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이름 짓는 것도 관여하는 나라 핀란드, 디스토피아? by TJi
제목 배경 사진 출처: Photo by Raphael Schaller on Unsplash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불편하다. 누구를 일컫는지 헤갈릴 때도 있고, 본의 아니게 비교당할 때도 있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지어주고 싶은 이름들은 어느 정도 겹치기 때문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일부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색다른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독특한 이름 덕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기반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놀림을 받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때문에 속상한 경험을 여러 번 했던 사람이라면 부모님의 무모함을 말려주지 않은 나라 탓을 해보면 어떨까? 핀란드는 성과 이름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핀란드에 살다 보면 여러 명의 Antti와 Mikko, Anna와 Maria를 만나게 된다. 선호하는 이름이 비슷하다 보니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지만, 그래도 같은 이름의 사람이 상당히 흔하다. 그래서 Antti Isomäki, Antti Silvast처럼 성을 붙여서 같은 이름의 사람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사용되는 이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종종 이름이 쓰인 열쇠고리나 컵 등과 같은 제품을 상점에서 마주할 수 있다. 핀란드는 유럽의 일부 나라와 같이 일 년 중 특정 날에 각각의 이름을 기념하는 문화가 18세부터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의 이름을 기념하는 날 (nimipäivä, name day)은 헬싱키 대학 소속의 연감 사무소[2]에서 관리한다. 대학 연감 사무소는 5년마다 이름의 사용빈도에 따라 이름을 기념하는 날을 추가하기도 하면서 이름을 기념하는 날 목록을 작성하며 해당 목록에 대한 저작권을 소유한다.
1920년에 처음으로 효력이 발생된 핀란드 성 (last name)에 관한 법을 시작으로 1946년에는 이름 (first name)법이 제정되었다. 1985년에 성에 관한 법이 개정되면서, 1991년에 성과 이름에 관한 이름법 (nimilaki)이 발효되었다. 해당 법은 2017년에 개정되어, 2019년에 새로운 성명법 (etu- ja sukunimilaki)이 발효되어 이전의 이름법을 대체했다. 이름과 성에 대해 규제를 하고 있는 이 법은 성을 보호하고 아이를 위해 적정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감독한다. 법적으로 모든 핀란드 사람은 성과 이름이 있어야 한다.[1]
2019년부터 적용되는 성명법[3]에 의하면, 이름은 최대 4개 (이전 3개)까지 허용한다. 아이의 이름은 출생 후 3개월 (이전 2개월) 이내에 인구 정보 시스템에 등재되어야 하는데, 등록사무소, 루터교, 정교회를 통해 신고한다. 이름은 놀림감이 될 가능성이 있으면 안 되며, 성별과 상반되는 이름도 거부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쓰이는 철자법을 벗어나는 경우도 안된다. (Okko가 기본인 이름인데 Occo로 신고돼서 거부된 경우가 있다.) 성처럼 느껴지는 이름도 거부될 수 있다. (성이나 이름에 동시에 쓰이는 이름은 예외여서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Sampo Vesa는 둘 다 성과 이름으로 쓰이는데, 그래서 이름이 Sampo인지 Vesa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형제, 자매가 같은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이름이 예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인구 정보 시스템에 같은 성별 5명 이상의 생존자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이름이라면 사용할 수 있다. 종교, 다문화 가정, 또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경우 해당 문화에 따른 이름이 허용된다.
