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단번에 '이야기'라고 답한다.
세상에 이야기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냐만.
아주 어릴 때는 책으로 읽고, 구연동화 테이프로 들었고,
조금 커서는 영화, 비디오, 드라마로 영상화된 이야기를 봤다.
또래 집단이 우주가 되는 십대에는 수다로 이야기를 상호 교환했고,
어른이 되자 여행이 직접 엮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정의하는 이야기는 타인의 삶의 일부, 그가 실제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건을 들여다보고 그 시간을 함께 겪는 꽤나 역동적인 산물이다.
그 무수한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했으며
지금도 쓰여지고 있겠는가.
요즘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점점 많아지지만
여전히 그 어떤 것도 글을 이길 수는 없다.
나는 본디 활자와 언어의 힘에 예민한 사람이었고,
글에는 제작비나 시간이 필요 없기에 내가 구축한 상상 속 세계관은 무한했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이틀 정도 몸살이 난 적이 있다. 내 머릿속 소년의 얼굴을 얼마간 지울 수가 없었다.
글을 읽는 내내 달궈진 바늘에 찔리는 느낌이었더랬다.
나름 많은 책과 영화나 시리즈들을 보며 터득한 완급 조절 방법인데, 나는 어떤 고통과 아픔에 대한 것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는 영상으로 접하는 것을 선호한다.
책이든 뭐든 멘탈에 타격은 있지만, 영상을 봤을 때 회복이 좀 더 빠른 느낌이랄까.
그리고 오늘, 날짜를 확인하다 십수 년 전 봤던 영화 <지슬>이 생각났다. 세상에는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는 고통이 참 많다. 과거의 것이기에 떠나고 잊힌 자들의 몫일 뿐이라며 비난의 아우성 뒤에 숨는 것은 간편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끄집어내 쓰고 만들고 보인다.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복잡하게 얽힌 세상, 최소한의 질서를 지켜내야 하는 세상에서 내 이야기만으로 꾸려지는 삶은 방향을 잃기 쉽다.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항상 좋은 양분이 필요하다. 내가 찾아내고, 고민하고, 글을 써내고, 만들어 끊임없이 전달하는 이들을 존경하는 이유다.