 환경과 건축에 대해 배울 때 알게된 이름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에 주거지를 조성하는 시립아파트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자연은 곡선'이라며 직사각형 대신 곡선으로 집을 지었다. 대지와 건물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았다. 옥상 정원은 바깥에서 보면 언덕이 되었다. 몬테소리학교 출신답게 색색의 벽으로 외벽을 꾸몄다. 훈데르트바서의 아파트는 건물보다 예술작품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컴컴한 방에 공용화장실을 쓰던 당시 비엔나의 서민층은 훈데르트바서의 아파트로 입주하며 예술품에서 살게 되었다. 훈데르트바서는 서민을 위한 가우디라고 할까?
훈데르트바서! 백개의 물줄기, 이름도 얼마나 멋진가! 그런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을 직접 보게 되다니!
"아...참 예쁘다."
아파트를 찬찬히 보던 엄마에게 제일 먼저 나온 감탄사다.
"엄마, 이거 아파트야. 그것도 서민 아파트였데."
"이게 아파트라고?"
엄마는 집보로 온 사람 처럼 여기저기 살펴가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관리실이 없네'서부터 '옥상 관리는 누가 하느냐"까지 엄마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적절한 답을 할 수 없는 나만 답답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조그만 걸으면 훈데르트바서가 작업실로 썼다는 쿤스트하우스가 나온다. 지금은 훈데르트바서의 박물관으로 운영한다. 바서의 건물 미니어처와 바서가 그린 그림 등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식물이 가득한 창가 였다. 오스트리아 한 가운데서 밀림 같은 기운을 느꼈다. 물론 엄마다운 한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저거 물은 누가 주나? 보기는 좋아도 물주는 게 한 일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자허토르테를 파는 카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실 자허토르테는 이름에 드러나듯 자허Sacher라는 유명한 호텔이 운영하는 카페의 전매특허 케이크다. 파운드케이크 같은 식감의 묵직한 초코렛시트 사이에 살구잼을 바른 후, 진하고 두꺼운 초코렛으로 코팅을 한 케이크다. 워낙 유명세를 타 이제는 카페 자허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판다. 친구 말로 자허에는 이제 관광객 뿐이라며 자기가 아는 뒷골목 카페를 추천해주었다. 이름은 모르겠고 앙엘라 갤러리Gallerie Angela 옆에 있는 카페. 다음날엔 그래도 아쉬워 카페 자허에도 들렀다. 뒷골목 카페가 더 맛있었다. 가격 탓인지, 기분 탓인지.
하루를 너무 만만하게 봤나?
오늘의 할 일을 다 마쳤는데 아직 해가 중천이다. 친구에게 다시 한 번 구조요청을 했다. 친구는 우리를 픽업해 버스를 태우고는 종점에서 내렸다. 비엔나 전경이 보이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사기꾼처럼 생긴 바이올리니스트의 신나는 연주에 절로 발을 까닥이며 박자를 쳤다. 친구와 엄마는 높디높은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서로 눈만 마주치면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었다. 라이브 연주에 생기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엄마는 신기한지 연신 두리번 거렸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도 빙긋.
밖에 앉아 있으니 저녁이라 서늘해 안으로 들어왔다. 아내 속 꽤나 썩일 듯 한 아저씨 넷이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감자와 고기 요리에 와인도 한 잔!
비엔나 소시지는 못먹었지만 나름 알찬 하루를 보냈다. 친구만 따라 다니다보니 식당이름이며 뭐며 암 것도 못 적어서 담부터는 열심히 기록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