공무원과 법무부 산하 이름 위원회에서 거부된 이름으로는 Alcapone, Monck, Wolf, Ravenheart (큰 까마귀 심장), Karhukuningas (곰 왕), Hukka (손실, 폐기물), Sweethoneybeebambi, Pinkbutterflytaina 등이 있다[4]. 이름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고 싶지 않은 부모는 법정에서 이름 위원회와 다툴 수 있다. 새 가족의 등장으로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이의 이름 등록을 깜빡하는 부모가 종종 있는 듯하다. 또한 세례식 일정이 늦게 잡히는 경우에는 아이의 이름 등록 내용에 세례 일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한을 넘기는 것을 봐주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제 때 등록하지 않으면 독촉장이 여러 번 보내지고 부모들 대부분이 이에 대응하여 이름을 등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이름이 등록되지 않으면 정부가 대리인을 지정해 아이의 이름을 정하도록 하는데, 이 경우는 극도로 드물다.[5]
새 법은 아이가 부모의 성을 합친 성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 예를 들어 부모의 성이 Virtanen과 Korhonen일 경우 Virtanen-Korhonen 또는 Virtanen Korhonen을 아이의 성으로 쓸 수 있다. 성의 순서는 등록 시 결정해야 한다. 부모가 같은 성을 사용하면 그 성을 따르면 된다. 부모가 기존의 성을 유지하고 있으면, 같은 부모의 형제나 자매가 있을 경우 형제나 자매의 성을 따르면 되고, 첫째일 경우 등록 시 부모 중 한 명의 성을 따르거나 두 개의 성을 합친 성을 따르면 된다. 외부모의 아이일 경우 해당 부모의 성을 따른다. 결혼 후 부부는 각자의 성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부부 동의하에 한쪽의 성을 따를 수도 있고 두 성을 합친 성을 같이 사용할 수도 있다. (이전에는 의사를 표명해야 결혼 전 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핀란드 마륶꾸 협회 (Suomalainen Markku-liitto)[6]는 Markku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Markku는 로마 신화의 전쟁의 신 Mars에서 유래된 라틴이름인 Marcus에서 변형된 이름이다. Marcus에서 변형된 다른 핀란드 이름으로는 Marko와 Markus가 있다. 마륶꾸 협회는 1996년 노오르마르꾸 (Noormarku)에 설립되으며, 핀란드에서 가장 큰 이름 협회이다. 협회는 매해 마륶꾸 이름을 기념하는 날인 4월 25일에 노오르마르꾸의 쐬외르마륶꾸 (Söörmarkku) 마을에서 그해의 마륶꾸를 발표한다. 2008년에는 헬싱키 대성당 앞 계단에서 마륶꾸 모임을 주최해서 신분증을 지참한 마륶꾸 1281명이 모여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당시 마륶꾸 이름을 쓰고 있는 핀란드 사람은 3만 명이 조금 넘었다[7]. 2015년에는 마륶꾸 이름을 기리기 위한 '욲끄람 - 신비한 선박 (Ukk’ram – Salaperäinen alus)'이라는 조형 작품을 노오르마르꾸에 설치하는데 기여하였다. 협회가 설립된 장소, 조형물의 이름을 살펴보면 마륶꾸 이름의 언어유희를 발견할 수 있다. 핀란드 마륶꾸 협회와 그 활동은 농담을 다소 심각하게 다루는 핀란드 사람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1. http://www.kielitoimistonohjepankki.fi/ohje/280
2. https://almanakka.helsinki.fi/en/name-days.html
3. https://www.finlex.fi/fi/laki/alkup/2017/20170946
4. https://www.iltalehti.fi/perheartikkelit/a/201801262200697258
5. https://yle.fi/uutiset/3-8789144
7. https://www.iltalehti.fi/helsinki/a/200808308190902
글을 마치며...
얼마 전 친구들과 이름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아이의 이름을 지으면서 알게 된 핀란드의 이름법과 부모가 이름을 제때 등록하지 않으면 정부가 아이의 이름을 정해준다는 카더라 통신에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더해졌다. 마륶꾸 협회의 말장난 대잔치 같은 이야기와 신문에 난 등록이 거부된 아이 이름들까지 소소하지만 핀란드의 문화를 잘 반영해주는 사례였다. 정부가 아이 이름을 정해줄 경우 무슨 기준으로 이름을 주는지에 대한 호기심에 대한 답과 등록이 거부된 아이 이름들을 찾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 꺼리라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핀란드 성씨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내용을 정리하기엔 방대하고, TJi의 능력이 모자라 결국 생략했다. 혹시, 호기심이 발동한다면 간략하지만 잘 정리된 글인 'Finnish Genealogy: The Finnish Naming System'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