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한 달 여행기:출발

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이탈리아+크로아티아+헝가리

by 북유럽연구소

엄마아아아아! 빨리 좀 나와아아아!

저런, 저희 티켓팅 마감하려는 참이었어요. 늦으셔서 옆자리는 어렵고 따로 앉으셔야 해요.


아 그러게 빨리 준비하랬잖아... 하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다시 돌돌 말아 삼킨다. 그래, 긴 여행을 앞두고 바쁘다는 핑계로 좌석지정을 미리 못한 내 탓이지.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절대 짜증 안 낸다. 여태껏 성질머리 못돼먹은 딸을 사랑으로 키워준 엄마에게 선물하는 보은 여행이므로.


오랜만에 딸과 가는 여행에 엄마는 소녀처럼 설레 했다. 가방을 싸는 엄마를 보는 나는 한숨부터 났다.


I say, 엄마 패션쇼 하러 가? 믹스커피를 왜 이렇게 많이 챙겨? 유럽 여행 가서 라면 먹자고?

She says, 사진 찍는데 어떻게 매일 똑같은 옷 입니? 하루에 한 잔은 마셔줘야 해. 나중에 나한테 잘 가져왔다고 할 거다.


옥신각신 끝에 엄마와 나의 커플 가방과 기내용 캐리어 한 대로 짐싸기를 마쳤다. 여자 둘이 여행하는데 짐이 그게 다라고요? 넵! 짐이 가벼울수록 여행이 가뿐한 법. 그 와중에 라면이 다섯 개나 들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엄마랑 나의 커플 가방. 둘이 걷는 뒷모습 엄청 귀여움.


나이가 들고 보니 비행기 여행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만약 초능력을 한 가지 선택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순간이동을 고르고 싶을 정도니까. 내가 이런데 엄마는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일부러 비행시간이 짧은 항공사를 선택했다. 대신 한국인 승무원이 없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전에 기내식이 입에 안 맞아 잘 먹지 못하는 걸 보고 승무원이 "아 유 베지테리안"하고 묻자 "노, 아이 앰 코리안.'이라고 답하신 분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도 난 맘을 놓지 못해 대각선 뒷자리 엄마를 틈만 나면 몽구스처럼 챙겨 보았다. 이륙하고 두어 시간이나 지났나, 기내식이 나왔다. 옆 자리에 앉았으면 문제 없었겠지만 따로 앉은 터라 앞에 앉은 내가 먼저 메뉴를 보고 귀띔해 주기로 했다. 치킨 누들과 한국식 소고기 볶음밥.


엄마, 비프 달라고 해.

너 뭐 마시니? 와인? 나도 와인 달래야지.


배도 부르겠다. 와인도 한 잔 했것다.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막 잠이 들려는데 엄마가 뒤에서 어깨를 쿡쿡 찌른다. 자일리톨껌 두 알을 내민다. 피식 웃으며 받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피곤이 몰려와 간만에 푹 잤다. 자다 깨서 엄마 쪽을 보았다. 앞 의자에 붙은 스크린을 만지작대던 엄마는 맘에 드는 영화가 없는지 창밖을 내다본다. 다시 잠들었다 깨서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여전히 창 밖을 보고 있다. 엄마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나도 빙긋이 웃는다.


도착한 후 비행기에서 내다 본 풍경. 엄마 찍음.


이번 여행 즐거울 것 같아. 엄마랑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야지.


시차 덕에 오전 비행기로 한국을 출발해 그날 오후에 목적지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했다. 온라인으로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7시다. 짐을 대강 정리해놓고 장을 볼 겸 밖으로 나갔다. 과일, 주스 그리고 우리의 여행 개시를 축하하기 위한 와인 한 병을 샀다. 하지만 정작 그날 저녁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라면을 먹었다는.


대책 없는 모녀의 유럽 여행은 내일부터 본격 시이이이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