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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Feb 11. 2022

국민은 그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는다

대통령은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

대통령은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보수의 무기는 유능이고 진보의 무기는 도덕성이라는데 양쪽 모두 무기가 없다. 어렵사리 열린 토론에서 보고 싶었던 철학과 비전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지식 대결, 말꼬리 잡기, 무례한 태도가 시시때때로 등장해 불편했다. 싫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바른 정치인이 되려면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주요 후보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자니 평범한 사람의 삶과는 저멀리 떨어진 서생의 현실감각에, 자기 이익만 차리는 상인의 문제의식을 지닌 듯했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없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도 없었다. 얄팍한 지식으로 거침없이 만기친람 하려는 모양새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뿐인가? 후보 본인과 가족에 대한 갖가지 의혹은 그저 언빌리버블.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국민은 그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이리저리 떠올려봐도 주변에 비슷한 부류가 없는데 우리 수준이 정말 이 정도인가.


책상 한쪽에 두고 자주 보는 책이 있다. 옥중서신. 1권 <김대중이 이희호에게>, 2권 <이희호가 김대중에게>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의 핍박으로 수감 생활을 할 때 이희호 여사와 주고받은 편지 모음이다.

편지에는 아내와 남편으로 서로를 염려하며 살뜰히 챙기는 마음,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 강아지의 재롱 등이 가득하다. 동지로서 의견을 교환하며 옥중에 있는 남편을 위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하는 이희호 여사의 글이 따뜻하다. 토론회를 보고 머리가 복잡해 두 편을 읽었다.


1982년 1월29일, 김대중이 이희호에게

(…) 나는 언제나 우리 국민을 신뢰하고 그 가능성을 믿어 왔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도덕 상황은 심각하여 우려할 만하다고 믿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어떠한 부강한 나라도 로마제국이나 역대 중국의 제국들에서 본 바같이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반드시 망하며 반면에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그 나라들의 초창기같이 도덕적으로 강하면 반드시 융성의 길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의 도덕적 위기의 원인은 아주 복합적입니다.

1. 지금 우리 사회는 리스먼이 그의 저서 <고독한 군중>에서 말한 바 농업사회의 전통 지향, 공업화 단계의 내부 지향(일에 열중, 소비와 오락으로 소유욕 충족과 사회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고도산업사회의 타인 지향성(남의 기대와 평가, 취미에 맞추어 자기 행동을 좌우하는 자기 상실)의 세 단계의 사회도덕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혼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

5. 정직하고 양심적인 자보다 악하고 부정직한 자가 성공하는 사회기풍 속에 양심과 전통성이 파괴되고 기회주의와 출세주의가 판을 쳐온 사실을 봅니다.

6. 지도층들이 정직, 언행일치, 검소, 청렴, 근면, 봉사 등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가 허다했었다는 사실이 도덕적 위기를 초래한 아주 큰 원인이라 할 것입니다. (…)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도층의 도덕적 솔선수범입니다

(…)

우리 국민의 도덕성으로 보아 지도층만 솔선수범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면 우리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1982년 4월17일, 이희호가 김대중에게

존경하는 당신에게, 오늘은 당신이 집을 떠나신 지 한 달 모자라는 만 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참으로 기막힌 일입니다. 꿈에도 다시 그 같은 억울함과 비통한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전역에 지하철 공사가 단행되고 있는데 그 공사를 날림으로 졸속하게 하다가 지난번에는 큰 사고가 발생했는데 여전히 군데군데 작고 큰 사고가 일어나고 있어서 요즘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모릅니다. 돈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의껏 견고한 재료를 들여 인명피해가 없도록 해야 하는데 마치 옛날 와우아파트 격으로 무너지는 불행이 생기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무역역조 항의가 빗발치듯 하는 가운데 6월에 선진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면초가를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을 청해서 회유책을 써보지만 허사라구요.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수요 감퇴로 인하여 특소세품의 판매가 올 들어서도 계속 부진하다 합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휴업이 늘어 중소지업 지원책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도록 힘쓰세요.


40년 전의 편지라는 것이 무색할 만치 지금과 닮았지만 이 같은 통찰력과 애정을 지닌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이런 품격의 대통령과 그 배우자를 바라는 것은 그저 사치고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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