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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Jun 22. 2018

청둥오리야 안녕, 한 달간 즐거웠어

핀란드판 세상에 이런 일이? by TJi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ㄷ'자 모양으로 건물이 안뜰을 감싸고 있는 구조다. 아파트 각동마다 입구가 도로를 향한 앞문과 안뜰로 향하는 뒷문이 있다. 우리의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는 B동 뒷문은 ‘ㄷ'자의 가장 안쪽 모서리 근처에 위치해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달전 아침,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 청둥오리 한쌍이 안뜰 깊숙이 들어와 배회하고 있었다. 아파트가 ‘ㄷ'자라고 안뜰이 막혀있는 것은 아니고, 건물 중간중간 반대쪽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B동 뒷문 근처의 밖으로 향하는 통로는 바닷가가 아닌 도로변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자연에서 상당히 떨어져서 도로와 더 가까운 곳에서 배회하는 청둥오리가 살짝 걱정이 돼서 쫓아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겁을 주는 것도 내키지않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날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에 사진 하나가 눈에 띄었다. B동 뒷문 옆에 놓여 있는 화분에 알이 하나 놓여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올린 사람은 청둥오리가 알을 낳은 화분에 있는지 모르고 뒷문을 벌컥 열었다가 본의 아니게 오리를 쫓아내게 되었다며 화분을 좀 더 조용한 곳으로 옮겨도 되는지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화분을 옮기면 청둥오리가 알을 버리고 갈 수도 있기에 결론은 그냥 두고 자연의 흐름을 지켜보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날 오후에 청둥오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화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알이 하나 더 늘어 두개의 알이 화분에 놓여 있었다. 알만 놓아놓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철이 아직 덜든 초보 엄마 오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화분에는 알 두개만 보일뿐 암컷오리는 안뜰 잔디밭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에는 알이 하나 더 늘어 세개가 되었다. 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알을 우리 아파트에서 알아서 하라는 듯이 놓고서 돌아다니는 오리의 정신세계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알이 하나 더 늘어 네개가 되었다. 밤새 클럽이라도 가서 즐기다 아침에 어딘가에 지쳐 쓰러져 자는지 청둥오리는 여전히 외출 중이었다. 

알만 덩그러니 낳아놓은 청둥오리 둥지


이쯤 되니 알들이 안쓰러워 혹시 도움을 줄 방법이 있을까 싶어 영어로 검색해보고 한글로도 검색해봤다. 한글 검색의 결과는 실소가 터졌다. 검색 결과는 청둥오리 요리법이 주를 이뤘다. 한국은 청둥오리를 오리처럼 농장 사육을 하는 곳도 꽤 되는듯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애정의 끝은 어디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웹사이트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청둥오리는 보통 8개에서 13개의 알을 난다고 한다. 그리고 수컷은 교배후 다른 수컷들과 무리를 지어 살아가기 때문에 알을 낳고 품어 부화시키는 일은 오롯이 암컷의 일이라고 한다. 싱글맘 체제인 것이다. 다행히 집 나간 청둥오리는 자신의 엄마나 할머니에게 한소리 듣고 돌아왔는지 그 다음날부터 부지런히 알을 품기 시작했다. 아파트 문 옆 화분인지라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알을 품었다. 사실 화분 아니 둥지의 위치 때문에 알 품기를 포기하고 알을 보란 듯이 두고 돌아다닌게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초보 엄마라도 모성은 뛰어난 것 같았다. 철없어 보이던 행동을 하던 며칠간, 어쩌면 사람과 시시때때로 마주하면서 알을 품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원래 장시간 알을 품기 전에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던가? 청둥오리는 그렇게 우리 아파트의 새 이웃이 되었다.

문옆에 있는 화분과 청둥오리를 배려해달라는 안내문


그렇게 한달간의 시간이 흘러 다시 페이스북에 또 다른 글이 보였다. 알에서 깨어난 아기오리 한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서 주민이 헬싱키 동물구조팀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서 동물원이 있는 섬으로 이송될 예정이라는 이야기였다. 다른 두마리 아기오리들은 부화해서 화분에 잘 머무르고 있기에 어미새를 따라가기를 바란다는 내용도 추가로 있었다. 게시물을 보자마자 혹시나 아기오리를 볼 수 있을까, 설레는 맘으로 내려가 봤지만 부화한 알껍질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런데 껍질이 세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는 어떻게 된 걸까? 중간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 어미가 알 하나를 치운 걸까? 아님 일찍 깨어나서 어미가 껍질을 처리한 걸까? 그렇게 거의 한 달간 매일 눈인사를 나누던 청둥오리 이웃과는 작별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뚜르꾸의 청둥오리처럼 내년에도 오려나?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어미가 이제는 더는 어려운 일 없이 잘 살아가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빈둥지와 헬싱키 동물구조팀을 기다리는 아기오리


한 달 전 아파트 화분에 청둥오리가 알을 낳기 시작했을 즈음, 뚜르꾸 (Truku)의 청둥오리 이야기를 인터넷 뉴스에서 보았다. 한 청둥오리가 8년째 아파트 5층의 한 발코니에 있는 화분에 알을 낳는다는 이야기였다. 친절한 집주인이 알이 부화되었을 때 아기오리들을 상자에 담아 아파트 밖으로 내려주면 어미오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물가로 갔다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청둥오리가 발코니가 닫혀있자 문을 열어달라고 유리를 부리로 두드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넉살좋은 이 청둥오리는 그 아파트에 사시는 아주머니를 친정엄마로 생각하는 것 같다.


뚜르꾸 청둥오리 기사 링크: https://www.is.fi/kotimaa/art-20000056937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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